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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아현 Aug 18. 2023

대원의 소원 (합본)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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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은 조금 어지러웠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다. 손바닥에서는 자꾸만 땀이 나 주머니 속 손수건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무사히 발권도 마쳤고, 시간이 남아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남들처럼 포스터 앞에서 찍고 싶었는데 찍어 줄 사람이 없어 고민하던 참이었다. 혼자 머뭇대던 대원에게 누군가 선뜻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제안했다. 아주 감사한 일이었다. 덕분에 대원도 방금 받아 따끈한 티켓과 혹시 몰라 챙겨 온 앨범과 함께 공연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집으로 돌아가 자랑할 사진 한 장은 건졌지만, 들어오는 길에 콘서트장 입구에 있던 매대를 꼼꼼하게 구경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재희가 콘서트장에 가면 굿즈라는 것을 판다고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바람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다음에도 올 기회가 생긴다면 꼭 여유롭게 와서 구경해야지. 속으로 다음을 기약하면서도 주변을 둘러볼 때마다 대원은 섭섭함을 감출 수 없었다. 굿즈를 이미 사서 가방에 넣는 사람들에게 콘서트가 끝나고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애석하게도 이 굿즈는 인터넷으로 미리 구매하고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한편 다행이었다. 예약도 하지 않았는데 공연히 구매하겠다고 줄에 서 있다가 체면을 구길 뻔했다. 현장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있다고도 했지만 말끝을 흐리는 걸 보니 재고가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넘치게 준비해 재고가 쌓이면 곤란하겠지. 자리에 앉은 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무대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나저나 저기 다 전자기기인데 안개는 물 아닌가? 공연하다 감전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저렇게 대책 없이 물을 뿌려 둔 거야? 정말 이 나라는 안전불감증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저기…. 여기 제 자리인데요. 대원은 땀이 비죽비죽 났다. 실수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표와 자리의 숫자를 보니 자신이 한 칸 옆으로 가는 것이 맞았다. 미안한 내색을 하고 자리를 옮기면서 무심코 대원은 궁금증을 참지 못해 옆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공연이 시작하기 전이었다.

   근데 저거 안개…. 저렇게 전자기기가 많은데 위험한 거 아닌가요?

   저거 안개 아니고 스모그에요. 그러니까 공연장에서 쓰는 연기 효과 그런 건데 괜찮아요.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안전한 거구나. 대원은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 구석구석을 더 돌아봤다. 어둠 사이사이 가득한 기계. 아직 주인이 앉지 않은 악기들. 무대 위의 어둠 속에서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누군가의 콘서트에 온 것은 처음이라서 모든 게 다 신기했다. 심호흡을 계속하며 가방 속 물건을 매만졌다. 종종 전주에서 콘서트가 열리면 다녀오곤 하는 동료 영환이 준 싸구려 응원봉이었다. 콘서트장 앞에 가면 파는 것인데 장윤정 전국투어 전주 콘서트에 다녀왔을 때 산 것이라고 했다. 한 번밖에 쓰지 않았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한 번뿐이 안 쓰긴 개뿔. 올라오는 기차에서 켜 봤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연장에 앉은 사람들의 분위기가 사뭇 진지했다. 손에 응원봉이나 불빛이 나는 것은 없고 다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대원은 가방 속 응원봉을 안 보이는 깊숙한 곳에 찔러 넣었다. 그러다 잊은 것이 생각나 핸드폰을 꺼내 딸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잘 가고 있지? 오늘 큰일 치렀다. 조심히, 건강히, 잘 다녀오거라.

   희미하게 나오던 음악 소리가 잦아들고 공연장을 비추던 불빛도 완전히 사라졌다. 공연이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일순간 조명이 환해지면서 연주가 시작됐다. 대원은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오기 전에 여러 번 되짚은 주의 사항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서서히 의자에 녹아내렸다. 숨을 어떻게 쉬었더라? 너무나 낯선 감각에 모든 행동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대원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환한 무대 위를 바라봤다. 그러다 잠깐 생각한 것이라곤…. 이렇게 긴장해서 박자에 맞춰 박수나 치겠나.     


   1

   처음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음악들이 있다. 몇 번을 들어도 그렇다더라 하고 지나갈 뿐이다. 그러다 어느 날 불쑥 들린 노래가 정신을 쏙 빼놓는다. 그동안 수없이 들었더라도 귀에 남아 노래를 곱씹어야 처음 듣는 것이 된다. 대원이 안예은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몇 년 전, 아내가 죽고 다시 몸을 일으킨 날이었다.

   대원은 슬픔에도 각자의 단계와 몫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보름 동안 가장 비통한 단계는 지나왔으니 아내를 위한 몫을 다했다고 말이다. 아팠던 아내는 언젠가부터 자주 그를 달랬다. 그래도 삶은 이어질 뿐이라고. 너무 많은 시간을 슬퍼하는 데 허비하지 말라고. 어느 한 조각에 자신은 남아 있을 테니 일상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그런데 사실 걱정은 없다고 했다. 당신은 워낙 혼자 잘 놀고, 주변에 친구도 많으니 걱정이 없다고. 오히려 혼자 남았을 때 걱정인 것은 자신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덕분에 대원은 자주 아내가 없는 아침을 상상하곤 했지만 현실이 됐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햇살은 여전히 아름답게 부서지며 창문을 두드렸고, 수십 년 동안 반복한 시간에 맞춰 눈을 떴다. 

   처음에는 아내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삶이 이어질 뿐인 게 아니라고. 슬퍼하는 것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신은 이전의 아무것으로도 돌아갈 수 없고. 그러나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는 통에 이어진다고 느끼는 시간이 계속될 뿐이라고. 그래서 규칙적인 삶이 치욕스러웠다. 차곡차곡 쌓아 온 습관이라는 것들이 너무나 무용해서 견딜 수 없었다. 죽으면 다 끝나버리는 일인데 해를 따라 반복하는 모든 일이 미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때가 되면 사라지고 돌아오는 해의 일상을 느끼고 싶지 않아 커튼을 닫았다. 딸이 나가고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며 간신히 지금이 하루의 어디쯤인지 추측할 뿐이었다. 통 입맛이 없어 손에 대충 잡히는 것을 먹었다. 딸이 현관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비척비척 잠에서 깨 거실의 아몬드를 입 안 가득 욱여넣었다. 암막 커튼을 꼼꼼히 닫아 놓은 거실에 앉아 윗집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를 듣다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좀이 쑤시면 컴퓨터를 켜고 맞고 게임을 했다. 딸이 돌아올 시간이 되어 현관 비밀번호 소리가 들리면 냉장고에서 삼각김밥과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방으로 들어갔다. 대원이 막걸리와 아몬드 말고는 먹는 것이 없자 요리를 할 줄 모르는 딸이 언젠가부터 냉장고에 삼각김밥 따위를 사다 둔 덕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마저도 습관을 만들어 가는 하나의 과정처럼 느껴져 부끄러웠다. 아침에 일어나 아몬드를 한 줌 먹는 일.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오는 일. 당연하게 삼각김밥 포장의 1번을 잡아당기고, 2번을 잡아당기고, 3번을 잡아당기고. 떨어진 김 가루들을 손끝으로 꾹꾹 눌러 쓰레기통에 털어 넣고는 모서리 한쪽을 베어 무는 일. 아내는 삶이 계속될 거라고 했다. 결국 대원은 아내의 말이 맞았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대원은 해가 뜨기도 전에 침대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커튼을 걷고 면도를 했다. 미적댄 시간 동안 수염은 성실하게 자라 볼품없이 추레했다. 아직 거실은 어두웠다. 형광등을 켜고 아내의 순서를 찬찬히 곱씹었다. 가장 먼저 청소기를 돌렸다. 간간이 딸이 청소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지만, 퇴근이 늦은 딸이 꼼꼼히 청소하기 어려웠을 테다. 그렇다. 삶은 계속되고 그 안에 개인의 의지 같은 건 아주 작은 몫이다. 그 작은 것 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아버지의 몫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끝까지 대원에게 좋은 아내였던 것처럼. 마른걸레에 물을 묻혀 구석구석 눈 닿는 곳은 모두 닦았다. 마지막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냉장고였다. 옛말에 집주인 속이 시끄러우면 장이 다 썩는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가장이라고 한몫 차지하고 있었으나 매일 음식을 꺼내 먹는 냉장고에 걸레 한 번 들어 본 적 없었다. 분주히 주방을 마저 닦고 나니 거실에 해가 들이치기 시작했다. 나갈 준비를 하느라 거실로 나온 딸 주영이 대원을 보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는 곧장 냉장고로 들어가는 대원의 머리를 멍하니 보던 주영은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가다 말고 물었다.

