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마발 Oct 19. 2022

빨간 차와 고급유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

그냥 운전이 좋아서 15화 : 11 LAP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내 꿈은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오토바이를 타고.


보는 내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영화였다. (출처:다음 영화)


우연히 보게 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북미와 남미를 오토바이를 타고 종단 한 분이 쓴 에세이를 읽고 난 후였다. 그러다 오토바이의 위험성을 깨닫고 차를 좋아하게 되면서 세계일주의 이동수단은 자연스레 오토바이에서 차로 바뀌게 되었다.

나이를 먹고 보니 세계를 여행하는, 그것도 자동차로 여행을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에 아직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자동차와 함께하는 세계일주는 내 평생의 꿈으로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올봄에 새 차를 사게 되면서 다시금 자동차로 떠나는 여행에 대한 의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차가 나오기 전부터 10월에 제주도 여행을 가겠노라 떠들고 다녔다.


제주도까지 다리가 있다면 더 재밌을 것 같다. 다리 위에 휴게소도 있고 뭐 그런...


난 봄, 여름, 겨울 제주도 여행은 한 번씩 해봤는데 가을 제주도 여행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게다가 10월에는 개천절과 한글날 덕분에 월요일 공휴일이 2번이나 있기에 연차를 추가하면 제주도까지의 여행에 부담이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10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차를 샀던 3월에는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10월이 코앞으로 다가온 9월이 되어서야 나는 여행 계획을 세웠다. 감사하게도  길을 차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여행에 여자친구는 흔쾌히 동의해줬고, 계획을 세우는데 앞장섰다.


10월 1일 – 10월 4일.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에 가기로 결정했다.


간다, 제주도!


가장 먼저 알아본 건 배였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인천에서 가는 배는 꼬박 하루를 가야 했기에 시간이 많지 않은 우리와는 맞지 않았다. 완도나 부산에서도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갈 수 있었지만 서울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30일 저녁에 퇴근 후 이동해야 했기에 너무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그래서 가장 무난한(서울에서 목포는 최소 4시간 이상 걸린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목포에서 제주도까지는 약 5시간. 오전에 출항하는 배를 타면 점심때쯤 도착하는 코스였다.

8년 전, 22살의 나는 혼자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갔었다. 스쿠터를 타고 제주도를 여행하며 벚꽃도 보고 바다도 보았던, 참으로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때와 같은 루트로 제주도에 간다니 꽤나 설렜다.

그래도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비용이었다. 뉴스에서 몇 번 접했지만 요즘 제주도 렌터카 비용이 오르면서 자차를 가지고 제주도에 가는 사람들의 비율이 많이 늘었다고 들었지만 그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는 몰랐다. 아무리 차를 가지고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우리는 그저 직장인일 뿐이었기에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비싸다면 그냥 비행기를 타고 갈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여자친구는 놀라운 것을 발견해 왔다. 목포에서 출항하는 씨월드고속훼리에서는 올해 헌혈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다. 사람 요금은 1+1 또는 2+2, 차량 요금은 무려 20% 할인이었다. 제주도 여행도 싸게 갈 수 있고, 좋은 일도 할 수 있으니 우리에겐 일석이조였다.


너무나 저렴한 가격에 제주도에 갈 수 있었다.


차량과 사람 2명의 제주도 왕복 비용이 40만 원도 되지 않았다. 3월에 친구들과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다녀왔었는데 그때 비행기 가격은 대단히 좋은 시간대가 아니었음에도 1인당 20만 원이 조금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헌혈을 하면서 상품은 상품대로 받고, 제주도도 싸게 갈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이벤트는 없을 것 같다. 아직 2달이나 남았으니 올해 제주도 여행을 기획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꼭 이용해 보길 권한다.


올해까지 한다니 배 타고 가시는 분이라면 헌혈하시면 된다. (출처:씨월드고속훼리 홈페이지)


이제 이 여행에서 가장 필요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알아볼 시간이다. 바로 고급유.

우리 라포는 고급유를 드시는 고오급(반박은 사절이다. 나에겐 고급이다.) 엔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출고 후 지금까지 고급유만 먹여왔다. 나름 나쁘지 않은 연비를 자랑하기에 목포까지는 무리 없이 갈 것 같았지만 제주도 기름값은 굉장히 비싸다는 주변의 조언을 따라 목포에서 한 번 기름을 넣고 간다면 제주도에서는 많아야 한 번만 기름을 넣으면 될 것 같았다.

그때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목포는 대략 1700원 후반인 곳도 있었고, 보통 1800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제주도도 검색해보니 제주시 부근에만 무려 여섯 개의 주요소가 나왔다. 단지 가격이 50~100원 정도 비쌌을 뿐.


우리는 제주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제주시가 포함된 북쪽만 여행하기로 했다. 고급유 판매 주유소도 이동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곳에 있었고, 숙소는 2일은 에어비엔비를 통해 예약한 독채, 하루는 제주시의 저렴한 호텔로 예약했다. 특별한 일정은 크게 계획하지 않았다. 너무 빡빡하게 여행하고 싶지 않았다. 꼭 가고 싶은 곳과 꼭 하고 싶은 것, 꼭 먹고 싶은 것 몇 가지만 정하고 여행 계획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9월 30일 하루 전 날 밤. 사고가 터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10 LAP:미니 해치백(3도어) JCW 롱텀 시승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