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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크나인 May 27. 2021

매일 아침 커피 대신 차를 마시기로 했다

차에 진심입니다만...

차(茶)에 진심을 다한 건 아내가 먼저였다.


사실 아내는 커피를 좋아했다. 그날그날의 날씨나 컨디션,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따라 종류를 달리해 마신다. 해가 쨍쨍하고 화창한 날이면 달달한 아이스 바닐라 라떼(일명 아바라)를 즐겼고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기라도 하면 따스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면 깊은 풍미의 아인슈패너를 주문했고, 지방이나 장거리 이동을 하면 토피넛 라떼나 연유 라떼를 들고 차 안으로 오른다. 긴 시간 자칫 다운될지도 모를 몸과 마음을 끌어올리기 위해 스윗한 커피가 제격이라는 아내의 설명이다.


하지만 카페인에 민감한 아내는 오후 3시 이후에는 웬만하면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오후 네댓 시에 커피를 마시고 잠을 설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식사 후에 반드시 커피를 마셔야 하는  아니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허락될 때면 아내와 나는 커피와 함께했다.  


그런 아내가 어느 날 다도세트를 선물로 받고 차에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진심을 다해 차를 우려내 거실 밖 풍경을 보며 아일랜드 식탁에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 일과를 미리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다. 아내가 내게 차를 권했을 때 처음엔 썩 달갑지 않았다. 집에서도 간단히 봉지를 뜯어 뜨거운 물을 타거나 찬물에 얼음을 넣으면 되는 커피류와는 달리 차는 준비하는 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시큰둥했지만, 아내가 차를 마실 때 얼떨결에 몇 번 얻어 마셨는데 커피와는 뭔가 다른 좀 더 풍부하고 따뜻한 기운이 몸속으로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몇 번이고 차를 우려 마시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푸근함도 찾아왔다.



나는 커피를 즐기거나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커피를 즐기지 않았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달달한 액상커피 외에는 잘 마시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신 게 직장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할 무렵이었으니 20대 후반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커피의 맛보다는 따뜻함 또는 시원함이 먼저였고, 달면 기분 좋게 삼켰고 쓰면 억지웃음을 지으며 쓴 대로 삼켰다. 커피 본연의 향을 느끼지 못했고,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찾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차를 접하면서 오감만족을 느끼기 시작했다. 차의 보드라운 색을 보며 눈으로 먼저 마셨고 고유의 향을 코에게 내준 뒤 감미로움을 혀끝으로 맛보면서 따뜻한 온기를 식도와 위를 통해 느꼈다.


더불어 매일 아침 아내와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일상의 변화가 찾아왔다.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아내와 함께 하려면 우선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전보다 긴 하루를 보내기 시작했고, 차를 급하게 마시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아내와 이런저런 대화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따뜻한 차를 몇 잔 마시면 이뇨작용 때문인지 화장실도 잘 다.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아내는 차를 내온다. 커피나 음료를 대접했던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어느 날 아내의 지인이 우리 집을 찾았다. 아내는 어김없이 차를 준비했다. 마침 지인도 차에 대해 잘 알았고 차를 즐겨 마신다고 했다. 아내와 지인은 어떤 차가 좋은지 어디를 가면 좋은 차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꽤 긴 시간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아내는 어느덧 '차 전도사'가 됐다. 아내 회사 직원들에게 차를 권한다. 우리는 예쁘고 귀엽게 생긴 이동식 다도세트도 하나 장만했고 귀하다는 보이차를 장모님께 선물로 받는 기쁨도 누렸다.


그래도 아직 완전히 커피를 끊은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는 쉽게 차를 구할 수 없을뿐더러 커피가 필요한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는 커피대로 맛이 있고 차는 차대로 매력이 있다.


매일 아침 차를 마시는 것은 아내와 나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습관이자 특색 있는 또 다른 만남과 대화의 장이 됐다. 


동이 텄다. 오늘도 함없이 보글보글 물을 끓여  개의 앙증맞은 찻잔에 진정한 마음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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