   뭐 해?

   어? 청소….

   갑자기?

   대원이 별다른 대꾸가 없자 주영은 다시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대원은 청소를 계속했고 주영은 부랴부랴 집 밖을 나섰다. 무어라도 꺼내 줄 생각이었는데 마땅치 않아 말을 붙이지 못했다. 주영이 나가고 대원은 냉장고에 유통기한이 임박한 소시지가 하나 있어 데워 먹었다. 주로 이 시간은 오롯이 대원과 아내의 시간이었다. 멀건 누룽지나 빵조각 따위를 먹으며 수다스러운 아침을 보내곤 했다. 새벽 내내 아내의 아침 동선을 따라 종종거린 대원은 고요를 견디기 힘들어 라디오를 켰다. 아내는 혼자 남은 집에서 종종 라디오를 듣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두런두런 떠드는 이야기도 나오고, 노래도 나오니 적적한 시간이 훌쩍훌쩍 간다고 말이다. 아내를 따라 대원도 라디오를 켜고 주파수를 골랐다. 때마침 라디오 DJ는 다음에 나올 노래를 소개하는 중이었다.

   4907님이 신청해 주신 안예은의 〈프로스트〉 틀어 드리면서 광고 듣고 오겠습니다. 

   이제 거실은 창문 정면을 향해 넘어온 햇살로 가득 찼다. 꾹꾹 내뱉는 가사가 유난히 대원의 귀에 맴돌았다. 대원은 거실에 가만 앉아 마른 얼굴을 훔치며 인터넷에 안예은이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늘 수요일 아침과 점심은 아내와 함께했다. 아프기 전까지 건물 청소일을 하던 아내의 휴무일이 수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아내는 밥을 하고 대원은 세탁기를 돌리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주영도 그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다른 날은 늦었다며 길을 나서더라도 수요일이면 이른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 대신 집안일에 약간의 인사이동이 생겼다. 아내 몫의 일은 대원이, 대원 몫의 일은 주영이 도맡게 됐다. 처음에는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꽤 힘들었다. 대원의 볼멘소리에 주영도 종종 음식을 해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대원이 만류했다. 딸의 음식이 영 대원의 입에 맞지 않았다.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레시피라며 해 주는 음식들이 족족 너무 맵거나 달기만 했다. 맛있게 먹지 못하면 하루가 즐겁지 않은 대원에게 맛없는 식사를 반복하는 것은 크나큰 고역이었다. 자식 잘못 키운 탓이려니 하고 어느 순간 요리는 전부 대원 몫이 됐다. 

   어제 모래내 시장에 내린 손님이 있어 대원도 차를 세우고 콩나물을 한 봉지 사 온 참이었다. 아내는 항상 빨래를 개는 대원에게 어떻게 하면 음식이 더 맛있어지는지 설명하곤 했다. 덕분에 특별히 요리를 즐겨하지 않던 대원도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고 나니 제법 먹어 줄 만한 아침 식사를 만드는 정도에 이른 것이다. 먼저 콩나물국에 멸치 몇 마리를 넣는다. 머리와 내장은 골라내고 전자레인지에 조금 돌리면 비린 맛은 날아간다. 거기에 김치와 파 그리고 간장을 넣어 향만 내고 팔팔 끓인다. 그 뒤에는 가볍게 씻은 콩나물을 한 줌 넣고, 먹기 직전에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살짝 넣으면 완성이다. 마지막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넣는 디테일은 아내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맑은국에 다진 마늘을 오래 끓이면 텁텁해지고, 고춧가루는 김치를 넣었으니 넣지 않아도 되지만 빛깔이 예뻐지라고 넣는 것이라고 했다. 눈으로 음식을 둘러보며 침을 삼키는 것도 식사의 일부라던 아내는 늘 먹음직스럽게 음식을 내는 걸 좋아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파르르 끓여 낸 김치콩나물국을 식탁에 내려놓기 무섭게 빨래를 개던 주영이 식탁으로 와 앉았다.

   사실 대원은 딸과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저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거나 당장 부딪힌 일에 대해서 몇 마디 짧게 나눌 뿐이었다. 언젠가 이런 것이 내심 서운해 자신과는 왜 고민 같은 걸 나누지 않느냐고 물었다. 장난스럽게 묻자 주영 역시 흘리듯 대답했다. 아빠 우리 별로 안 친하잖아. 갑자기 왜 그래. 한집에 20년 넘게 같이 살았는데 왜 안 친하냐며 따져 물으려다 말았다. 현관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는 주영을 붙잡을 수 없었다. 대원은 구체적으로 이십몇 년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도통 이십몇 년인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게 다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그런 것 아닌가 싶어 억울하기도 했다. 그저 돈을 버느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고 말하기에는 마찬가지로 바빴던 아내 생각이 나 할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주영이 무어라고 반문하든 대꾸할 자신이 없었다. 속으로 아니와 그런데를 반복하던 대원은 심통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버지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딸자식이 어디 있나. 교육을 잘못 시킨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곧이어 속상함은 걱정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성격이 살갑지 못하고 쌀쌀맞아서야 시집이나 갈 수 있을까. 이제 대원이 주영에게 바라는 소원은 시집가서 잘 사는 것뿐이었다.

   콩나물국을 훌훌 불어 한술 떴다. 뜨거운 것을 잘 먹는 주영은 이미 콩나물을 다 건져 먹은 뒤였다. 급히 밥을 먹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덩달아 쫓기는 기분이 든다. 국을 식히느라 정신없는 대원과 달리 주영의 그릇은 벌써 반쯤 빈 소리를 냈다. 오늘따라 주영이 더 빨리 밥을 먹는다고 생각했다. 대원은 주영의 출근을 돕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그저 급한 일이 있는가 보다 하고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식사를 끝낸 주영이 그릇을 옮기고 커피를 내왔다. 대원의 그릇도 거의 비어 가던 참이었다. 마지막 남은 콩나물국 국물을 한 번에 털어 넣으려고 국그릇을 흔들며 입으로 가져갔다.

   아빠, 나 결혼하려고. 주말에 시간 되면 같이 보자. 식장은 알아보고 있는데 가능한 날짜가 몇 개 없어. 근데 가까운 때에 토요일 아침 타임이 비었지 뭐야. 운이 좋았지.

