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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아델 Apr 02. 2021

바르셀로나의 부활절 행사

나의 바르셀로나



부활절 휴일 Semana Santa


올해는 3월 28일부터 4월 3일까지가 부활절 주간이다. 스페인어로 세마나 산타라고 불리는 한 주가 가톨릭 신도들에게는 아주 성스러운 시간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황금연휴와 같다. 세마나 산타 내내 미사를 비롯한 종교적 행사에 매일 참석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다른 부활절 주간을 보내고 있다. 밤 10시 이후 외출과 여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종교 행사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바르셀로나의 세마나 산타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 지방은 아마도 스페인에서 가톨릭과 가장 거리가 먼 지방일 것 같다.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짓고, 성인들의 날을 축제로 지내지만 그 이상으로 가톨릭에 대한 신앙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스페인의 처음이자 유일한 산업혁명을 일으킨 곳인 만큼 실리를 추구하는 카탈루냐 사람들의 성향 때문인지 가톨릭에 의한 풍습을 따르는 것 이외의 종교 행사를 거창하게 치르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부활절 주간에 카탈루냐 혹은 유럽으로 휴가를 즐기러 간다. 부활절 주간이 끝나기 전 시간이 된다면 휴가를 다녀와 가족들과 모여 부활절 케이크를 나눠먹는 정도로 기념한다.


이와는 아주 다르게 가톨릭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안달루시아 지방의 사람들은 부활절 주간 내내 열정적으로 종교행사에 참석한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수도인 세비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행사들이 열리고 이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한 사람들로 도시가 북적인다고 한다. 뉴스를 통해 세비야의 부활절 행사를 본 적이 있는데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성당 앞에 모여 예수상을 한 번 보거나 만지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이 마치 아이돌의 콘서트장을 보는 듯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전혀 보지 못한 장면이라 너무나 신선했다.


부활절 주간 동안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 한적해진 바르셀로나에서도 종교적 행사가 벌어진다. 바르셀로나의 부활절 행렬은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행렬마저도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아닌 세비야 사람들이 시작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는 성당 주변에서 진행하는 작은 부활절 행사들만 있었는데 바르셀로나로 이주 온 세비야 출신의 사람들이 큰 규모의 행렬을 그리워했고 직접 투자하고 시작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져 바르셀로나의 부활절 행렬을 보러 갔다.






바르셀로나의 부활절 행렬


부활절 주간은 종려 성일, 엘 도밍고 데 라모스 El Domingo de Ramos로 시작된다. 부활절 바로 전 주의 일요일, 그리스도가 베다니아에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한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종려 성일 아침 10시 라발지구에 있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산 아구스티 Sant Agustí의 문이 열리고 종려나무를 든 사람들 뒤로 어린 나귀를 탄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 성상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이 뒤로 행렬이 이어졌다.


커다란 그리스도의 성상을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직접 들어 움직인다. 성상을 받치고 있는 사람들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성상 앞에서 방향을 일러주는 사람의 말만 듣고 이동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외에 높이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람블라 거리에 다다랐을 때 보도의 높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성상이 한쪽으로 기울 때마다 무게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종교가 없는 내가 봐도 이런 고통을 인내하는 그들의 신앙심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산타 마리아 델 피 성당에서 미사가 끝난 뒤 사람들은 종려나무나 월계수 나무를 들고 성당 뒤에 모였다. 알록달록 인형이 달린 나무, 색색깔 리본을 매고 있는 나무 등 다양했다. 부활절에 대부와 대모는 그들의 대자, 대녀에 게 종려나무나 월계수 잎을 선물한다고 한다. 신부님은 사람들이 들고 온 종려나무나 월계수 잎에 축복을 해준다.


이 풍습은 예수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군중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그를 환영했다는 복음서의 구절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신부님이 월계수 잎에 성수를 적셔 사람들에게 뿌려주었다. 갖고 있는 종려나무와 월계수 잎에도 축복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높이 들어 올렸다. 이렇게 축복받은 종려나무와 월계수 잎을 자신의 집 발코니에 걸어두면 악귀를 쫓고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모두에게 God Bless You!







사그라다 파밀리아 부활절 기념행사


부활절이 시작되는 주의 금, 토, 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는 조명을 이용한 행사가 있었다.


수비라치 Subirachs 가 건축한 고난의 파사드를 부분마다 조명을 비추고 라디오 연극처럼 설명해 주었다. 카탈루냐어로만 하는 행사라 세세하게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알고 있는 내용들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었다.


번쩍번쩍 화려한 조명쇼를 기대했던 나에게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여러 색의 조명을 받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성금요일의 바르셀로나


부활절이 끝나가는 성금요일,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에서 십자가의 길, 행사가 있었다. 십자가의 길 혹은 고난의 길로 불리는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곳에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갈라 비아 언덕)을 향해 걸었던 약 800m의 길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의미한다.


성당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나와 성당 앞 광장을 한 바퀴 돌아 성당으로 돌아가는데 재판부터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까지 14개의 사건들마다 행렬을 멈추고 기도한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따라 걷고 멈추기를 함께 반복하며 기도문을 읊는다. 신부님은 카탈루냐어와 스페인어로 번갈아 가며 설명하고 기도했다. 십자가는 다른 신부님들이 한 명씩 번갈아 가며 들고 움직이는데 얼핏 봐도 그 무게가 상당해 보였다. 그 행렬을 눈으로 따라가면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십자가의 길이 끝난 후 성당 앞 광장으로 십자가를 지고 있는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성상이 들어섰다. 해가지고 어두운 저녁 은은하게 불을 밝힌 채로 들어오는 성상의 모습이 더욱 위엄 있어 보였다.


내 뒤에 계셨던 안달루시아 출신의 할머니들은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향해 “정말 예뻐요! 너무 멋져요!”를 쉬지 않고 외치셨다. 마치 무대 위 아이돌에게 인사를 건대는 듯했다. 얼마나 감동스러우셨는지 계속해서 감탄하셨는데 진심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성금요일의 행렬을 마지막으로 부활절의 큰 행사들이 마무리되었다.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가톨릭과 사람들의 신앙심을 이렇게 잠시나마 느껴본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었다.


종교가 없는 나에게는 예수님을 환영하는 행렬과 서로의 축복을 빌어주는 모습이 작은 축제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활절에 대해 조금은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 아델


한국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3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유럽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 혹은 친구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를 너무 사랑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크기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보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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