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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아델 Apr 26. 2021

장미가 가득한 바르셀로나 책의 날 산조르디

나의 바르셀로나

지난 주말, 산조르디


바르셀로나에 돌아온지 일주일, 바르셀로나의 봄은 흐리고 비오는 날씨가 계속 되었다. 눈이 부시게 내리쬐는 햇살과 그 햇살이 살에 닿을 때 바삭한 느낌이 가장 그리웠던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아쉬웠다. 현재 카탈루냐 땅이 심하게 건조한 상태라 비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친구의 다독임에도 마음 한구석이 속상했다.


지난 주말, 바르셀로나가 드디어 푸른하늘에 쨍한 햇빛을 내어주었다. 지난주 금요일, 4월 23일은 산조르디의 날이었다. 카탈루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 날 부터 주말 동안 바르셀로나는 예쁜 날씨를 선물해주었다.


맑은 날씨와 산조르디의 날을 즐기기 위해 열심히 걸었다.


"산조르디의 날은 관광객이 아닌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우리 바르셀로나를 차지하는 날이야."라고 친구가 얘기할 정도로 산조르디의 날에는 모두가 거리로 나왔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바르셀로나의 사람들이 그라시아 거리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거리마다 장미와 책을 파는 가판들이 가득하고 바르셀로나를 산책하며 선물할 장미 한송이와 책 한 권을 사기위해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해 산조르디는 아주 조용하게 지나갔다. 장미와 책과 사람이 그라시아 거리를 가득하게 채우던 예전의 모습이 사라졌다. 바르셀로나에서 지낸 5년 동안 한낮에 이렇게 한가한 그라시아 거리는 처음이었다. 장미와 책은 가게 안에서만 구매할 수 있었다. 가게의 규모에 따라 입장 인원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가게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밖에 늘어섰다.


코로나가 일년 넘게 지속되면서 익숙한 것들을 버리는 것도 적응이 된 것 같다. 뉴노멀을 받아들이고 따뜻한 햇빛을 쬐며 그라시아 거리를 걷다보니 산조르디의 작은 흔적들을 보는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장미 & 책

산조르디의 날은 카탈루냐의 발렌타인데이와 비슷하다. 다른 축제처럼 가족들과 다같이 즐기지만 연인들이 서로 선물을 주고 받으며 마음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다. 남자는 여자에게 장미를, 여자는 남자에게 책을 선물하는 것이 원래 풍습인데 최근에는 남자가 여자에게도 책을 선물한다.


성인 산조르디의 날은 15세기부터 있었지만 장미와 책을 선물하기 시작한건 얼마되지 않았다. 4월 23일 산조르디의 날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1616년 4월 23일 같은 날 생을 마감한 것에서 유래해 1995년 유네스코가 지정했다고 한다. 독서와 저작권을 증진하는 날이 장미만 건네던 산조르디의 날과 만나 책을 함께 선물하는 멋진 전통이 되었다.


장미와 책을 선물한 카탈루냐 사람들은 기사와 용의 모양을 한 초콜렛이나 카탈루냐 국기 모양을 한 산조르디 빵을 먹으며 주말을 가족, 연인과 함께 보낸다. 산조르디 빵은 치즈와 돼지고기를 갈아서 만든 소브라사다를 넣은 빵으로 붉은 색의 소브라사다를 사용해 카탈루냐 국기의 빨간 선을 표현한다.






프린세스 & 드래곤 산조르디 장미의 전설



장미를 선물하는 전통은 산조르디의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옛날 옛적에 카탈루냐의 몽블랑이라는 작은 마을에는 사람들을 괴롭히던 용이 있었다. 서양의 용이 항상 그렇듯 이 마을의 용도 사악한 존재였다. 용은 마을의 가축들을 잡아먹었고 마을은 용으로 인해 점점 황폐해져갔다.


게걸스럽게 모두 먹어대는 용 때문에 더 이상 바칠게 없던 마을 사람들은 용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제비뽑기로 사람을 뽑아 희생하기로 했다. 매일 하루에 한 명씩 용에게 바쳐지던 중 하루는 공주가 제비를 뽑아 용의 먹이가 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옛날 옛적의 이야기답게 공주가 막 용에게 먹히기 직전 백마탄 기사가 나타난다. 산조르디가 나타나 그의 긴 검을 뽑아 용을 무찌른다.


