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정의로운 이들이 격정의 토론을 펼쳤을 거야
꿈을 가진 이들이 순수한 열정을 소리쳤을 거야
사랑에 빠진 이들이 깊은 키스를 나누었을 거야
그때는
이 도시도 뜨거웠을 거야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올림픽.
아테네의 유적지는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큰 매력을 풍긴다. 외국인이 보는 서울의 경복궁도 이런 느낌일까. 거대하고 현대 문명에 가까운 도시일수록 그 안에 남아있는 유적지는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문화와 역사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의 문물과 과거의 유물은 언제 봐도 조화롭다. 아테네가 서울만큼 발전한 도시는 아니지만 기원전부터 이어져온 유적과 역사가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 오래되고 상징적이었다. 아쉬운 점은 빛이 바랜 신전과 형체를 상당수 잃어버린 현재의 모습이었다.
뜨거운 토론이 오가고 열정적인 승부가 펼쳐질 것 같았던 도시는 겨울을 맞아 생각보다 차가웠다. 비수기인지 관광객도 그리 많지 않아 거리에는 휑한 기분마저 든다. 올림푸스의 신들은 모두 떠나버렸는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보던 화려한 모습은 느껴지지 않는다. 기대와 달리 세월에 깎인 건물과 색이 바랜 신전들의 남은 모습은 꽤나 씁쓸하다. 쌀쌀한 바람에 유적지는 쓸쓸하다. 수천 년 전에는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끝없는 토론을 벌였을 것이다. 철학자와 궤변론자, 수학자와 과학자 모두 지식을 나누었을 것이다. 올림픽이 열리면 선수들은 온 힘을 다해 달렸을 것이다. 눈을 감고 신전을 다시 세워보았다. 상상 속 아테네는 다시 뜨거워졌다. 눈을 뜨니 회의장은 여전히 적막했으나 뜨거웠던 온기가 조금은 남아있는 느낌이다.
나의 삶에서 가장 뜨거웠던 때는 언제였을까. 좋은 대학을 가겠다며 마음을 굳게 먹고 도서관을 향할 때였을까. 유럽에서 호떡을 팔겠다며 비자를 알아보던 날이었을까. 어느 날이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은 색이 바랜 아테네와 조금 더 가까운 듯하다. 누군가는 지금도 고대 아테네와 같은 뜨거운 날을 보내고 있겠지. 매일을 토론하고 배워가며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부럽지만 쇠락한 도시가 다시 부흥하듯 잠시 식은 나의 삶도 뜨거워질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그날을 위해 준비하는 오늘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