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든 해내는 사람은 힘이 세다
'시작'이라는 단어만큼 상반된 감정을 안고 있는 것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시작은 겁이자 설렘이다. 특히 '시작해 보자'라는 마음먹음이 필요한 순간일수록 두려움이 많이 느껴진다. 누군가 겁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거짓이다. 새로운 시작은 안정에서 탈피하는 것이며, 해보지 않음에서 해보는 것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혹 이전에 해본 적이 있는 일이라면 더 겁이 나기도 한다. 이전보다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걱정이 가로막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작한다. 작게는 안 해보았던 요리나 청소를 시작하고, 크게는 삶의 방향을 바꿀만한 선택을 시작한다.
나 또한 겁이 많은 작은 어른임을 매 순간 느끼고 만다. 그때마다 나는 2018년, 과외 첫날을 기억한다. 당시 나는 영어를 탁월하게 잘하는 대학생도 아니었으며, 혼자 공부를 해서 운 좋게 과외 자리를 얻게 되었다. 오죽하면 대학에 들어온 이후 영어를 쳐다보지도 않아서 동사의 쓰임도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약 3년간 시급 약 6000원의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만 하던 나는 '이렇게 해서는 절대 아나운서 학원비와 생활비를 벌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금전적 고충을 해결하고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과외 알바였다.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하는지도 몰라 고등학생 때도 듣지 않던 EBS를 밤새 찾아보며 교수법을 독학했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학생의 집 문 앞에 서있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망쳐버리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30분 일찍 도착했지만 20분을 서성거렸다. 그 마음이 아직도 또렷하다.
다행히 실전파였던 나는 뻔뻔한 얼굴로 첫 수업과 학부모 상담을 마치고, 웃는 얼굴로 문을 닫은 후 멍하니 서있었다. 두려움을 이겨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후 수많은 아이들의 집 문을 두드렸다. 3년 뒤에는 고등 학원 강사를 한다. 정확히 학창 시절, 쉬운 문제를 틀리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그 선생님들의 모습으로 말이다.
시작하는 순간에는 알지 못한다. 그 시작이 꽤 기나긴 여행을 열어주는 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굳이 오래 유지하지 않더라도 시작하는 것들에는 의미가 있다. 마음을 이동하고 몸을 이동하는 행위이니 말이다. 불편함을 구태여 만드는 것은 나태한 인간의 뇌에게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시작을 열고, 또 반복하면 탄력이 생긴다. 요령이 생긴다. 힘을 빼는 방법을 알게 된다.
이후에 감당해야 할 것은 유지력이다. 시작한 것을 끝까지 유지하는 힘. 지구력이라고 한다. 근력과는 다르다. 지구력은 버틸지(持)에 오랠 구(久) 자로 이루어져 있다. 시작을 오랫동안 버텨내는 것. 지구력을 가진 생명체는 많지 않다. 그중에서 가장 지구력이 높게 만들어진 생명체가 바로 '사람'이다. 원시시대 오래도록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능력이 지구력일 것이다. 지금 시대에는 멧돼지에게 쫓길 일은 없으니, 우리의 삶에서 오래도록 살아남기 위한 능력이다. 버텨야 살아남는다. 버틴다는 말이 애처롭게 들리기도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능숙해진다는 것이다. 능숙해질 때까지 버티자. 이를 잃게 되면 언젠가 다시 시작하는 두려움을 맛보아야 한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해내는 사람은 힘이 세다. 누군가에게 대범함으로 보일지라도, 그는 수많은 망설임을 확신으로 기도하는 과정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오늘도 시작하는 겁쟁이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