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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Jul 16. 2023

기내식 먹는 기분으로 살기

마음이 지칠 땐

마음이 지치는 순간이 오면 이제는 그대로 둔다. 사람은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면 가장 먼저 원인을 파악하려 애쓴다. 하지만 정신에 관련된 문제들은 때때로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한 정신과 의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정신 질환은 교통사고와 같다'. 그러니 마음이 지치거나 정신이 피로한 것도 굳이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교통사고처럼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우연한 사고이니 말이다. 만약 지치는 순간이 온다면, '왜 벌써 지쳐?' '대체 때문에 이렇게 괴로울까?'라고 재촉하지 말자. 


구태여 원인을 찾는다 하더라도, 희생양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이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를 판단한다고 하여 상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마음이 지치는 순간이 오면 그대로 둔다. 가만히 바라본다. '나 지쳤구나'라고 알아주는 것이 먼저이다. 지치는 빈도가 잦아질수록, 외면하는 빈도가 잦아질수록 외상이 커지게 된다. 그러니 작은 상처일 때 알아주고 자주 치료해주어야 한다.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나는 종종 서점에 제목을 읽으러 간다. 가만히 서서 제목들을 읽어가다 보면, 눈에 밟히는 제목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어제는 마음에 드는 서재 앞에 앉아서 책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제목이 있었다. '기내식 먹는 기분'. 오묘한 문장이다. 책을 펼쳐보지 않아서 내용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기내식을 먹는 기분이야말로 나에게 집중하는 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내식은 평범하다. 특색 있는 음식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다수의 승객들에게 동일한 음식을 간편하게 제공하는 기내식은 대체로 흔한 맛이다. 기절할 정도로 맛있지도, 엄청나게 실망스럽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맛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번 기내식을 기다린다. 이유는 하나다. 여행을 시작하며, 혹은 마치며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평범한 맛의 음식을 우리는 들여다보며 먹는다. 괜히 한번 더 음미한다. 오롯이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모든 행동들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고 끼니를 챙겨 먹는 것이 아닌 때우는 것으로 생각된다면 기내식 먹는 기분으로 삶의 태도를 바꿔보자. 조금은 긴 시간 현재에 머무를 수 있다. 무리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낯선 공간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약간의 '낯선 기분'은 정신없는 태엽 같은 삶을 잔잔하게 만들어준다. 


마음이 지치는 순간이 오면 나를 원망하지 말고 기내식을 먹는 기분을 만들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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