검으로 용을 찌른 자리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는데 그 피에서 장미가 피어났다고 한다. 기사가 용을 무찌르고 공주와 결혼해 행복하게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이 전설에서 장미를 선물하는 풍습이 시작되었고 산조르디는 작은 몽블랑 마을 뿐만 아니라 카탈루냐를 지키는 존재가 된다.






카탈루냐를 지키는 산조르디


1456년 부터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이 된 산조르디는 19세기 카탈루냐 문화의 부흥과 정치적 입지를 높이기 위한 운동인 카탈루냐 르네상스 운동의 심벌이 되었다. 스페인의 억압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자했던 사람들에게 산조르디는 카탈루냐의 정신적 수호성인이 되었다. 이런 산조르디의 흔적은 바르셀로나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까사 바트요


1904년에서 1906년 가우디가 리모델링한 바트요 가족의 집은 산조르디의 전설이 담긴 건물로 알려져 있다. 1층과 2층 겉면에 세워진 기둥을 비롯해서 건물 전체의 발코니는 다리나 얼굴 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용에게 잡아먹힌 동물이나 사람의 뼈를 표현 한 것 같다. 뜨랑까디스 기법으로 색색의 타일을 깨서 표현한 반짝이는 벽을 따라 올라가면 지붕위에 커다란 곡선이 물결치고 있다. 비늘처럼 타일들이 붙어있고 끝에는 삐죽한 장식들도 달려있는데 마치 커다란 용이 건물 위를 감싸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용의 등위로 기다란 굴뚝이 솟아 있는데 산조르디가 용의 등에 꽂은 칼인 것 같다. 용의 붉은 피에서 피어난 장미 꽃은 용 바로 아래에 있는 발코니에서 볼 수 있다.


카사 바트요는 매번 감탄하게 되는 건물이다. 낮이나 밤에 보아도 맑은 날이나 흐린날에 보아도 아름답다. 산조르디의 전설이 더해져 카사 바트요는 신비로운 매력까지 갖고 있는 작품이다. 산조르디 축제 동안 발코니에 장미 장식을 설치해 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안에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가우디의 예수님이 하늘을 보며 기도를 하고 있고 왼쪽에는 수비락스(수비라치)의 산조르디가 성당 안의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산조르디 동상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첫 주춧돌이 놓여진 125주년을 기념해 2007년에 설치되었다, 성당의 가운데 네이브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십자가에 걸려있는 예수상과 마주보고 있는데 3미터 크기의 거대한 조각상은 성가대석이 있는 8.5미터 높이에 위치하고 있다.


맑은 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들어서면 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성당 안은 알록달록한 색이 가득하다. 고개를 들어보면 가우디가 의도한 대로 햇빛 가득한 숲속에 들어와 있는 듯해서 행복해진다. 그렇게 성당을 둘러보다가 위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산조르디와 눈이 마주치면 들뜬 마음이 한 번 가라앉으면서 등 뒤에 있는 예수상을 바라보게되고 그렇게 경건한 마음을 되찾게 된다.







몬세라트


마지막으로 산조르디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은 몬세라트이다. 수비락스는 여러 해에 걸쳐 몬세라트 곳곳에 조각품을 남겼는데 산조르디 조각상이 성당과 가장 가까이 위치해있다. 이 조각상은 2미터의 크기로 1986년에 놓여졌다고 한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산조르디와 달리 몬세라트의 산조르디는 바위를 조각해 만들어졌다. 조각된 형태는 거의 같지만 놓여있는 장소와 만들어진 재료 때문에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다른 점은 몬세라트의 산조르디와는 눈을 마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몬세라트에 도착하면 성당까지 가기위해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마지막에는 꽤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하는데 이 계단의 끝에 산조르디가 기다리고 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다 올랐을 때 산조르디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한다. 눈인사를 나눈 후 조각상의 눈을 계속 바라보면서 걸으면 그의 눈동자가 따라온다. 왠지 내가 가는 길을 지켜주겠다는 것 같아서 몬세라트에 갈때 마다 혼자 했던 나만의 의식이었다.


오랜만에 바르셀로나에 돌아와 처음 맞이한 축제인 산조르디는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설레이는 날이었다. 내년에는 예전처럼 장미, 책, 사람들이 가득가득하기를 바란다.











나, 아델


한국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3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유럽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 혹은 친구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를 너무 사랑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크기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보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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