   대원이 놀라 마시던 콩나물국을 잘못 삼키고 말았다. 하필이면 여남은 것을 털어 넣던 참이라 고춧가루가 가득한 국물이 코로 역류하고 말았다. 목과 코에 걸린 고춧가루 때문에 대원은 사레들린 기침을 해야 했다.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기침하고 나서야 겨우 잠긴 목소리로 화를 낼 수 있었다.

   야! 너는 그런 소리를 무슨 아침 먹다 갑자기 하냐. 너 때문에 코에 고춧가루 들어갔잖아. 에이씨, 코 매워 죽겠네.

   아침에 하지 언제 해. 우리 시간도 잘 안 맞는데. 결혼식 그거 다 형식이잖아. 그냥 다 맞춰 주는 데서 빨리하고 말려고. 아빠 딸 결혼식에 손잡고 들어가는 게 소원이라며.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큰일을 네 맘대로 결정하면 어떻게 해. 어떤 놈인 줄 알고 결혼을 하라, 말라 그래? 언제부터 만났는데.

   7년 됐나. 엄마는 본 적 있어. 그니까 이번 주에 보여주겠다는 거잖아. 그리고 내 결혼인데 아빠가 하라, 마라 하는 게 왜 중요해?

   당연히 중요하지. 7년? 그동안 왜 아빠한테 남자친구 있다고 말 안 했어.

   안 물어봤잖아. 나 늦었다. 먼저 간다. 주말에 같이 저녁 먹자.

   데려다줄게!

   됐어. 늦어서 택시 탈게.

   야! 너는 아빠가 택시 하는데….

   주영은 대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대원은 어안이 벙벙했다. 상식적으로 순서가 잘못되어도 한참이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결혼은 자기들 인생이라지만 이건 너무했다. 보통은 어른들에게 소개해 주고, 상견례도 하고, 날짜를 고르고 식장을 잡는 게 순리 아닌가 싶었다. 딸이 워낙 당당하게 나오니 대원은 오히려 자기가 너무 꽉 막힌 꼰대가 되었나 의심했다. 이러나저러나 찝찝함에 대원은 하루 종일 목이 까끌까끌했다.     


   2

   택시 운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대원이 가장 먼저 듣는 노래는 〈출항〉이다. 택시 일이라는 것이 그렇다. 비슷한 시간에 출근해 비슷한 시간에 퇴근하고, 늘 비슷한 길을 돌지만 나머지의 모든 것은 미터기를 켜면서 새로 시작된다. 어제의 일이 오늘도 반복될까 걱정하지 않는다. 어제 막히던 길이 여전히 막힐지는 모를 일이다. 택시 안이라는 테두리를 제하고서는 늘 새로 시작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의 것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에 이만한 노래가 없다. 게다가 오늘은 대원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긴장되는 마음에 차가 데워지는 동안 연신 손을 비볐다. 때마침 동료 기사인 영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오늘 점심 어떻게 해.

   거기 중앙시장 백반집 어때.

   좋지. 오늘 밥은 자네가 사는 걸로 해.

   이 사람아. 당연히 사지. 모양 빠지게 뭘 그런 걸 말로 해. 손님 탄다. 이따 봐.

   버스 정류장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을 보고 택시를 멈춰 세웠다. 대원은 속으로 일찍 나와 있으면 버스도 안 놓치고 돈도 아꼈을 거라고 흉을 봤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세상일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있나. 그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고. 하물며 자주 늦장을 부리는 손님이 있어 대원도 그런대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 아닌가. 손님의 목적지를 듣고 미터기를 켜며 손님의 안색을 살폈다. 말을 걸어도 되는지 아닌지 살피기 위해서였다. 대원은 원래 말이 많다거나 속으로 구시렁거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성격이 변한 것은 택시를 업으로 삼은 탓이다. 택시 안에 갇혀 운전만 계속하고 있으니 입이 심심한 것은 당연했다. 가끔 위험하게 끼어드는 차들을 향해 욕지기를 내뱉는 것이 전부인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내지 않아도 낼 짜증까지 내고 만다. 그러다 언젠가 화장실 거울에서 마주한 자기 얼굴을 보고 놀랐다. 점점 고약해지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늙어서 주름이야 생긴다지만 너무 볼썽사나웠다. 이게 다 말을 안 하고 참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손님을 태우면 안부를 묻곤 했다. 그렇다고 아무 손님에게나 마구 말을 걸었다가는 곤란을 면치 못한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는데 작은 택시 안에서 접할 수 있는 최신 정보라고는 라디오에서 떠드는 몇몇 사연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김장하고 온 손님을 태운 적이 있다. 손님은 김장이 끝나고 몸이 힘들어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돕는 손은 없고 먹는 입만 있어 서럽더라며 투덜댔다. 그나마 도우러 나온 아들은 귀신같이 시어머니가 데리고 들어가버렸다며 말을 쉬지 않았다. 미처 손님의 안색을 살피지 못했던 대원은 그저 좋게 손님의 마음을 풀어 주고 싶었다. 내 가족들 입에 들어가는 것이니 힘들어도 보람차지 않겠냐고. 손님이 손맛이 좋으신가 보다고. 혹시 아들이 손댔다가 1년 먹을 김치 맛이 이상해지면 어쩌냐고.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거 하면 되는 것 아니겠냐고 말하곤 사람 좋게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쉬지 않고 말하던 손님이 어느 순간 대꾸가 없었다. 그제야 대원은 손님의 얼굴을 봤다. 드문드문 하얗게 센 머리, 연신 주무르고 있는 손목, 무채색의 겉옷 상의.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는 그의 시선은 아무것에도 머무르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며 창에 고개를 기대고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게 숨을 쉬고 있었다. 대원은 그제야 택시 안에 희미하게 퍼진 액젓 냄새를 맡았다. 이후로는 웃음을 거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어라 수습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했다. 손님은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겨우 한마디 건넸다.

   나라고 날 때부터 그런 걸 다 잘했겠어요. 하물며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게 싫기야 하겠어요. 그냥…. 가끔 그 모든 게 너무 하염없어서…. 이런 제 속이 너무 좁은가 봐요.

   정보값이 없는 상대와 개인적이면서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런 실수가 반복되기 마련이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대원은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여전히 택시 안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외로웠고 적적했다. 그래서 날씨나 최근 스포츠 뉴스에서 본 소식 따위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틈틈이 룸미러로 손님의 안색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간에 화를 심어 두고 뽑지 않는 사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고돼 보이는 손님에게는 구태여 말을 걸지 않았다. 안예은 씨를 좋아하고 나서는 조금 더 수월했다. 손님이 말할 기분이 아니라면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들으면 되었고, 손님이 안예은 씨를 알고 있다거나 노래를 알고 있다면 그에 대해 실컷 이야기하면 됐다. 어떤 노래가 왜 좋은지 말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고 만다. 그러면 한 바퀴라도 더 돌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손님이 떠나면 좋아하는 것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떠드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손님들이 있다. 몹시 화가 나 있거나 지쳐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말이 없는 손님들. 때때로 룸미러를 통해 대원과 눈을 마주치며 간단한 반응은 하면서도 별다른 대꾸는 없는 손님들. 그런 손님들이 탑승하면 대원은 요즘 애들 말로 영업이란 것을 시작한다. 오늘은 운 좋게도 중앙시장 가까이 가는 손님을 태웠다. 서신동에서 노송동까지 가는 길이라면 노래 한 곡으로 이야기하기 충분한 거리다. 영업에는 역시 가장 유명한 노래가 좋다. 가장 유명한 <홍연>을 틀고 말을 걸면 열에 둘은 대원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그게 아니라면 대원이 그냥 하려던 말을 하면 된다. 조금 더 멀리 간다면 〈창귀〉나 〈쥐〉를 틀어 주며 곡의 배경이 되는 옛날이야기를 해 주면 다들 흥미롭게 듣곤 했다. 다만 비가 와 우중충하거나 밤에 듣기는 조금 무서운 노래라서 〈윤무〉나 〈상사화〉로 대체하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이런저런 레퍼토리를 시도해 봤는데 다른 노래보다는 역시 옛날이야기가 섞인 두 노래가 가장 반응이 좋았다. 오늘 손님은 통 대꾸가 없었다. 게다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대로변에서 내리고 말았다. 대원은 너무 자기만 말했나 싶어 손님이 사라지는 골목을 잠시 바라봤다. 금방 영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차,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 대원은 분주하게 핸들을 돌렸다.

