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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발 Jul 12. 2023

매진과 승리.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날.

그깟 공놀이:직장인은 축구를 얼마나 볼 수 있을까? 10화

지난 인천 원정 이후로 무려 네 경기를 직관하지 못했다. 그리고 7경기 동안 승리를 거두지 못하던 광주는 내가 경기장을 가지 않자 3승 1무를 기록하며 무패행진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지옥 같던 7경기 무승의 늪에서 빠져나와 무패를 기록하고 있는 건 굉장히 기뻤다. 하지만 팀이 이길수록 난 패배요정이 된 것 같았다. 경기장을 가면서 아무리 강팀과의 경기여도 이기자는 생각으로 경기장을 찾고, 응원을 한다. (현실적으로 비기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간 경기는 지고, 티비로 본 경기는 이기면 내가 안 가서 이기는 게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조금씩 나는 패배요정이 되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오랜만에 가는 홈경기 상대는 리그에서 가장 비싼 선수들로 이루어진 전북이었다. 리그에서 손에 꼽는 강팀 중 하나인 전북은 올 시즌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김상식 감독은 강등권을 전전하다 결국 경질되었고, 새 감독이 오기 전까지 김두현 감독대행이 팀 순위를 조금씩 끌어올려 중위권에 안착시켜 놓았다. 그리고 전북의 새 감독인 단 페트레스쿠 감독은 광주와의 경기에서 첫 지휘봉을 잡았다.


전북은 우리 팀의 예산을 몇 배 뛰어넘는 금액을 사용하는 팀이다. 영입하는 선수들의 이적료, 연봉, 이름값은 광주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선수들뿐이었다. 무패의 흐름을 이어가 내가 갔을 때 이겼으면 좋을 텐데 하필 전북이라니. 겉으로는 이길 거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지면 패배요정이 된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패배요정이 될지 언정 경기는 가야겠다.


이번 경기에는 처음 광주 축구를 보러 가는 친구와 함께하기로 했다. 축구는 좋아하지만 K리그는 경험이 없는 친구라 이 참에 광주 축구의 재미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화요일 11시에 티켓예매가 오픈된다는 소식을 잠시 깜빡하고 회사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예매 어플을 켰다. 그런데 자리가 없었다.


내 티켓북은 W석이라 W석을 예매해야 따로 돈을 지불하지 않고 예매를 할 수 있는데 W석에는 자리가 없었다. 두 자리는 어떻게 가능했지만 친구와 함께 앉을 수 없었다. 결국 골대 뒤쪽에 남은 자리를 황급히 예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친구의 여자친구까지 오게 되면서 결국 친구는 여자친구와 취소표가 나온 W석에 예매를 해주고 떨어져 앉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우리 광주는 아주아주 비인기팀이고, K리그의 인기가 올랐다는 이번 시즌에도 평균관중은 4000명이 되지 않았다. 가변석의 안전 문제로 기존 원정석을 모두 폐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티켓 예매가 힘들 팀은 아니었다. 의아해하며 커뮤니티를 뒤져보니 광주 경기는 예매 오픈 첫날 매진이 되었다.


매진이라니. 광주 경기가 매진이라니. 정말 믿기 어려웠다. 우리 광주가 이렇게 인기가 많아졌나 싶어 기쁘다가 현실을 깨닫게 되고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요즘 광주의 축구가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기도 하고, K리그의 인기도 올라가면서 관중이 조금씩 늘었던 것은 맞지만 이 날의 매진은 전북팬들 때문이었다.


구단은 사전에 전북 구단과 협의하여 평소보다 많은 양의 원정석을 배정해 주었다. 하지만 인기팀 전북의 서포터들을 수용하기에는 광주축구전용구장은 너무 작았다. 당연히 예매를 하지 못한 전북 팬들이 많았고, 그들이 광주 팬들의 자리에 예매하면서 빠르게 매진이 된 것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엄연히 홈팬들을 위한 좌석이고, 원정석도 많은 양의 좌석을 배정해 주었다. 하지만 일부 전북 팬들은 홈팬들의 좌석을 예매하면서 예매에 실패했다는 광주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500석 정도 원정석에 배정해주었다고 한다.


축구는 야구와 다르게 홈 관중석에 원정팬이 앉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티켓을 예매할 때도 원정팀의 응원도구를 지참한 채로는 홈 관중석에 앉을 수 없다. 맞다. 응원도구를 지참하지 않고, 응원을 하지 않으면 사실 상관은 없다. 하지만 전주에서 광주까지 축구를 보기 위해 오는 사람이라면, 원정석에 예매하지 못했다고 홈 관중석에 앉는 팬이라면 자기 팀이 파울을 당하거나 득점을 했을 때 가만히 있을 사람은 사실 별로 없다.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홈 관중석에 앉지도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구단은 SNS에 홈 관중석에서 전북 응원을 하거나 응원 도구를 지참하면 퇴장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여럿 전북 팬들이 광주 팬들 사이에서 전북을 응원하다 퇴장당하거나 소동이 벌어질 것이라고.


