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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빈 Apr 08. 2024

오토홀드 기능이 없는 차라면?

운전을 시작하고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처음으로 백화점을 갔다. 낮에 엄마랑 둘이서 갔는데 출발 전부터 긴장이 많이 됐다. 일단 백화점 주변은 늘 혼잡하고 지하주차장 들어가는 길에 버스정류장과 택시승강장이 차례로 있는 도로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도로 위는 만만치 않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인파, 꼬리물기 하는 차량, 갑자기 옆에서 끼어드는 차량, 골목길에서 튀어나오는 행인까지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지하주차장에 들어서서는 한결 나았다. 제일 걱정했던 '좁은 통로 지나가기'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각을 넓게 잡고 벽에 부딪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붙였다가 회전하면 차의 엉덩이 부분까지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주차도 예상했던 것보다 쉽게 해결됐다. 까다로운 각도의 주차자리는 뒤차에게 넘기고 편하게 댈 수 있는 자리를 찾아서 1-2층 정도 더 내려가니 여유 있게 댈 수 있는 T자 주차공간이 있었다. 문제는 나갈 때였다.


쇼핑을 다 마치고 가려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였는지 나가려는 차들이 많았다. 한 층씩 멈추지 않고 천천히 올라가다 경사로에 진입했는데 앞의 차에 브레이크등이 들어오면서 서서히 멈춰서는 게 보였다. 그때 내 마음속에서 터져 나온 외침은,


'안돼!!!!!!!!!!!!! 멈추지 마아아아아아!!!!!!!!!!!!!!!!!!!!'


내가 이렇게 절실하게 외친 이유는, 내 차에는 오토홀드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토홀드(Auto Hold) 기능이란, 자동 정차 기능을 말한다. 기어가 드라이브, 중립, 후진 상태일 때 브레이크를 밟고 차량이 정차하면 발을 떼어도 차량이 움직이지 않고 정지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기능이다. 오토홀드 기능이 있으면, 경사로에서 정차했을 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있다가 출발할 때 액셀을 밟으면 된다. 


그러나 오토홀드 기능이 없으면, 정차 시 브레이크를 계속 밟고 있다가, 다시 움직일 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 액셀로 옮겨야 하는데 이때, 차가 경사 때문에 뒤로 살짝 밀리는 느낌이 든다. 아빠랑 운전연수를 하면서 제일 공포심을 느꼈던 상황 중 하나였는데, 처음 경사로에 멈춰 섰을 때 뒤차와 충돌할까 봐 기겁했던 아찔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뭐랄까, 롤러코스터를 탔는데 정상지점에 도달하기 직전에 갑자기 멈추더니 뒤로 살짝 밀릴 때 '어라, 살아서 내릴 수 있을까?' 를 고민하게 될 때의 기분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아빠한테 몇 번이고, 뒤로 살짝 밀리는 느낌이 들뿐이지 뒤로 데굴데굴 절대 안 굴러간다, 뒤차가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1m 이상 떨어져 있다는 설명을 듣고 연습을 했는데도 막상 실전에서 하려니 걱정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설상가상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차는 올 수 있는 최대로 내 뒤에 바짝 붙어 섰다.


'혹시나 뒤로 밀려서 뒤차랑 부딪히면 어떡하지?'


'브레이크에서 액셀로 옮기는데 갑자기 발에 쥐가 나면?'


'뒤차는 왜 이렇게 딱 붙은 거야.. 흐엉'


온갖 고민으로 정신이 없는데 앞차가 출발했다. 침을 꼴깍 삼키고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친 다음 브레이크에서 액셀로 빛의 속도로 샤샥, 옮겼다. 살짝 밀리는가 싶더니 이내 우우웅~ 소리를 내며 차가 정지상태를 거쳐 앞으로 슬금슬금 움직였다. 엄마도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가다 서다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햇빛이 비추는 지상세계로 나올 수 있었다.


오토홀드 기능이 없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엑셀을 지그시 누르자. 대신 최대한 빠르게 브레이크에서 엑셀로 옮겨야 한다. 약간의 밀림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전속력으로 뒤로 굴러 떨어지지는 않는다. 상상력은 잠시 접어두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브레이크에서 엑셀로 발을 빠르게 옮기다 보면 급한 마음에 엑셀을 강하게 누를 수 있는데 그러면 차가 순간적으로 앞으로 튀어나갈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좀 더 안전하게 운전하기 위해선 앞차가 충분히 앞으로 가서 여유공간이 생겼을 때 움직이는 게 좋다.


참고로, 뒤차가 너무 가까이 붙어있다면? 일단 살짝 밀리더라도 뒤차와 부딪힐 만큼 밀리진 않기 때문에(뒤차가 고의적으로 10cm도 안 되는 간격으로 딱 붙여서 정차한 게 아니라면) 겁먹지 말고 원래 하던 대로 운전하자. 그리고 오토홀드 기능이 없어 차가 뒤로 밀리는 걸 뒤차가 인지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절대 뒤에 가까이 붙지 않는다. 알아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다^^


물론, 최근에 나오는 차들은 오토홀드 기능이 없는 차량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기능이기 때문에 차 밀림에 대한 걱정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양화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오토홀드 기능이 없는 차가 있을 수 있으니(그게 바로 접니다!!), 경사로에서는 될 수 있으면 너무 가까이는 붙지 않으면 좋겠다! 나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그대의 안전을 위해서!





저녁에 집에 와서 아빠한테 오늘 있었던 이 대단한 모험(!)에 대해서 말하니까 허허 웃었다. 그러면서,



오토홀드 기능이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해. 기능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십여 년을 타다가 폐차시키기 직전에 오토홀드 기능이 있는 걸 알게 되는 경우도 주변에 왕왕 있더라고~



혹시.. 우리 스카(내 차 애칭)에게도..? 숨겨왔던 오토홀드 기능이 있을지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눈 씻고 찾아봐도 13살 우리 스카에겐 오토홀드 기능이 없었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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