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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발 Mar 10. 2023

생일 선물이 받고 싶었지만

그깟 공놀이:직장인은 축구를 얼마나 볼 수 있을까? 1화

프롤로그에서 ‘과연 몇 경기나 직관할 수 있을까?’라고 썼는데 난 첫 경기부터 직관은커녕 중계도 보지 못했다.

대망의 2023시즌 K리그1이 2월 25일 개막하면서 광주 FC는 1라운드 경기를 위해 수원월드컵경기장에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있지 않고 익산의 원광대학교에 있었다.

아빠의 디지털 대학교 학위 수여식이 하필이면 개막전과 날짜가 겹치면서 이런 참사가 벌어졌다. 솔직히 학위 수여식 가지 말고 축구 보러 갈까 심히 고민하기는 했다. (맞다, 불효자다. 돌 던져도 된다.) 그래도 아빠의 한 번뿐인 졸업식이고, 아빠는 내 졸업식에도 왔으니 나도 가는 것이 맞다 생각해 눈물을 머금고 수원 원정을 포기했었다. 경기 결과는 광주의 0:1 승리였다.


축구를 못 봐서 아쉬웠지만 아빠의 학위수여식은 잘 축하해 드리고 왔다.


매년 돌아오는 축구 시즌처럼 내 생일은 시즌 개막과 비슷한 3월 첫째 주다. 여자친구와 매년 거하게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데 작년에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부터 내 생일선물은 광주의 유니폼과 시즌권이었다.

개막이 다가오면서 다른 팀들이 하나, 둘 유니폼과 시즌권을 공개하고 판매해도 광주는 감감무소식이었는데 유니폼은 개막 전에 공개가 되었지만 이후 구매한 티켓북이 골치를 썩였다.

내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친구 커플이 광주까지 놀러 와 함께 축구를 보기로 했는데 서울전 티켓 예매가 열리는 화요일까지 티켓이 도착하지 않았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예매는 전날이나 당일에 해도 자리가 수천 석이 남아있어 상관없었지만 1라운드부터 많은 경기장에서 역대급으로 관중들이 몰리며 역대 최다 관객수를 유치했기에 축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즐기기 좋은 중앙 쪽 자리를 예매하기 위해서는 빠른 예매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놈의 구단 프런트는 올해도 역시나 경기 예매 날이 되어도 시즌권이나 티켓북으로 예매를 할 수 없게 해 주었고 결국 티켓 4장을 무려 64,000원(티켓링크 수수료 포함)에 구매해야만 했다.


광주의 2023시즌 홈 유니폼
광주의 2023시즌 원정 유니폼
문제의 티켓북.


경기가 열리는 3월 5일 아침까지 예매는 광주 팬들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의 티켓이 예매되어 있었다. 구단 SNS에는 가급적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는 글이 올라올 정도였다.

우리 홈구장 광주축구전용구장은 광주월드컵경기장 옆 보조구장 위에 세워진 경기장인지라 주차장 역시 광주월드컵경기장과 같은 곳을 사용한다. 다만, 사실상 무용지물인 광주월드컵경기장은 문제가 아니지만 그 옆에 대형 쇼핑몰이 입점해 있어서 주차가 어려운 것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경기장에 2시쯤 도착했음에도 이미 주차장에는 많은 차들이 들어차 있었다. 잠시 화장실을 가기 위해 쇼핑몰 쪽으로 걸어보니 벌써부터 서울 원정 팬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나는 대충 5000명 정도를 예상했는데 이건 그 이상의 관중이 올 것이 확실해 보였다.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 커플은 세시쯤 도착을 했는데 이미 주차장은 만석에 가까웠다. 주차를 하려는 수많은 차들로 인해 정체가 심했고, 서로 시비가 붙어 큰소리를 내며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경기장에 입장해서도 낯선 광경은 여전했다. 서포터들이 주로 앉는 N석쪽 공터에는 간이화장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네 대의 푸드트럭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구단 매점도 작년에 생긴 MD샵 꼬꼬네로 편입되면서 노점상 그 자체였던 매점이 사라지고 드디어 제대로 된 매점과 먹거리가 생겨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기 전부터 경기장에 입장해 음식을 먹고, 구단 용품을 구매하고, 구단에서 준비한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경기까지 시간도 남았겠다 푸드트럭에서 음식과 음료를 사 먹었는데 이것이 바로 1부 리그의 맛이구나 싶었다.