   식당에 도착하니 영환이 이미 밥을 한술 뜨고 있었다. 찌개에서 김이 폴폴 나는 것을 보니 이제 막 나온 것이 분명했다. 영환이 먼저 주문해 두겠다기에 대원은 고민하다 오늘의 국을 골랐다. 여러 찌개를 고를 수도 있고, 매일 바뀌는 국 메뉴를 고를 수도 있는 식당이었다. 대원은 늘 메뉴판에 있는 것들보다 칠판에 큰 글씨로 엉성하게 쓴 오늘의 국 메뉴를 좋아했다. 국도 새로, 글씨도 새로. 어쩐지 오늘만을 위해 늘 새로 바뀌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마침 오늘의 국은 미역국이었다. 대원에게는 생일 같은 날이라 공연히 들떴다. 알맞게 점심 메뉴까지 오늘을 축하하는 것 같았다. 의자를 빼고 마주 앉자 찬으로 나온 조기구이를 골라 먹던 영환이 바지 주머니를 뒤적여 흰 봉투를 하나 꺼냈다. 봉투의 겉면에는 귀여운 글씨로 ‘대원 아저씨 예매 내역’이라고 적혀 있었다. 왼손으로는 봉투를 자신 쪽으로 끌어다 놓으며 영환에게 손짓했다.

   자기 딸한테 전화 좀 걸어 봐.

   왜? 밥 먹고.

   안돼. 지금 줘 봐.

   신호가 가는 전화를 건네받으면서 대원은 지갑을 열어 삼십만 원을 꺼내 영환에게 건넸다. 곧이어 통화 연결음이 끊기고 수화기 건너편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재희야, 대원 아저씨야. 잘 지내지?

   아저씨! 받았어요? 그때 알려 준 거 알죠. 늦게 가면 굿즈 못 사니까 미리 콘서트장 앞에 가야 해요! 신분증 꼭 챙겨 가서 현장 발권하고요. 아저씨 불안해서 내가 우편으로 받게 하려고 했는데 전부 현장 발권이더라고요.

   지금 받았어. 정말 정말 고맙다. 아저씨가 밥이라도 사 주면서 부탁해야 하는데 이렇게 전화로만 고맙다고 해서 미안해. 아빠한테 티켓값이랑 합쳐서 삼십만 원 보낼 테니까 꼭 받아. 한 푼도 빼먹지 말고 받아서 너희 오빠 다음 콘서트 갈 때 보태.

   참! 아저씨 앞자리고 공연장 단차가 별로 없으니까 자꾸 너무 앞으로 기울여서 보지 말아요. 앞에서 키 큰 사람이 자꾸 앞으로 나서면 뒷사람 하나도 안 보여.

   재희는 영환의 둘째 딸이었다. 영환이 딸내미가 자꾸 뜯지도 않으면서 같은 앨범을 수십 장 산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가 팬카페에 가입하지 못해 애를 먹던 차에 번쩍 재희 생각이 났다. 주영에게도 물어봤지만 마찬가지로 잘 모르는 눈치였다. 요즘 그런 콘서트는 모두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하는 데다, 경쟁이 치열해 아저씨가 티켓을 살 수 있겠냐며 걱정했다. 급한 대로 주영에게도 부탁해 봤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것은 해본 적이 없다며 거절했다. 수심에 빠져 있던 참에 주영이 흘린 말이 힌트가 된 것이다. 아빠 동료 기사님들 중에 자식이 콘서트 다니는 애들 없어? 아이돌 좋아하는 애들이면 그런 거 잘할걸? 그 말을 듣고 곧장 영환에게 재희를 만나게 해 달라며 사정했다.

   영환은 흔쾌히 재희와 약속을 잡아 줬다. 영환의 집에 들어선 대원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재희의 방 안 가득히 앨범과 포스터 따위가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열렬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부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잠시 안예은 씨 포스터 사진과 앨범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방을 상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가 슬슬 벗겨지는 아저씨 방이 그런 모양이라면 면이 서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머뭇대며 재희에게 팬카페 가입을 도와달라 부탁했다. 재희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는지 클릭 몇 번으로 뚝딱 해결했다. 등업 조건에 맞춰 게시물도 작성해 두었으니 시간이 조금 지나면 모든 게시판을 다 볼 수 있을 거라며 으쓱댔다. 콘서트는 예매일이 아직 되지 않아서 날짜에 맞춰 매표하고 연락을 주기로 했다. 이 모든 게 이렇게 쉬운 것이었다니. 대원은 허탈하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했다. 드디어 자신도 공식적으로 안예은 씨 팬카페의 일원이 됐다는 사실에. 

   팬카페에서는 안예은 씨를 다들 예은 님이라고 불렀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대원도 입에 예은 님이라는 호칭을 익혀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재희의 어깨 너머로 연신 화면을 흘긋대자 재희가 메모지 한 장을 건넸다. 

   이걸로 아저씨 핸드폰이랑 컴퓨터에 로그인하시면 돼요. 이거 카페는 어떻게 들어가냐면…. 이렇게 해서, 이렇게 들어가면 돼요. 그리고 이거 꼭 읽어 보시고요. 핸드폰 줘 보세요. 핸드폰에 로그인해 드릴게요. 그리고 이제 이렇게, 이렇게 하면 글을 볼 수 있어요. 우선 게시글을 쓰거나 하지는 말고요. 보통 도배하면 아이디 썰리니까 분위기 보면서….

   도배? 갑자기 도배를 왜 해. 아니 도배를 했는데 아이디가 왜 썰려. 아니, 아이디가 썰리는 건 또 뭐야. 여기에 집 고친 이야기도 해야 해?

   그 도배 말고요. 게시판에 한 사람이 비슷한 이야기로 계속 글을 올리는 걸 도배라고 해요. 그런 거 하면 아마 강퇴될 거예요. 그게 아이디가 썰리는 거예요.

   요즘 친구들 보니까 이렇게 테이블 놓고 사인도 해 주고 대화도 하던데 콘서트에서도 그런 거 해?

   그건 팬 사인회요. 앨범 사고 앨범에 사인받는 건데 콘서트랑 달라요. 가만… 아저씨 퇴근길은 알아요?

   알지! 퇴근하는 거 아냐.

   비슷한데요. 개념이 조금 달라요. 콘서트 끝나고 안예은 씨가 퇴근할 거 아니에요? 아마 공연장 밖에 사람들 몰려 있을지도 몰라요. 안예은 씨 집에 가는 거 보려고. 가끔 선물도 주고받고 차 창문 내려서 막 인사나 대화도 나누는 가수들도 있어요. 하여튼 그걸 퇴근길이라고 해요.

