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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Jul 11. 2023

오늘도 확실하게 포기하고 느슨하게 이어갑니다

오래가는 끈기의 비밀

자주 듣는 이상한 칭찬이 있다. “꾸준히 하는 게 정말 대단하세요” “독기가 있으시네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대단함‘이나 ’ 독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나는 쉽게 질려한다. 미친 듯이 불타지도 않는다. 열정은 있지만 열심히는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자주 듣는 이유를 생각하다 나름의 비밀을 찾아냈다.


어릴 적 들었던 잔소리를 떠올려보자. 나의 변하지 않는 특성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애가 왜 이렇게 산만하니 “를 자주 들었다면 자율성이 높은 사람, “숫기가 없어서 눈치만 봐가지고 어쩌니...”를 자주 들었다면 분위기를 예민하게 파악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어릴 적엔 반복해서 듣지만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평가성 잔소리가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잘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유독 튀어나온 그 부분이 손잡이가 된다.

내가 부모님께 자주 들었던 말은 바로 ”너는 왜 끝까지 하질 않니 “ 였다. 다른 아이들은 10을 하라고 하면 그 이상을 해내기도 하는데, 너는 모든 일을 시키는 딱 그만큼만 해내고 멈춘다는 것이었다. 사실 어릴 적의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7-8에서 멈춘다는 것을 말이다. 더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거기까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벼락치기라는 것을 안 해본 것은 아니나, 공부를 하느라 밤을 새본 적은 없다. 부모님은 성인이 된 나에게 말했다. 어린 나는 이것저것 관심이 많았는데, 그 관심들에 대한 열정이 모두 오래가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다고. 성인이 되어서도 이렇게 관심을 바통터치만 하다 뚜렷한 게 없으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타인이 보는 나의 첫 번째 강점이 ‘오래가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들을 몇 가지 모아본다면.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10년을 품었고, 총 6년을 매달렸다. 그중 약 4년간 100번이 넘는 탈락을 경험했다. (나이가 어려 2년간은 지원하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는 학교생활을 병행하며 많게는 3개를 했지만, 대부분 한 가게당 2년 정도를 유지했다. 유튜브도 3년간 4개의 채널을 만들었다가 실패하고 이번에 5번째 채널에 도전하는 중이다. 숏폼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꾸준히 올리니 2개월 만에 10만 계정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뛰는 건 상상하기도 싫어했던 내가 매일 아침 조깅을 하니 이제는 조랑말처럼 달린다. 마지막으로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놓지 않은 일기 쓰기이다. 일기장으로 책장을 거뜬히 채울 수 있다. 그만큼 기록에 대한 집착이 상당하다. 이런 것들을 유지하는 데 있어 딱히 힘을 주지 않았다. 그냥, 모두 지나 보니 어느 새가 되었다. 끈기에 대한 칭찬을 들을 때면 ‘어느새’의 힘에 대해서 감사하게 된다.


그 비밀은 ‘확실하게 포기하고 느슨하게 이어가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여기저기 관심이 많다. 어릴 적 잔소리처럼 말이다. 찔러보고 마는 것들도 그만큼 많다. 그중에서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들만 남기고 굳이 애써야 하는 것들은 확실하게 포기한다. 다음은 남아있는 몇 가지의 일들을 무리되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 느슨하게 반복한다. 심지어 어릴 적보다 책임감은 많아지고 시간은 줄어들면서 7-8도 아닌 6에서 멈추는 듯하다. 그래서 정했다. 모든 일에 60%만 하자. 그게 나의 법칙이다. 신기하게도 60% 만큼의 열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 남들 눈에는 100% 그 이상으로 보이는 ‘능숙함’이 생겼다. 힘을 들인 적이 없으나 강해져 있었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어야 하는 정도는 절대 아니다. 나같이 순간적으로 미친 듯이 열심히 하는 힘이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된다. 마치 자전거의 기어와 같다. 자전거의 기어를 3단 그 이상으로 올려 뻑뻑한 페달을 밟는다면, 초반에 빨리 갈 수는 있어도 오르막이 나오는 순간 다리에 쥐가 날 수 있다. 그다음 오르막이 저 멀리 보이면 긴장하게 된다. 한계에 다다르면 결국 두 다리를 땅에 대고 멈춰야 하는 순간이 온다. 처음부터 기어를 1-2단으로 놓는다면 어떨까. 초반에는 걸어가는 건지 조깅을 하는 건지 티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속도는 빠르지 않을지라도 주변의 풍경에 마음을 맞추며 갈 수 있다. 천천히 달리며 새로 탄 자전거를 살펴본다. 하나하나 만져보고 몸에 맞게 자세도 고쳐본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등 뒤에 오르막이 있는 것이다. 결국 수면 위에 오르는 사람은 빨리 가는 사람이 아닌 멀리 가는 사람이다. 출발할 땐 알려주지 않지만 지치면 나만 손해다. 오래도록 사랑받고 싶다면, 불타오르지 않는 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면 확실하게 포기하고 느슨하게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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