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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Jun 04. 2024

아들의 방

두 아이의 등교 후,  나만의 작은 아침 의식이 시작된다.

우선 은은한 향과 적절한 자극의 카페인으로 기분을 달래 줄 커피 한잔을 내린다. 

여기서 주의할 점!

커피를 마시며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스멀스멀 딴짓을 시작할 수 있으므로

너무 급하지 않되, 최대한 오래 앉아있지 않아야 한다. 

이제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적당한 너튜브 프로를 찾는다. 

재미는 있되, 시각적인 요소가 많아 시선을 뺏으면 안 된다. 

오직 귀로만 집중할 만한 프로를 찾으면 준비 끝!

이제 아들의 방으로 향한다. 

곱게 갈린 원두의 향에 마음이 잠시 흐뭇하다. 

짧은 심호흡과 한 번과 함께 아들의 방문을 연다. 

역. 시. 나

오늘도 한결같이 엉망진창이다. 


아들은 중학교 1학년이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면서부터 나와는 다른 아이의 성향이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정리를 해두면 그 정리를 깨기 싫어서 잘 건드리지 않는 알고 봐도 그냥 봐도 실상 꽤 게으른 타입이다. 하지만 아빠를 쏙 빼닮은 아들은 늘 무언가를 찾아 집안을 뒤집어 놓았다. 

아이의 호기심을 엄마의 이기심에 망칠 수 없다는 마음과 그래도 어릴 적엔 그 가동범위가 넓지는 않았기에 아들이 어질러 놓은 것들을 다시 정리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아이에게 습관을 잡혀준다는 생각에 아이와 함께 다시 정리하거나 아이에게 직접 정리하기를 권유했다. 물론 타고나기를 정리와 거리가 먼 아들의 정리솜씨를 조용히 지켜보다 아들이 안보는 곳에서 내가 직접 다시 하기를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부쩍 커버린 뒤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어느 순간 키가 부쩍 커 버리고 내가 아이를 올려다보아야 할 쯔음부터, 유치원 때부터 유명무실하던 그의 방에 존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혼자 있기 그리 무서워하던 꼬맹이는 사라지고 방문을 닫고 혼자만의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아들의 프라이버시 위해 그 닫혀버린 방문을 존중했지만 한 번씩 열어보는 아들의 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책상서랍에서는 껌을 비롯한 수많은  과자봉지가 나왔고 방안 구석구석에는 양말과 옷들이 쓰레기처럼 구겨져 처박혀 있었다. 침대 시트를 들어내고 끊임없는 쓰레기가 나왔다. 반쯤 먹다 버려둔 과자 봉지와 그 잔재들을 침대 구석에서 찾아냈을 때 이미 내 이성의 끈은 끊어져 버렸고 배꼽 끝에서부터 용암처럼 뜨거운 무엇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펄쩍펄쩍 뛰며 혼을 내보았다. 

돌아서면 그뿐이었다. 

방을 정리하지 않으면 ~이라는 단서를 달며 조건을 제시했다. 

조금 정리하는 척을 하던 아들은 어느 순간 나의 눈을 피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엄마는 결벽증이야? 친구들이 내 방 다 너무 깨끗하대


결벽증이라.. 설마..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 이렇게 두툼한 몸집을 가졌을 리 없으며, 다시 정리하는 게 귀찮아 아예 건드리지 않고 살겠니...


아들의 외마디 외침에서 분명히 알아차린 건, 더 이상 아들을 닦달하다가는 이 아이와의 관계가 매섭게 변할 것이라는 거였다. 태생적으로 정리가 안 되는 아이가  있다. 바로 내 아이처럼. 저명하고 많이 배우신 심리, 정신 관련 전문가들은 그런 성향의 아이들은 그냥 그대로 두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론상 그들의 이야기에 무척 공감하지만, 쌓여있는 책더미에서 프린트물이나 책 하나 찾아가지 못하는 아이를 그냥 두고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얼마 전 저녁 내내 열심히 하던 숙제들을 온갖 것들이 산더미처 럼 쌓여있는 책상 위에서 챙겨가지 못한 채 벌점을 받고 온 아이를 보자 더욱 마음이 괴로워졌다. 아이가 치울 때까지 기다리다 먹다 만 과자나 음식물이 묻은 봉지들에서 벌레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구겨져 처박혀있는 교복을 얼른 구하지 않으면 복구가 더더욱 힘들 뿐이다.  다섯 번 잔소리하면 한번 정도 내어다 놓는 쓴 수건과 양말 속옷 등도 빠르게 세탁기에 넣거나 뽀얗게 삶아내고 싶었다. 

너무 적나라한 공개를 피하기 위해 일차의 정돈과 사진의 보정을 더해봤다. 


결국 나는 백기를 들었다. 

 아이와 최대한 부딪히지 않으면서 내가 아이의 방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방을 치우다가 들끓어 오르는 분노에 가끔 예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와도 아이가 듣지 못하는 등교 후 시간이 가장 적절했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아들의 방 정리가 된다.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를 걸어 놓고 책상 위를 정리한다. 샤프심이 떨어져 새까매진 바닥은 매일 닦아도 매일 더럽다. 이불을 탈탈 넣어 정리하거나 건조기에 넣고 먼지 털기 기능을 누르기도 한다. 사춘기에 들어서며 외모에 한껏 관심이 많아진 아들의 화장품과 연고를 구석에서 찾아 내 뚜껑을 닦아 제 자리에 올려놓는다. 사방으로 튄 선크림 자국도 한 번씩 닦아준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던져 놓은 수건과 양말, 속옷 등을 찾아내 들고 나오면 채 15분도 지나지 않았다. 


아침에 15분만 일찍 일어나면 물론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며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다.  이 글을 혹시 읽게 될 이들의 절반은 아이가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라고 나를 설득시키고 싶을 것이다.  나 또한 모르지 않다.  다만 나는 아이도 나도 평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을 뿐이다. 이제 곧 갱년기에 다다를 나의 정신건강에 잠시의 휴식을 줄 타협안이기도 하다.  물론 이 방법은 임시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에게 1-2분어치씩의 몫을 넘겨주려고 한다. 1-2분이 5-6분이 되고 이후에는 10분정 도치의 몫은 스스로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들 방의 창문을 연다. 열린 창 밖으로 초여름의 바람이 시원하게 나부낀다.  청량한 여름 바람이 아들 방의 사춘기 냄새를 조금은 데려나가 주겠지. 지나가는 바람이 내 마음에도 잠시 들러 가슴 한 구석 꽉 누르고 있는 돌덩이 하나쯤 데려나가 주는 바람도 보태본다. 파란 하늘 아래 눈부신 초록빛 산이 속삭인다. 

'이 또한 너에게 그리운 기억으로 남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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