   그럼 그때 앨범에 사인을 부탁해도 되는 거야?

   당연히 안 되죠. 아저씨. 요즘 가수 좋아하시면서 왜 옛날처럼 좋아하려고 그래요. 뭐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전 그렇게 생각해요. 직장인에 대한 매너. 그런 걸 좀 지키며 살자는 거예요. 아저씨 퇴근하려고 하는데 직장 상사가 막 불러. 부르더니 퇴근 전에 자기랑 가위바위보 딱 세 판만 해 달래요. 그까짓 거 해 주면 되지 싶기도 해. 근데 상사 뒤에 보니까 그거 해 달라는 사람이 50명 줄 서 있어 봐요. 퇴근 때마다!

   그건 좀 곤란하지. 50명 그거 다 해 주면 나는 집에 언제 가.

   그거예요. 아저씨는 한 사람이지만, 한 사람 해 주면 해 달라는 사람 그 뒤로 배로 불어나니까. 우리 서로 퇴근길이 있는 현대인답게 퇴근길은 막지 말고 보내 주자. 제게 주어진 콘텐츠와 시간을 충분히 즐기자. 뭐 저는 이런 마음이에요. 응원봉은 없으시고…. 이건 팬카페 주의 사항인데 꼭 읽어 보시고요.

   재희는 한참 동안 팬카페에서 주의해야 할 것들과 교양 있게 공연을 관람하는 법을 설명했다. 세상이 전과 다르게 아주 많이 바뀐 것이 또 한 번 실감 났다. 무대 위의 빛나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나와 비슷하게 삶을 꾸리는 직장인이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쏙쏙 되었다. 대원도 교양 있는 현대인이 되고 싶었다. 자신은 눈에 띄기보다는 묵묵히 뒤에서 응원하는 그런 아저씨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날은 정신이 없어 재희에게 용돈을 주지 못해 영환에게 대신 전했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이 여우 같은 아저씨가 딸내미에게 가는 용돈에 수수료를 뗀 것이 아닌가. 대원은 재희에게 정말 고맙고 영환이 너무 괘씸해 이런 꾀를 낸 것이다. 전화로 금액을 이야기해 버렸으니 영환은 꼼짝없이 돈 전부를 재희에게 전해야 할 테다. 대원은 봉투를 주머니 가장 안쪽까지 넣었다. 행여 잃어버리면 다시 뽑아드릴 수 있겠지만 이왕이면 잃어버리지 않는 게 제일 좋겠다는 재희의 말에 긴장이 된 탓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니 봄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새 공기에 축축한 퇴비 냄새가 났다. 이맘때쯤 아내는 꽃나무들을 잘 지켜보라고 했다. 미묘한 퇴비 냄새가 금세 꽃향기로 뒤덮이는 순간을 즐겨야 한다고 말이다. 대원은 오랜만에 다른 가수의 테이프를 꺼내 카 오디오에 집어넣었다. 아내가 봄이면 즐겨 듣던 노래였다.     


   3

   저마다의 세계는 들여다보기 전까지 깊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정보의 수준이 그저 검색창에 ‘안예은’이라고만 검색해 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훨씬 다양하고 깊이 있었다. 처음 카페에 가입하고 글이나 댓글을 너무 많이 달지 말라던 재희의 걱정은 기우였다. 뭘 쓸 시간은 없고 게시판마다 글을 눌러 보며 구경하기 바빴다. 이것저것 아는 것이 많아지니 검색하기도 훨씬 쉬워졌다. 유튜브도 들어가 영상도 보았고, 찾다 보니 예은 님이 트위터라는 것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건 또 어떻게 볼 수 있담. 대원은 아무래도 재희를 또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인 〈야화〉의 뮤직비디오가 있는 것을 보았다. 가사가 애달파 좋아하던 노래였다. 대원이 예은 님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사 때문이다. 가사를 음미하고 있자면 저마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머릿속에 들어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 주는 것 같았다. 노래 속 장면을 상상하는 일은 빈 차로 적적하게 도로를 오가는 대원에게 최고의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 뮤직비디오를 보던 대원의 귀가 점점 빨개졌다. 그러고는 민망하고 머쓱한 얼굴로 대화를 나눴던 한 손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원은 그제야 그 손님이 지었던 미묘하고 복잡한 표정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예은 님을 잘 아는 손님이었다. 연달아 노래가 나오자 손님은 알은체를 했다. 〈파아란〉 다음에 〈야화〉가 나오던 참이었다. 배경이 되는 만화와 영화가 있다고 했는데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 대원은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영화도, 만화도 요즘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대원은 필요할 때 보고 싶은 것을 골라 보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손님은 어딘가 놀라고 의뭉스러운 웃음을 하고 있었는데 도통 대원이 모르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이런저런 주제곡을 부른 뮤직비디오가 많이 있다고 알려 줬다. 〈야화〉는 유명 만화의 주제곡이고, 〈파아란〉은 영화 〈불한당〉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라는데 통 저세상 말들이었다. 중간중간 대원이 한 번에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이 섞여 있었는데 영어인 것 같기도 하고 한글인 것 같기도 한 단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핸드폰으로 보는 만화를 무어라 했는데 그새 까먹어 따로 검색하지 못했다. 그러다 손님이 내려버려 다른 단어는 무슨 뜻인지 아예 말도 붙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때는 주영이 가입해 준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노래만 겨우 듣는 수준이어서 더 찾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발표된 모든 노래를 하나씩 듣고 익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찰 때였다. 차마 뮤직비디오를 다 보지 못하고 핸드폰을 덮어 놓았다. 대원은 영문도 모른 채 가슴이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다음 가사를 생각하며 영상을 보던 참이었는데 딸이 방에서 나와 거실을 어슬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꾸만 귀가 영상 속 음악보다 거실에서 나는 소리를 듣기 위해 움직였다. 자신도 모르게 영상과 방문을 번갈아 흘끔대는 것을 알아채고서야 핸드폰을 저만치 밀어 놓았다. 심장이 관자놀이와 귀에서 큰 북소리를 내고 머리는 멍해져서 몽롱했다. 오랜만에 울렁이는 긴장감을 느꼈다.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것일 수 있으니 나중에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잠들기는 또 아쉬워서 차라리 영화를 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홍연〉의 모티브라는 〈왕의 남자〉는 예전에 명절 특선영화로 본 적이 있었다. 다른 하나가 뭐였더라. 설경구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침대 모서리로 밀려났던 핸드폰을 들어 아는 것을 모두 검색창에 적었다. 그제야 영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제목은 〈불한당〉. 사람들이 노래와 영화를 함께 두고 이것저것 써 둔 게시물들이 많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하나씩 눌러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방을 나섰다. 이제 검색은 대원에게 별일 아닌 것이 됐지만 핸드폰으로 할 줄 아는 것은 여전히 그것뿐이었다. 결국 영화 포스터를 핸드폰 화면에 크게 띄우고 주영의 방문을 두드렸다. 포스터를 보여주며 영화를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묻자 주영이 어이없다는 듯 대원을 올려다봤다. 핸드폰에서 검색하던 주영이 갑자기 물었다. 오래전에 개봉한 영화를 왜 갑자기 찾느냐는 것이었다. 대원은 무턱대고 영환이 떠올랐다. 심심할 때 보기 좋은 영화라고 했는데 마침 심심해서 볼 생각이라고 둘러댔다. 그냥 좋아하는 노래의 배경이라고 이야기해도 될 텐데 저도 모르게 거짓말이 불쑥 튀어나와 난감했다. 공연히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통에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것이 어딘가 모르게 부끄러워 대원의 시선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정작 주영은 심드렁했다. 방에 있는 티브이에 있을 거라고 했다. 그대로 곧장 몸을 돌려 리모컨을 들고 검색을 시작했다. 평소라면 주영에게 영화를 켜는 것까지 해 달라며 귀찮게 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조심스러웠다. 영화의 첫 장면이 무엇일지 몰라서였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아저씨가 영화를 보고 싶다며 골라 틀었는데 예상치 못한 장면이 갑자기 나온다면 어느 집 딸이라도 당황할 테다. 무엇보다 관자놀이에서 느껴지던 두근거림이 가라앉기는커녕 귓바퀴와 뒤통수까지 얼얼하게 퍼져 있었다. 이리저리 버튼을 눌러대며 어렵게 영화를 찾았다. 핸드폰은 충분히 익숙해졌는데 티브이 리모컨은 방식이 달라 그런지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핸드폰보다 오래 쓴 것인데도 그렇다. 아무래도 평소에는 자주 쓰지 않는 기능이라 그런 것이겠지. 영화를 찾아낸 대원은 망설임 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결제 비밀번호는 0000. 실은 바꾸는 방법을 몰라 계속 이렇게 쓰고 있다. 누가 집에 들어와 티브이로 영화를 볼 것도 아니라서 상관없었다. 그나저나 가만. 〈홍연〉의 가사 속 붉은 실은 〈왕의 남자〉 누구와 누구의 것이더라? 대원은 영화를 본 지 너무 오래되어 가사의 주인공들 얼굴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오늘은 일단 이 영화를 보고, 다른 날에 〈왕의 남자〉를 한 번 더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내 긴장감에 휩싸여 영화를 봤다. 마른침이 꿀떡꿀떡 넘어갔다. 〈파아란〉을 몰랐다면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조금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초반에는 가사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생각하느라 통 집중하지 못했다.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야 가사 생각은 잊고 온전히 영화에 몰입했다. 우연히 봤다면 흔해 빠진 누아르 영화라고 생각했을 테다. 역시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것이다. 대원은 그 말을 오랜만에 체감했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파아란〉의 가사를 떠올렸다. 가사와 함께 영화의 몇 장면이 대원의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됐다. 이 영화를 보고 그렇게 아름답고 애틋한 노래를 만들어 내다니. 아무래도 예은 님은 천재임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이런 경험 자체가 대원에게는 너무나 신선한 일이었다. 그저 노래를 듣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일은 처음 겪어 보는 즐거움이었다. 곧장 다시 핸드폰을 들어 아까 보려던 게시물들을 하나씩 눌러 보기 시작했다. 대원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와 영화를 연관 지어 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감상을 공유하고 거기에서 비롯된 또 다른 창작물을 음미하는 일이 이렇게나 재미있다니. 요즘 사람들이 핸드폰에 고개를 파묻고 왜 그렇게 바쁜가 했더니 그 안에 너무나도 크고 재미있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이런 영화도 있고, 노래도 있고, 사람도 많으니까. 예전에 어디선가 인터넷을 보고 정보의 바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기는 바다다. 관심사만 있다면 온갖 것을 찾아내고 즐길 수 있는 무제한의 바다. 대원은 자신의 방이 한 평만큼 더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운이 가시지 않은 대원은 두 사람이 나눈 감정을 무어라 부르면 좋을지 한참 생각했다. 멍하니 머릿속에서 단어를 고르던 대원은 마음에 드는 말을 골랐다. 우애. 그래, 그건 우애다. 그렇다면 가사는 아무래도 주인공인 재호와 현수의 것이겠지. 세대를 뛰어넘은 두 남자 사이의 끈끈함이 대원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런데 어쩐지 대원에게는 다른 인물인 병갑의 혼잣말로도 들렸다. 대원은 잠들기 전까지 한참이나 병갑이 안쓰럽고 불쌍해 울었다.      


