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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크나인 Jan 12. 2021

결혼하면 잘 살 관상

연말연시가 되면 점집이 붐빈다.


새해에는 건강하게 그리고 무탈하게 잘 지낼지 궁금함이 앞서 용하다는 '족집게 점집'을 찾는다.


신문 스포츠 면 하단에 자리한 '오늘의 운세'를 챙겨보는 편은 않지만 눈에 띄면 읽고 지나간다. 좋은 내용이 아니라면 '쓸데없는 미신'이라며 다음 장으로 서둘러 페이지를 넘겨버리고, 금전운이 좋다거나 직장 내에서 인정받는다는 글이 쓰여있으면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내와 연애시절부터 1년에 한 번 정도는 점을 봤다. 타로도 보고 손금을 통해 사주나 궁합도 본 적 있다. 크게 좋지도, 크게 나쁘지도 않은 무난한 이야기였지만 몇몇 역술가들이 공통적으로 같은 내용을 말할 때는 의심의 눈초리로 치켜세웠던 나의 두 눈이 놀라움에 조금씩 커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점집을 방문하는 것보다 카톡이나 메시지를 통해 점을 보기도 하고 관련 어플도 다양하니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2021년 신축년 새해를 맞이해 아내가 무료로 관상을 볼 수 있는 사이트 링크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호기심 반, 재미 반의 마음으로 내 얼굴이 나온 사진을 휴대폰 사진첩에서 골라 업로드했다.



결과가 나왔다. 의심의 눈초리를 장착한 채 휴대폰 화면을 응시했다.


제일 눈에 들어온 것은 '결혼하면 잘 살 관상'이라는 것.

크고 붉은 글씨로 강렬하게 적힌 문구가 가슴을 쳤다. 궁서체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진지함과 결연함이 묻어 나왔다. 이미 결혼은 했으니까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결혼하기 전에는 잘 살지 못한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혼재됐다. 아내는 조용히 TV를 보고 있다. 이어서 읽어 내려갔다.


- 결혼운이 좋다

결혼 5년 차임에도 결혼운이 좋다는 얘기는 듣기 좋은 말이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본인의 관상 결과를 보여줬다. 결혼운에 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혼은 아내보다 나에게 더 많은 이득인가? 결혼한 마당에 누가 이득이고 누가 손해인지 따지는 것은 세상 유치한 일이지만 두 관상 결과를 나란히 놓고 보니 자동차 뒷자리에 서너 사람이 비좁게 않아 있는 것처럼 속이 좁아졌다.


- 눈썹은 재복이 좋고 자존심이 강하다

자존심이 은근히 강한 것은 맞다. 겉으로는 '허허' 하지만 속으로는 칼을 가는 스타일이기는 하다. 눈썹도 진한 편인데 중요한 건 도대체 재복은 언제 오는지 궁금하다. 정말 궁금하다.


- 살림을 잘하는 입술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얘기이거니와 살림을 잘하는 입술은 어떤 입술인지 궁금했다. 솔직히 퇴사한 지 100일이 지나면서 청소와 설거지 스킬이 향상된 것 같기는 하다. 설거지를 마친 뒤 미끌미끌한 기름기를 이젠 거의 느낄 수 없다.


웃음기를 빼고 '살림'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비단 살림이 눈에 보이는 정리정돈만은 아닐 것이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를 묻기도 하듯 집안의 재정적 관리도 포함될 수 있겠다. 집안 형편을 잘 꾸려 나간다는 말로 달리 해석하니 어깨가 무거워지는 감도 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결혼하기 전 혼자 살면서 관리비를 아끼기 위해 보일러도 잘 틀지 않았고 불은 항상 끄고 살았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불을 켜는 대신 손으로 앞을 휘휘 저어가며 장애물 유무를 파악하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한 달 만에 관리비가 13만원 적게 나와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기쁜 마음에 지인들과 한잔했고, 하루 저녁에 20만원을 술값으로 날리기도 했지만 해냈다는 쾌감이 더욱 묵직하게 남아 있다.


재미있는 건 아내의 관상 결과다. 아내의 얼굴에, 아내의 인생에 살림은 없나 보다. '집안일보다 바깥일을 좋아하고 출세와 성공에 강하다'라고 쓰여있다. 비록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나도 바깥일 좋아하고 성공하고 싶다. 그럼에도 얼마 전 창업한 아내의 외조나 잘하라는 뜻인지 심드렁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 재복이 좋고, 말년운이 좋다

말년운이 좋다는 말은 점을 볼 때마다 듣는다.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도대체 그 말년이 언제일까. 그 말년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웹툰 작가 이말년도 모를 것이다.


- 재복과 인복이 좋으며 직업운과 대인관계가 좋다

여덟 줄의 길지 않은 관상평에서 재복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등장한다. 첫 번째, 두 번째 나올 때는 기분이 좋았지만 또다시 나오니 오히려 신빙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지난해 퇴사하고 백수로 지내고 있는 지금, 직업운이 좋다는 말도 고깝게 들린다.


- 총평 : 좋은 관상이다

왕이 될 관상은 아니어도 좋은 관상이라고 마무리 지어주니 좋은 끝맺음이다. 결혼하면 잘 살 거라는데 결혼도 했고, 살림도 잘한다고 하니 조금 더 신경 써서 더 잘해보고픈 욕망이 샘솟는다. 큰 의미부여는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좋은 말은 더욱 좋게, 좋지 않은 말은 반대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바보는 공자의 말씀도 무시하고 듣지 않지만 공자는 바보의 말에도 배울 게 있는지 귀 기울여 듣는다. 이 시간만큼은 나도 공자가 되어 짧은 관상평에서도 보고 배우고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생각해본다.


"오빠, 딸기가 먹고 싶네~" 강소라보다 예쁜 아내가 딸기를 먹고 싶어 한다.

"그래? 알겠어~" 소파에 엉켜있던 엉덩이에 용수철이라도 달린 듯 즉각 튕겨져 몸을 일으킨다.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하듯 하늘에서 펄펄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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