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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크나인 Jun 18. 2021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김치찌개를 끓이다 말고

계속 늘어져만 있고픈 평화로운 주말 저녁.


“오빠, 김치냉장고에 묵은지 있는데 내가 김치찌개 해줄까?”

어쩐 일일까? 아내가 요리를 하고 싶어 한다.


“응? 어~ 그러자~ 맛있겠다~”

대답 타이밍이 한 박자 늦은 감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눈에 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갔다.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 밥도 해줄게~”

“응~ 고마워~”

(여기서 '고마워'는 나는 그냥 소파에 늘어져 있어도 되지?라는 뜻이었다.)


사실 아내는 요리에 취미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면 하지만 잘하지 않는다. 함께 살고 있는 식구라곤 아내와 나, 반려견 설이가 전부라서 아내와 난 한 끼 식사를 위해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국을 끓이고 밥을 하고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를 하는 행위가 금액적으로나 시간적으로도 합리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군다나 아내는 지난해 창업을 해 요즘 정말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물론 먹는 것은 중요하다. 든든하게 먹어야 밖에 나가 열심히 일할 수 있다. 힘이 난다. 그렇다고 반드시 집에서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할 필요는 없다. 요즘 밀키트가 정말 깔끔하고 완벽하게 나오고 있고 아내의 사무실이 있는 빌딩 지하 1층에는 단돈 6천원으로 매일 메뉴가 바뀌는 한식뷔페를 원 없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괜히 요리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나은 일이라 여기고 있다.


그래도 가끔 집밥이 먹고 싶을 때는 이렇게 찌개류나 볶음 종류를 뚝딱 만들어 먹곤 한다. 아내의 김치찌개 끓이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결혼 후 몇 번 시도(?)했었는데 애초의 김치찌개가 모두 김치찜으로 둔갑해 식탁으로 올라왔다. 김치찌개는 국물과 함께 서서히 하늘로 증발해버렸던 것이다. 김치찜도 맛있지만 애초에 목표로 했던 김치찌개를 이번에는 당당히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렇기에 아내의 이번 김치찌개 제안이 묘한 기대를 갖게 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주방에 있는 아내에게 스윽 다가가 “잘되고 있어?” 물었더니 “응!!”이라는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김치와 아내가 좋아하는 스팸 말고는 크게 넣은 것이 없어 보이는데 매콤 달콤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침이 고이는 듯했다. 이때 반팔 티셔츠를 입고 김치찌개를 끓이던 아내의 왼쪽 팔뚝에 찌개 국물이 튀었다.


“앗, 뜨거워.”

"괜찮아?"

나는 잽싸게 물티슈를 한 장 뽑아 아내의 팔에 묻은 찌개 국물을 닦아냈다. 그런데 유독 한 군데가 잘 닦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물티슈로 조금 강하게 누르듯이 닦아냈다.


그때 아내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오빠.”

“응?”

“그건 닦지 마.”

“응?”

“그거 점이니까 닦지 말라고. 안 닦인다고~”

“응??”


당황해하며 아내의 팔을 자세히 그리고 신중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그 진지한 모습이 웃겼던지 아내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다 꺼억꺼억 소리를 내면서 마치 '웃음병'에라도 걸린 듯 웃음소리도 제대로 내지도 못하고 웃어댔다.


까맣지는 않은데 적색을 품은 짙은 갈색의 작은 점이라고 해야 하나? 자세히 보니 정말 점이었다. 제대로 웃음보가 터진 아내의 모습에 나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한번 웃음이 터지니 쉽게 멈추지 않았다. 웃음이 잦아들면서 평온을 찾을 때쯤 서로의 얼굴을 보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져버렸다.


“거기 국물 아니고 점이라고~” 아내는 재차 강조하면서 바닥에 쓰러지면서까지 웃고 또 웃었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배를 붙잡고 박장대소했다. 눈물을 닦아내면서까지 한참을 웃었더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한바탕 웃음 폭풍이 휘몰아친 뒤 어느새 아내가 김치찌개를 완성했다. 이번엔 자글자글한 김치찜이 아닌 빨간 국물이 김치와 스팸을 감싸고 있는 스팸김치찌개를 완성한 것이다. 보글보글 따스한 기운이 맴도는 김치찌개 한 숟가락을 떠서 갓 지은 하얀 쌀밥 위에 흩뿌렸다. 쓱쓱 비비고 나서 크게 한술 떠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기대 이상으로 너무 맛있었다.

곧바로 아내에게 말했다. “김치찌개에 뭐 다른 거 넣었어?”

“응? 아니 뭐 특별히 넣은 건 없는데... 왜 맛이 없어?” 아내는 살짝 긴장된 어투로 대답했다.


“아니, 김치찌개에 혹시 꿀 넣었어?”

“응? 꿀?”

“김치찌개가 아주 꿀맛이야~ 흐흐”


놀란 마음에 동그랗게 커진 눈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아내는 정색하며 “어우~ 뭐야~” 하며 피식 웃었다.


김치찌개만큼 뻘겋게 잘 익은 태양이 쑥스러운 듯 붉은 노을빛 하늘을 남기고 산등성이 뒤로 숨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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