   4

   예매 내역을 받고 대원은 헤실헤실 웃었다. 콘서트는 두 달이나 기다려야 했지만 그날이 다가오는 내내 행복할 것 같았다. 어떤 노래를 할까? 콘서트에서는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던데, 이번엔 또 어떤 특별한 노래를 준비했을까? 대원은 새로운 무대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생각에 매일 신이 났다. 그러다 딸이 말한 주말이 덜컥 온 것이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흥에 취해 있는데, 별안간 딸이 결혼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나 심란해지기를 반복했다. 딸에게는 결혼식 날 서울에 콘서트 보러 가야 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면이 상하는 것이 걱정이었고, 다 늙어 너무 주책이었다. 아버지란 사람이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에 가겠다고 결혼식장에서 먼저 빠져나가도 되겠냐고 질문을 하는 건 무책임해 보였다. 나름대로 첫 만남이라 정갈한 옷을 꺼내 입고 왔는데도 구김이 눈에 띄어 자꾸 옷을 당겨 폈다. 주영이 미리 아버지는 안 계신다고 주의를 준 참이었다. 대원 역시 행여 말실수할까 더 긴장했다.

   사위가 될 아이는 꽤 괜찮은 사람 같았다. 주영이 과묵하고 쌀쌀맞은 것에 비해 쾌활하고 다정해 보였다. 연신 접시에 음식을 덜어 주기도 했고, 가벼운 대화를 잘 끌어 나가는 아이였다. 덕분에 식사하는 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다만 두 사람이 너무 친구 같아 걱정되었다. 무릇 가족이란 서로 조금 어렵기도 하고 높이는 마음도 있어야 잘 지낼 수 있는 법이다. 너무 허물이 없으면 해서는 안 되는 말도 툭툭 나오기 마련이니까. 그러면 싸움이 잦아지고 마음의 골도 깊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대원은 딸이 결혼하겠다는 아이가 마음에 들면서도 내심 어딘가 찝찝했는데 도통 설명할 길이 없어 답답했다. 식사가 끝날 즈음에는 준비해 온 선물이 있다며 작은 종이가방을 건넸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상자에 든 것은 선글라스였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누가 쓰던 것 같아 가만 들여다보기만 하던 참이었다.

   이게 유명한 빈티지 샵에서 사 온 거예요. 엄청 비싼 명품인데 상태 좋은 게 나와서 제가 냉큼 샀어요. 하루 종일 운전하시니까 아무래도 해 많이 보시잖아요. 그게 눈에 많이 안 좋다더라고요. 그래서 선글라스 사 드리고 싶었는데 마침 알맞은 물건이 나왔지 뭐예요?

   나한테 먼저 물어보지. 우리 아빠 피카부야.

   피카부?

   새것만 좋아해. 반짝거리는 거. 선물 사는 줄 알았으면 미리 말해 줄걸.

   대원은 말이 빈티지지 중고 물품이라고 생각했다. 썩 내키지 않았는데 주영의 말에 대원은 약이 바짝 올랐다. 뭐? 피카부? 새것만 좋아해? 대원은 자신은 그런 속물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었다. 어쨌거나 명품이고, 자신을 생각해 고른 물건 아닌가. 선물은 고맙게 잘 쓰겠노라고 대답하며 딸애를 째려봤다. 아무리 그래도 이 자리에서 자신이 가장 큰 어른인데 놀림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대원이 눈치를 줬지만 주영은 눈썹을 한 번 으쓱하고 말 뿐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그래. 역시 가족끼리는 조금 어려움도 있고 불편함도 있어야 한다. 너무 친구 같으면 이렇게 서로 마음 상하게 말을 툭툭 내뱉기 마련이다. 대원은 어른으로서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아빠. 식은 두 달쯤 뒤야. 4월 셋째 주 토요일. 잊어버리면 안 돼. 또 까먹고 일정 잡지 말고. 

