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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Sep 28. 2023

이 소박한 밥상 하나가 차려지기까지

집밥이 주는 온기를 잊지마세요.

명절을 앞둔 저녁. 남편과 동네 작은 술집에서 연어와 육회를 먹었다. 술을 끊겠다고 브런치에 공언한 덕(?)에 이 맛있는 안주를 술과 맘껏 즐길 수는 없었지만 고운 자태의 회 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설렜다. 단, 내일 오전에 동그랑땡을 부치겠다는 나의 말에 남편이 이렇게 응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예쁜 빛깔의 연어와 육회


"동그랑땡 하려고? 음..(작은 한숨) 몇 개만 하더라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식감도 좋고 아! 맛있다는 생각이 들게, 그렇게는 못 만들어?"



타고난 손재주가 부족한 탓에 살림에 영 실력이 없었던 나였지만, 2년여의 미국 생활은 그야말로 삼시 세끼를 차려낼 기회를 주었다. 새벽에 눈을 떠 아이 둘과 남편 도시락부터 시작해서 하루종일 부엌 안을 종종 거리며 다녔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실력은 없었지만 요리를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즐거워하는 편이었기에, 2년여간 빻고 굽도 다양한 음식도 만들면서  집밥 스킬을 새끼손가락만큼 정도 키울 수 있었다. (물론 남편이 인정하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주일마다 다니던 한인 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식사 준비를 했었다. 맛깔스러운 맛을 내는 손재주가 딱히 없는 나는 주로 시간과 정성이 돋보이는 반찬을 종종 했는데 그중 하나가  동그랑땡이었다. 고기와 기름진 걸 질색하는 남편은 많이 먹어야 두어 개였지만, 온갖 유튜브를 뒤져 새우도 넣어보고 돼지고기랑 소고기를 섞어도 보며 온갖 정성 더한 덕분에 다른 분들은 감사하게도 맛있게 드셔주셨다. 


시어머니가 간단하게 전 몇 가지만 부쳐 오라 하셨기에,  아침에 동그랑땡을 하려 하다는  나의 말은 남편에게 본인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미국의 동그랑땡을 소환하게 한 듯하다. 남편이 싫어하던 탓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따로 해본 적이 없지만, 이번에는 최겸 유튜브의 집밥클래스를 통해 부치기 전에 한번 찌는 팁도 얻었기에 좋은 기름을 쓰고,  기름도 덜 먹는 전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찬물을 끼얹는 남편의 말에 이것저것 계획하던 머릿속도 그에 호 흥하듯 가볍게 들뜨던 마음도 모두 축 가라앉고 말았다. 



딱히 볼품은 없지만 좋은 재료로 노력한 오늘의 아침상 

아침상을 차린다. 오늘의 아침밥은 가지솥밥과 명란순두부 그리고 계란말이이다. 사진을 예쁘게 찍어낼 재간 은 없어 비록 볼품은 없지만, 저 안에 들어간 정성만은 그리 별 볼 일 없다 말하지 않겠다. 멸치와 다시마와 버섯으로 우려 냉동실에 넣어둔 육수로  다진 고기와 가지를 볶아 솥밥을 했다. 쪽파도 송송 썰어 넣었다. 명란 순두부는 지난주 감자탕을 끓이며 따로 담아두었던 등뼈 우린 물이 육수로 들어갔다. 미리 재료 준비만 되어 있다면 30분 내에 끝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채소를 씻고 다듬고 밥상을 차리고 또 치워내는 것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이 소박한 밥상이 나의 가족에게 온전히 먹여지길 바라며 마음속으로 맛있어져라 라는 주문을 되뇐다. 


미국에서 삼시 세끼를 할 때는 하루 종일 부엌에서 사는 느낌이었다. 손이 야무지거나 재지 못해 실수가 많은 탓도 있었지만 이것저것 준비해 놓고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뚝딱 흘러갔다. 어떤 날은 가족들 맘에 쏙 듣는 메뉴로 가족 모두 기쁘게 먹었고 어떤 날은 가족 모두의 외면을 받아 남은 음식 처리하기에 골머리를 썩기도 하였다. 한국에 돌아와 일을 시작하면서 수업 준비도 하고 수업도 해야 하니 그때처럼 삼시 세끼를 할 시간 적 여유가 없어졌다. 게다가 아이들이 학교 급식을 먹으니 도시락을 쌀 일도 없었고, 중학생인 큰 아이는 시험기간 등에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아래층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거나,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저녁을 먹기 들어오기도 한다. 집밥의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드기 시작했다. 밥을 차려낼 시간이 도저히 없는 날은 급히 배민의 도움을 받아 음식을 배달시키기도 한다. 


가족에게 음식을 먹이는 일은 무엇보다 행복하고 뿌듯한 일이다. 하지만 또한 수고로운 일이기도 하다. 요즘  최겸이라는 유투버의 콘텐츠를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데,  다이어트 과학자라 스스로를 칭하는 그는 비단 다이어트뿐 아니라 우리의 망가진 대사를 되돌리기 위해 설탕, 밀가루, 나쁜 기름, 튀긴 것을 삼가라고 권고한다. 자칫 딱딱하기만 했을 그의 콘텐츠는 그의 말대로 실천하여 60에 새 인생을 살고 있다는 구독자 - 구독자들은 애리님 혹은 애리언니라고 부른다 - 분의 집밥 시연 콘텐츠를 통해 더욱 생기를 얻고 있다.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그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집밥을 만들고 그들과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하는 세상 따뜻한 콘텐츠이다.  내가 요즘 그 어느 오락 프로그램보다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릴 때 보던  미래공상과학 만화에서 미래시대 사람들은 밥 대신 먹기 편하고 모든 영양분이 고루 갖춰진 알약을 먹었다. 하지만 세상이 발달하여 수명이 늘어날수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화두가 더욱 제기될 것이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따뜻함이 그리워질,  그 따뜻함의 온기를 음식에서 찾고 싶어 할 우리 인류이기에, 나는 집밥은 결코 다른 알약 따위로 대체될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음식이 주는 위로가 얼마나 큰가 생각해 본다. 엄마를 생각하면 집밥이 생각나고 그 밥과 따뜻함은 삶에서 큰 에너지가 되었다.  누군가가 그대를 위해 그 부족한 솜씨나마 노력하여 집밥을 맛있게 만들어 낸다면 부디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한다. 인간과 똑같이 요리해 줄 로봇이 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그대의 배가 채워지고 그걸로 당신의 오늘을 살아갈 힘과 기운을 얻고 있다면, 지금 한 숟갈 떠먹는 그 밥 한 수저에 들어간 노력과 정성에 감사해 주길..


남편! 듣고 있나?   해줄 때 잘해라 쫌!


#글루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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