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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Aug 23. 2023

지속 가능한 행복, 행복, 행복을 위하여.

행복한 생명체가 되는 법

중학교 시절, 구립 도서관에 가면 맨 안쪽의 구석진 책장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했다. 넓은 도서관 골목 사이를 지나다 보면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 문이 등장했다. 성인 남성은 살짝 허리를 숙여야 하는 정도의 층고였다. 중학교 3학년 때 벌써 165 정도의 키였던 나에게는 딱 알맞은 높이였다. 낮은 천장과 바닥을 딱 채우는 낡은 책장들이 가득했다. 낮은 조도와 좁은 공간이 나를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공간에는 인문학과 문학에 대한 책들이 많았다. 작은 창문이 만든 습한 공간은 오래된 책들의 눅진한 냄새를 더욱 증폭시켰다. 내가 서점에 갈 때마다‘행복’에 대한 책 제목 앞에서 멈추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어릴 적부터 행복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떨 땐 공평한 감정 같기도 했지만, 또 어떨 땐 너무도 사치스러운 것으로 느껴졌다. 때로는 행복을 충만하게 느끼는 순간이 가장 슬펐다.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걸 알아버린 것이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서는 ‘현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재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이고, 과거는 기억의 흔적이고 미래는 상상이자 허상이다. 그러니 현재에 집중하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하지만 단지 머릿속으로 ‘현재에 머무르자’라는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우리는 감정과 느낌으로 다가가야 한다. ‘현재’에 머무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지상의 양식>을 통해 두 가지 키워드를 얻었다. 첫째는 소중함이다. 지속 가능한 행복은 사치가 아니다. 늘 존재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지속가능한 행복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기보단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내일도 살아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살아있으나 죽어가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향한다. 그 누구도 언제 이 삶을 마감할지 장담할 수 없다. 나는 종종 고속도로의 ‘오늘 사망자 수’를 마주하는 순간 아득해진다. 누군가의 오늘은 없으니 말이다. 그 누군가가 내가 절대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이 현재는 당연하게 얻어지는 것으로 말하기 어렵다. 경이로우며 소중한 것이다. 소중한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생명은 사라진다. 그리고 또 다른 생명은 탄생한다. 이를 반복하는 것이 우주이다. 우리는 우주의 생태계에 충실한 생명체다. 이를 인정하고 소중함을 인지하는 순간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감사가 시작된다.


두 번째 키워드는 ‘용기’다. 현재에 대한 행복은 용기 있는 사람이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은 스며드는 것이라고 하였거늘, 웬 용기가 필요한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것에 뛰어드는 순간 행복해질 수 있는 준비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인간은 본래 편안한 것을 추구한다. 무언가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편하다. 때문에 그 자리에서 머무르는 것을 택하는 것이 본능이다. 머무르는 것이 지속되면 도태된다. 도태되는 것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인간의 마음은 변화하길 바란다. 그 두 가지가 충돌하는 것이 ‘선택’의 기로다. 행복은 ‘기대감’에서 강하게 충족된다. 기대감이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눈치 보지 않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마음이 아닐까. 단순히 아침 시간을 풍요롭게 보내는 것 또한 기대감을 충족하는 행위다. 다만 이 기대감이라는 것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열정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 내 몸과 마음을 변화시킬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더 원초적인 것은 ‘행복해질 용기’다. 스스로를 행복한 감정으로 만들기 위해, 현재에 있는 그대로 머물기 위해 나를 변화시킬 용기가 필요하다. 우울한 마음이나 무기력이 들 때에는 이 용기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새로운 것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사라진 것이다. 이때에는 스스로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갖기 위한 방법을 찾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가장 이상적인 현재를 만드는 용기가 있을 때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행복감을 가져다줄 것 같다면 착각이다. 그것은 회피이자 도태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움직이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쉼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분명한 새로운 것들이 존재할 것이다. 새로운 길을 산책하거나, 새로운 책을 읽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등. 우리는 모든 순간을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고, 만들어가는 중이다. 매번 똑같다고 느껴진다면, 자신이 똑같은 상황이라고 착각하고 있거나 새로워질 용기를 갖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행복한 생명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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