   당연하지. 내가 뭐, 딸 결혼식 날짜도 헷갈리는 사람일까 봐?

   호언장담을 하고서 날짜를 세는 순간 대원은 머리가 핑 돌았다. 안 그래도 음식이 조금씩 나와 뭘 먹은 것 같지도 않더니만 별안간 속이 꽉 막혔다. 먹은 것 없이 체기를 느끼자 미간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재수가 없으려 해도 이렇게 없을 수 없다. 그날은 다름 아닌 예은 님의 콘서트 날이었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물론 대원이 기다려온 날이라는 것은 두 행사 모두를 일컫는 표현이다. 딸의 결혼식도, 콘서트도 오매불망 기다려온 것인데 두 개의 행사 일정이 겹치다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따끔하게 한마디 할 생각만 하다가 딸의 말에 무심코 당연히 된다고 말해버렸다. 대원은 더 이상 체면을 구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날짜를 바꿀 수는 없겠느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순간에는 너무나 당황해 어떻게 상황을 조율하면 좋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마를 훔치니 땀이 잔뜩 배어 나왔다. 엄지로 손끝을 문지르자 흥건한 땀 때문에 손이 미끄러졌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불현듯 아내가 해 준 말이 떠올랐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땀을 닦고 물을 한 잔 마시면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대원은 물을 가득 삼키고 나서야 주영에게 물었다.

   식은 몇 시야?

   아마 자리 뺀 사람들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 뺀 것 같아. 10시 예식이야. 그래도 토요일이면 좋은 요일인데 왜 뺐대?

   대원은 다시 깊은 수심에 잠겼다. 오히려 이른 시간이라 다행인가 싶기도 했다. 애매하게 오후 시간대였으면 꼼짝없이 사면초가인 꼴이 될 뻔했으니까. 아무래도 혼주인 자신이 오래 머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즘 결혼식은 짧게들 하지 않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친구 자식들 결혼식에 가서 주례를 듣다가 나와 밥만 먹고 온 기억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들 결혼하는 거 끝까지 좀 보고 올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해서 될 일은 또 없다. 대원은 분주하게 타임라인을 생각해야 했다. 10시 예식이니까 하객들 맞이하고, 식 올리고, 사진 찍고, 흩어지고. 못해도 오후 2시면 일정이 다 끝날 테다. 그러고 나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고. 그리고 용산역에서 콘서트장까지 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서울에서 뭐 대단히 움직여야 지하철로 한 시간이 더 걸리겠나 싶었다. 전주에서 용산까지 1시간 반, 서울에서 넉넉히 1시간 반. 그리고 대망의 콘서트는 8시다. 그렇게 이동한다고 생각하면 제법 여유 있는 동선이었다. 그러고 보니 폐백도 하나?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대추 물고 어쩌고를 할까? 대원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차 물었다. 마음이 끝없이 조급했다.

   폐백도 하니?

   안 그래도 아빠한테 그거 물어보려고. 폐백 해야 하나? 어른들은 하는 걸 좋아하신다는데…. 승호 어머니도 그거 굳이 안 해도 된다고 하셔서 아빠 의견은 어떤가 싶네.

   그런 거 다 허례허식이다. 세상이 바뀌지 않았니. 해 봐야 괜히 예식장에 머무는 시간 길어지고 고생만 하지. 고로 식은 간결하게 끝내고 너네 놀러 가. 주례도 내가 봐주마. 어머니도 한번 뵈어야지. 자네 집이 어딘가?

   함양입니다. 경남 함양.

   남원 옆이고만. 내가 차가 있으니까 조만간에 날 잡아서 다 같이 가자고. 옛날에나 재 넘어가는 곳이지 요즘에는 고속도로가 잘되어 있어서 가기 어렵지 않으니까.

   가만 사위 될 아이 이름이 승호였나? 정신이 없어 이런 것까지 잊어버리다니. 대원은 자신의 경황없음에 당황했다. 어쨌든 폐백도 없고, 주례도 대원이 보는 것으로 밀고 나갔다. 대원이 가능한 선에서 시간을 줄여 나가려면 최대한 많은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진땀이 나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큰 기쁨을 모두 누리려면 그에 따른 대가도 무거운 법이다. 꼬인 실타래가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끝없이 아득했다가 얼굴에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을 느꼈다. 놀라 얹혔던 속이 풀렸다. 대원은 집에 돌아가 컵라면이나 하나 더 끓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만 자리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기가 쭉 빨려 온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5

   결전의 날이 밝았다. 대원의 계획은 간단했다. 4시간 안에 예식 전 과정을 끝내고 넉넉하게 3시 30분 기차를 타는 것이다. 올라가면 5시. 콘서트는 8시. 서울 안에서 이동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대원도 혼주가 되는 경험은 처음이라 자식들 시집, 장가보낸 동료들에게 물어물어 세운 결론이었다. 자식들도 바로 신혼여행을 가야 하니 대체로 예식장에 오래 머무를 일은 없다고 했다. 주영은 저녁 비행기를 탄다고 했고, 대원만큼이나 촉박한 일정이었다. 폐백은 없고 축가도 없다. 주례는 대원이 준비한 축하의 말 몇 마디 건네고 마무리하면 됐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일어날 만한 거의 모든 사고를 상상했다. 덕분에 전날 새벽부터 대원의 머릿속은 터질 것 같았다. 잠을 설쳐 낯빛마저 칙칙했다. 어쨌거나 오늘은 중요한 날이 아닌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는데 대충 씻은 상태로 멀리 서울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 도리질하며 일어나 의식을 치르듯 목욕했다. 중요한 날일수록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 머리를 털고, 승호가 새로 선물한 향수를 구석구석 뿌렸다. 시원한 향이 곧장 대원 주변을 감쌌다. 하지만 향수를 뿌리는 일은 또 무척 낯설어서 대원은 기침을 여러 번 해야 했다. 기침이 잦아들고 대원은 엄지가 정반대로 가도록 손을 맞잡았다. 아내는 중요한 날이 되면 이렇게 대원의 손을 꼭 잡아 주곤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상상치도 못한 변수에 시달리게 되는 법이라고. 행운이 필요할 때는 늘 이렇게 행운을 빌어 놓아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정신없이 손님을 맞이하고 식장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 시간쯤이 되자 대원도 혼이 쏙 빠져서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화촉 점화는 생략하지 않았다. 식순에서 그 몫을 빼면 아내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 것 같아서였다. 융통성 있는 시대 덕분에 아버지가 화촉점화를 하는 것이 아주 이상하지 않은 덕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차례가 되니 정반대였다. 대원은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여기에 대원은 혼자 온 것이 아니다. 대원이 엄마, 아빠의 몫을 모두 해야 했다. 심호흡을 반복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지금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초에 불을 붙이면서 사돈어른과 짧은 묵례를 했다. 고운 한복을 입고 예쁘게 머리를 올린 사돈이 부러웠다. 다잡은 마음이 무색하게 혼자 딸의 결혼을 축하하는 자신이 처량하고 초라했다. 갑자기 대원은 한없이 슬퍼졌다. 자리로 돌아와 앉았고 빈 아내의 자리를 내려다보느라 연습한 것들을 몽땅 잊고 말았다. 결혼식을 돕는 직원이 다가와 흔들어 부르고 나서야 대원은 부랴부랴 주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제야 사소한 행동으로 시간을 지체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다 혹시 기차를 타지 못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급기야 주영 옆에 섰을 때는 속이 울렁거렸다. 주영에게서 나는 향수 냄새와 자신에게서 나는 향수 냄새가 이상하게 섞인 탓이다. 대원은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꾹 누르며 울렁거리는 속도, 긴장도 풀리기를 바랐다. 행진을 위한 음악이 울리고 주영과 함께 식장을 걸었다. 사람들의 환호와 정신없는 조명 탓에 바르게 걷기 위해 애써야 했다. 승호 앞까지 도착해서야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대원은 무심코 주영의 손을 승호에게 건네는 대신 다른 반대편 손을 승호와 맞잡았다. 대원에게 생글거리며 웃는 낯으로 인사하던 승호가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연습한 건 이게 아니었는데 대원이 저도 모르게 그랬다. 그러니까 주영은 원래 제 것이 아니었고, 주영 말마따나 우리가 대단히 서로에게 어떤 권한이나 영향을 차지할 만큼 친한 것도 아니었다. 솔직한 말로 이렇게 손을 넘겨주는 일은 대원보다는 아내의 몫인 게 맞았다. 승호와 주영의 손을 양쪽에서 맞잡던 대원이 눈을 몇 차례 끔벅이다 두 사람의 손을 모두 놓았다. 서로의 손을 잡는 것은 부부가 될 두 사람이 알아서 하면 될 일이었다. 