배도 채웠겠다 이제 예매한 자리로 찾아가 앉았다. 나와 함께 몇 번 축구장에 갔었던 친구와 월드컵도 보지 않는 그의 여자친구는 처음 와보는 광주축구전용구장의 놀라운 거리감에 깜짝 놀랐을 것이 분명하다. 비록 지붕도 없고, 종합운동장을 쓰는 구단들이 주로 쓰는 가변석 형태의 좌석이지만 다른 구단들의 경기장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피치와 가까운 것이 우리 광주축구전용구장의 가장 큰 장점이니 말이다.

푸르른 잔디와, 녹색의 관중석. 그리고 그곳을 가득 매운 관중들을 보니 맨날 지기만 하다 강등당하는 1부 리그보다 자주 이기는 2부 리그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던 작년의 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승격과 우승의 뽕이 한가득 차올랐다.


감격의 1부 리그다.


전반전은 광주의 흐름이었다. 득점은 하지 못했지만 끊임없이 서울을 몰아붙였다.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막강한 전력 보강을 한 서울이고, 1차전에서 인천을 상대로 좋은 경기력으로 승리를 거둔 팀이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경기를 봤는데 전반전을 보고 나니 이길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후반전에 광주의 자랑, 광주의 에이스 엄지성 선수가 경고누적으로 퇴장을 당하며 흐름은 완전히 서울에게 넘어갔고, 서울이 2골을 넣으며 0:2로 승점 3점을 챙겨갔다.

서울의 원정팬들은 적은 원정석을 꽉 채우고 응원전을 펼쳤는데 역시 K리그 내 최고 인기 구단 중 한 팀답게 응원은 참 멋졌다. 친구 녀석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서울의 홈경기를 본 적이 있는데 오늘도 부부젤라를 부냐고 물어봤다. 홈경기에서는 부부젤라타임인가 뭐시긴가 있어서 중간중간 시끄럽게 부부젤라를 미친 듯이 부는 응원이 있는데 여긴 원정이라 그런 거 없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때도 참 싫다고 했었는데 어지간히 싫긴 했나 보다. (부부젤라는 나도 싫다.)

수도권에 살았던 친구의 여자친구는 첫 직관이 나름 재밌었다고 했다. 특히 주변에서 사투리로 말하는 사람들이 재밌었다고 했다. 축구 재밌냐고 물었는데… 또 같이 가자고 하면 가 줄 지 모르겠다.


맑았던 날씨는 후반전이 되니 망해가는 경기력처럼 쌀쌀해졌다.


경기 후 축구 커뮤니티와 뉴스는 광주의 이야기로 뜨거웠다. 우리의 놀라운 경기력 덕분이가 싶었는데 감독님의 인터뷰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뭐 나는 광주 팬이니 갓갓갓효버지전술천재축신 우리 감독님의 편이지만 서울 팬들이 왜 기분 나빠하고 우리 감독님을 욕하는지는 이해는 된다. 그러니 우리 다음에 서울에서 만날 때는 더 뜨겁게 경기장에서 겨루면 좋겠다. 그때는 우리가 꼭 승점 3점을 챙겨 오면 좋겠다.


서울 서포터들은 원정석을 가득 메웠다.


내 생일 전 날 펼쳐진 광주의 홈 개막전. 생일을 기념해 구단이 큰 선물을 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티켓북도 늦게 보내줘서 돈이나 쓰게 만들고, 경기도 졌으니 다음 승리까지 구단을 좀 미워하기로 했다. 난 뒤끝 있고 속이 좁은 남자니 구단은 다음 경기에 승리해서 내 화를 풀어주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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