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토 Jan 02. 2024

내가 건강분야 크리에이터라고?

상처치료 전문가가 되어야겠다.

오랜만에 문을 연 브런치에는 내 필명 옆에 '건강분야 크리에이터'라고 어구가 너무나 생뚱맞게 붙어있었다. 얼마 전에 지인이 알려주긴 했지만 역시나 눈으로 확인하니 더욱 당황스러웠다. 건강분야라니.. 내가 쓴 글을 곱씹어 보아도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성의 없고 배려 없는 브런치, 그리고 늘 나에게 이런 세상.


뜬금없이 초등학교 때 피아노 학원에서 열린 콘서트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나랑 이름이 같은 친구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옆에 서서 친구의 피아노 악보를 넘겨주라고 이야기하셨다. 그 당시 문화가 그랬으니 '부탁'이라기보다는 아마도 '명령'에 가까웠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 무척 괴로워하던 나는 도저히 못하겠다며 선생님께 진지하게 가서 이야기하였고 그깟 악보 넘겨주는 것도 못하겠다 (아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하기 싫다)는 초등 3학년 짜리 여자아이를 꽤나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시더니 한마디를 남기고 가버리셨다. 


"그냥 해"


피아노 악보를 넘기는 건 정말 별 일이 아니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무대에 나가 내일이 아닌 남의 주인공에 되는 일에 멀뚱히 서 있다가 악보나 넘겨주는 일을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 친구가 연주를 하는 동안 옆에 서 있어야 하는 내가 천하의 바보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꽤 착한 아이 축에 속했다. 하지만  무대 위라는 드러나는 공간 위에서 누군가의 보조 역할을 하고 있어야 하는 나를 참아줄 만큼 착하지는 않았다 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결국 끝까지 울고 불며 못하겠다고 할 용기까지 없었던 나는 결국 친구의 옆에 서서 두어 번 책장을 넘겨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착하기보다는 남의 말에 잘 대항하지 못하는 마음 약한 쫄보라 그냥 착한 척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막상 무대에 올라 2-3분 남짓 짧은 연주에서 친구의 악보를 넘겨주는 일 따윈 정말 찰나와 같이 지나가 나를 한심히 쳐다보던 그 선생님의 눈빛처럼 그냥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다. 


어린 날의 나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철이 없었던 걸까?

모든 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기적인 아이였나?

지금의 나라면?

물론 그런 일 따윈 사람 좋은 웃음을 날리며 부탁도 아니라는 손사래를 치겠지. 

다만 어린 날의 나를 위해 조금 변명을 하자면,

무대 위에 오른 사람은 충분히 자신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초 초 꼬맹이였을 뿐이다. 

무대 위 모든 사람의 대사와 역할이 다 같지 않다는 드라마 대사나 들어본 게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들 틈 속에서 

아니, 정확하게 명명하자면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들 이야기를 온라인에서 보고 읽으며

일주일 내내 집 밖으로 한 발짝 나오지 않아도 

가르치는 학생들과 두 아이 외에는 어떤 어른 사람과 만나거나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종종 그 삶의 무대에서 종종 비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에게만 비치는 조명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것을 참기 싫어했던 철딱서니 없던 꼬맹이의 모습에서 한치도 크지 않는 나는 조금씩 조금씩 무대의 가장자리로 밀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겠지. 

누군가는 배부른 투정이라 한심하다 하겠지. 

자신만의 삶의 무대는 각자 다 가진 것인데, 허상 같은 모습들만 쳐다보며 한숨짓는 바보라 말하고 싶을게다.


상처 입은 동물은 상처가 나을 때까지 그냥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다는 유튜버 속 이야기가 위안이 되어 글 한 줄 쓰고 싶지 않았던 스스로에게 변명거리를 던져주었다. 스스로 낸 상처이기에 부끄러워 내보일 수 없지만 생각보다 깊어 쉬이 낫지가 않았다. 그리곤 순간 '이렇게 웅크리고 있어도 평생 상처가 아물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 돌아 건강분야 크리에이터라는 나의 새로운 명칭을 바라본다. 

상처가 아물고 재활이 필요한 시기에 붙여진 찰떡같은 분야 선정이구나. 멀쩡한 척 살아가지만 나같이 수많은 내상을 꽁꽁 싸매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상처 치유가 필요할 것이다. 나의 생각대로 세상의 편견이 만들어둔 틀대로 살아가지 못해 늘 실패한 인생 속에 살아가고 나부터  꺼내줘야겠다. 틀이 너무 갑갑하고 조여와도 몇 십 년을 입고 살아 문신처럼 새겨지고 있어 쉽지 않겠지. 


몸이든 마음이든 나의 건강은 

우선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