친구 커플들과 경기를 함께 볼 수 없어 경기 전에 만나기로 했기에 조금 여유롭게 광주로 출발했다. 일요일에는 또 서울에서 일정이 있어서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했지만 오랜만에 직관을 가는 길은 전혀 피곤하지 않고, 설렘만 가득했다.


축구를 보러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평소보다 일찍 경기장에 도착했지만 주차장은 이미 많은 자리가 차 있었다. 겨우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광주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보다 전북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무더운 날씨에 일찍부터 경기장에 와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만석이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이번 홈경기 직관에는 큰 미션이 하나 있었다. 바로 광주 용품샵인 꼬꼬네를 들리는 것이었다. 최근 광주에서 새로운 굿즈를 출시해서 이번 기회에 꼬꼬네에서 이것저것 구매할 생각이었다. 매번 홈경기마다 살까 싶었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어서 일정이나 날씨 문제로 다음을 기약했었기에 오늘은 꼭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주차를 하고 꼬꼬네를 가기에는 꼬꼬네 대기가 길면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었고, 주차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경기장 입구에서 여자친구를 내려주고 나는 주차를 하러 갔다. 걱정과는 다르게 아직 꼬꼬네에 줄을 선 사람이 없어서 빠르게 구매하려고 했던 굿즈들을 살 수 있었다.


배지 외에도 머리띠나 머플러도 구매했다. 앞으로 굿즈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날이 너무 더워 친구들을 만났지만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경기장 부지 밖으로 나가 카페를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애매했다. 이래저래 고민을 하다 겨우 자리가 난 롯데마트 안에서 경기 전까지 시원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경기 시간이 다가와 경기장에 입장했다. 오랜만에 골대 뒤 자리에 앉아 경기장을 바라보니 매진이라는 이야기가 실감이 되었다. 빈자리 없이 가득 찬 경기장을 보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우리 팀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경기 시작 전이지만 거의 모든 관중석이 가득 찼다.
얼른 원정석 보강공사도 끝나고 W석 2층도 가득 차는 날이 오면 좋겠다.


경기 전에 여름 이적시장에서 새롭게 영입된 베카의 입단식이 짧게 진행되었고 이후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려와는 다르게 광주는 경기를 지배했다. 전북이 새로운 감독의 첫 경기인 것도 있겠지만 광주의 경기력이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최근의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전반전에 이순민 선수의 골로 앞서간 광주는 후반전 초반에는 동점 또는 역전을 걱정할 정도로 경기 흐름을 전북에게 내주었지만 추가시간에 터진 이건희 선수의 쐐기골로 2:0 완승을 거두었다. 전북을 상대로 이긴 게 너무나 오래전 일이라 광주팬들에게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우려했던 것처럼 경기장 곳곳에는 숨은 전북 팬들이 있었고, 이들은 퇴장을 당하거나 광주팬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경기 내내 받아야 했다.


자랑스러운 승리의 용사들.
진짜 매진을 기대해 본다.
이 날 이후 전북은 페트레스쿠 감독의 축구로 잘 나간다.


경기 보는 내내 자신들의 팀을 제대로 응원도 못하는 숨은 전북팬들도 답답했겠지만 그들에게 눈치를 주는 광주팬들의 마음도 분명 편치만은 않았을 거다. 요즘 K리그의 관중들이 늘었다고 해도 소수일 뿐이다. 특히 광주의 경우는 더더욱 비인기팀이기에 한 명의 팬도 소중하다. 이 경기에 예매를 하지 못해 경기장을 찾지 못한 광주팬들을 여럿 보았다. 나 역시 애써 산 티켓북으로 예매하지 못하고 따로 돈을 써 가며 예매를 해야만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켜야 하는 부분만 지킨다면 싸울 일이 없다. 이 좁디좁은 국내축구판에서 투닥거리고 얼굴 붉힐 일을 굳이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 매진은 오롯이 광주팬들로만 가득 참 매진이었으면 좋겠다.






1R 수원삼성 0:1 광주FC / 승

2R 광주FC 0:2 FC서울 / 패

3R 전북현대 2:0 광주FC / 패

4R 광주FC 5:0 인천유나이티드 / 승

5R 광주FC 2:0 수원FC / 승

6R 포항스틸러스 2:0 광주FC / 패

FA컵 3라운드 광주FC 2:1 부산아이파크 / 승

7R 대구FC 3:4 광주FC / 승

8R 광주FC 0:0 강원FC / 무

9R 광주FC 0:1 제주유나이티드 / 패

10R 울산현대 2:1 광주FC / 패

11R 광주FC 0:0 대전하나시티즌 / 무

12R FC서울 3:1 광주FC / 패

13R 광주FC 0:2 대구FC / 패

14R 인천유나이티드 1:1 광주FC / 무

15R 수원FC 0:2 광주FC / 승

16R 광주FC 4:2 포항스틸러스 / 승

17R 광주FC 2:1 수원삼성 / 승

18R 대전하나시티즌 1:1 광주FC / 무

19R 광주FC 2:0 전북현대 / 승


번외 경기

8R FC서울 3:1 수원삼성


2023시즌 광주FC 직관 성적

10경기 4승 3무 4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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