   그 뒤로도 대원은 드문드문 자신 옆의 빈자리를 보며 헛헛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화장한 얼굴은 답답해 얼굴 감각이 둔해진 것 같았고. 기차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이 결혼을 누구보다 기뻐했을 아내는 이 자리에 없고. 자신은 끝도 없이 홀로 허둥대고만 있었다. 주례 차례가 되어 얼결에 단상 위로 올라와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영이 너무 황당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원은 감정이 벅차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급하게 사회자가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대원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손수건을 꺼내 팽 소리가 나게 코를 풀었다. 손수건이 닿은 부분만 화장이 닦인 탓에 빨개진 대원의 코가 유독 눈에 띄었다. 대원은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알지 못해 속이 복잡했다. 주영이 다 커서 결혼까지 한다는 사실이 눈물 나게 기쁜 것인지, 아내가 이 중요한 날에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것인지. 아니면 대원이 혼자 모든 것을 다 겸하는 것이 서러운 것인지. 여전히 대원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목을 짧게 가다듬은 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자식 결혼은 저도 처음이라 감정이 복받쳤나 봅니다. 다들 주례가 길면 지루하시지요? 짧게 끝내겠습니다. 다른 것을 특별히 바라지는 않고요. 부모 된 마음으로 무탈하게,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랍니다. 가족이라는 게 한없이 편하기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조금은 서로 어렵기도 하고 그래야 존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친구이면서 동시에 조금 어려운 그런 사이 말입니다. 그런고로 서로 마음도 살피고 궁금도 하면서 그렇게 잘 살면 좋겠어요. 조금 모순적이지요? 그래도 별수 없지요. 에…. 사람이라는 게 어느 날은 한없이 상대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에는 내 생각을 먼저 하게 돼요. 너무 친구 같은 가족으로 살다 보면 필요한 말을 더러 안 하게 됩니다. 인자 예를 들면은 이런 것이죠. 자주 안부도 묻고, 오늘은 어떻게 살았는지, 좋아하는 것이 생겼는지, 이번 계절에 가고 싶은 곳은 없는지,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이상하죠? 실은 친구를 만나면 종종 묻는 안부잖아요. 그런데 한집 사는 친구라고 생각하면 묻지 않게 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어려울 때만 생각이 나게 돼요. 도움만 받고 싶고, 배려만 받고 싶어져요. 서로의 뒷배가 되어 줘야 하는데 각자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들처럼 뻗대게 됩니다. 마음이 조금 어려운 것이 있어야 서로의 안색도 살피고 그런 것입니다. 서로 다정하게 살아야 오래 잘 살 수 있어요. 고로 아무래도 서로 조금 어려워야 합니다. 제 말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한참 주례를 하던 대원은 손목을 흔들어 시계를 봤다. 어쩐지 하던 이야기가 계속해서 맴맴 도는 느낌이 들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주례로 이십 분이나 떠들어버린 것이었다. 미리 준비한 쪽지가 있었으나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손수건인 줄 알고 덥석 집는 바람에 물에 다 젖어버렸다. 얼추 좋은 이야기로 시간이나 때우고 내려올 참이었는데 혼자서 한참을 횡설수설 떠들어버린 것이다. 대원은 땀이 주룩 났다. 시계는 원래 예상한 시간보다 한참 벗어난 곳을 가리켰다. 계획이 틀어지자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결국 대원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말로 주례를 마쳐야 했다.

   검은 머리가 파 뿌리…. 

   대원은 쫓기듯 단상에서 내려왔다. 감당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가슴이 쿵쿵 뛰고 어쩔 줄 몰랐다. 이게 바라던 딸의 행복한 결혼식인지 생각할수록 장담하기 어려워 시선이 절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도 흘끗흘끗 시계를 보며 바짝 땀을 흘렸다. 야속하게도 사회자는 이런 대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시간을 끌며 결혼식의 마무리를 방해했다. 식이 다 끝나고 덤덤한 주영과는 달리 한바탕 울어 젖힌 승호의 화장을 고치느라 사진을 찍는 시간마저 지체됐다. 승호는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슬펐을까. 사내자식이 말이야. 내가 더 울고 싶은데 참고 있구먼. 대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여차저차 모든 식이 끝나고 대원은 웃는 낯으로 주영과 승호를 배웅했다. 대원이 생각하는 어른이란 적어도 이런 것이었다. 행사를 주관하고, 조금 덜그럭거리더라도 맡은 바를 마저 다 수행하고. 동시에 속이 복잡한 것이 어른이라고. 손목 안쪽까지 돌아간 오래된 시계를 흔들어 제자리에 놓았다. 생각한 것보다 한 시간이나 지나버렸지만 그래도 기차 시간에 아예 늦은 것은 아니었다. 혹시 몰라 넉넉하게 표를 끊어 둔 덕분이다. 지금 당장 택시를 탄다면 승산이 있었다. 챙겨 온 여분의 옷에 예매 내역이 든 봉투를 챙겨 기차를 타기만 하면 되었다. 이럴 줄 알고 영환에게 식이 끝나면 역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예식장을 서둘러 벗어나 주차장에 보이는 영환의 차로 뛰어들었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바쁘게 옷을 갈아입었다. 나름 깔끔한 옷을 챙겨 온다고 챙겼는데 하필 전부 부스럭대는 재질의 등산복이었다. 꼭 속이 시끄러운 날은 모든 것이 쉴 새 없이 시끄럽고야 만다. 한참 옷을 추스르느라 번잡한 소리를 내던 대원은 마지막으로 안주머니에 봉투가 잘 들었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전주역 도착을 10분 남짓 남겨 두고 길이 엄청막혔다. 아뿔싸. 대원이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었다. 대원은 차에서 내려 플랫폼까지 뛰기로 했다. 갈아입은 옷은 영환에게 맡겨 두고 챙겨 온 배낭을 단단히 고쳐 멨다. 지금이야말로 대원에게 행운이 필요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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