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삶을 그리는 환상은 가져볼 만하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딱 1분, 그 순간에 머무를 수 있다면 고등학교 2학년의 2교시 쉬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적당히 아침의 풋냄새는 사라졌지만 아직 점심시간까지는 2번의 수업이나 남아있어 가장 순수하게 쉬는 시간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열려있는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이따금 교실의 중턱까지 펄럭이는 커튼과 예상치 못하게 책상 사이를 뛰어다니는 남자아이들. 교실 한 구석 거울 앞에 모여서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한 손에 틴트를 쥐고 수다를 떠는 여자아이들. 뒷문에서 "야 윤수빈!"이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면 환하게 웃으며 나오라는 손짓을 하는 친구. 과거의 나는 평범함의 절정에 있는 그 순간 알았다. 지금이 언젠가는 가장 그리운 장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럴 때마다 아득해지곤 했다. 당시는 매일이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그 순간에도 모두는 다른 상상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따금 재미있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10년 뒤에는 모두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저 친구는 분명 돈은 많지 않아도 가장 행복한 어른이 될 거야. 저 친구는 동네 병원에서 어르신들에게 사랑받는 의사가 되겠지? 저 친구는 왠지 공무원을 하다가 5년 차에 사직서를 내고 생각지도 못한 재밌는 일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지금, 10년이 더 지났다. 같은 반에 있던 아이들의 삶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종종 들려오는 소문 혹은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PC방에서 롤 게임을 지겹도록 하던 한량 같던 친구는 국제대회 프로게이머가 되었고, 왠지 인정머리가 없다고 느꼈던 친구는 간호사가 되었다. 교대를 가고 싶어 하던 친구는 어엿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수업계획서를 준비하고 있다. 내 눈에는 아직도 학생인데 말이다. 그중 가장 예상치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건 나였다.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사람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모두가 네가 제일 의외의 인물이라며 증언했다.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앞으로도 나의 삶은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갈 것으로 예측된다.
지코의 Artist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남이 재단할 수 없어 내 인생은 내가 디자인해
시선 빼 그러다 목에 담 와 손에 잡히지 않는 건 다 놔
구색 따윈 갖추지 말자
나는 이 두 번째 문장에서 내 삶의 가치관을 관통당했다. 내 인생은 내가 디자인한다. 다르게 말하면,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언젠가 책에서 이 잔인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읽은 뒤로 머릿속에 강렬히 자리 잡았다. 인생은 셀프구나. 그렇다면 원하는 삶을 그리는 환상을 가져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당시에는 환상인 줄만 알았다. 1년, 2년, 10년을 지나오니 지금 말하는 '가장 의외의 일'들을 사실은 계속해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사소해서 눈치채지 못했을 뿐. 이를테면 학창 시절 이면지에 툭하면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렸다. 옆반에서 미대를 준비한다는 소위말해 '노는 친구'가 쉬는 시간에 우리 반에 와서 그 낙서를 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뭐야, x밥이네'라며 내 것인 줄도 모르고 내 앞에서 말했다. 머쓱했다. 진짜 별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0년간 계속 끄적이듯 그렸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그리는 순간이 편안함을 주었을 뿐이다. 아직도 서툴지만 누군가는 내 그림을 액자에 걸어놓는다고 한다. 또 어릴 적부터 속상한 일이나 기쁜 일들은 모두 일기장에 털어놓았다. 연필, 샤프, 볼펜으로 도구가 바뀌어갈 뿐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였다. 숨어서 써서 몰랐다. 그걸 20권이 넘는 낡은 노트를 보고 알았다. 모든 것은 시간이 쌓인 뒤에야 수면 위로 드러난다는 것을.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 내가 꾸준한지도 몰랐기에 구색을 갖출 필요도 없었다. 그 일들을 드러내는 게 일이 된 현재는 애써 보여지기 위한 구색을 갖추는 것을 경계한다. 사람들의 시선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늘 마음에서 편안함이 우러나오는지를 점검한다. 마음이 따르지 않는 일은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모두 창작가다. 태어나는 순간 기록되고, 기록한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면, 내가 가장 원하는 그림을 그려볼 용기를 내어볼 만하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원치 않은 그림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적어야 하는 비극은 없기를 바란다. 원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면, 다시 그리면 된다. 나는 새로 쓴 노트가 수없이 많아서, 완성되지 못한 노트를 버리고 또 버렸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버리게 될 예정이다. 불과 몇 개월 전 적었던 일들과 그려왔던 그림들이 지금 보면 하찮고 흥미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무렴 그럼 어떤가. 다음 그림은 분명 마음에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