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도르트문트에서의 테러 위협.

여행을 떠날 때 기분이 좋아지는 첫 순간은 천장이 하늘까지 시원하게 트인 공항에 들어왔을 때이다. 공항이 크고 세련된 만큼 감동은 커진다. 무거운 수하물을 부치고 여권심사가 끝나면 두 번째로 기분이 다시 오를 때이다. 면세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탑승을 기다리는 순간은 어느 때보다 마음이 여유롭다. 반면 세계여행 중이라면 크고 멋진 공항보다는 작고 조용한 공항이 더 선호된다. 면세점이나 볼거리는 적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롭고 출국 심사가 빠르기 때문이다.


도르트문트 공항은 작지만 아주 깨끗한 공항이다. 승객 대부분도 독일 현지인으로 보였다.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던 면세점을 건너뛰고 하리보 젤리를 먹으며 탑승시간을 기다렸다. 새콤한 맛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가도 다시 따분한 기분이 들어 글이나 적을까 싶어 노트를 꺼냈다. 난잡하게 적혀있는 기록들을 살펴보는데 갑자기 사이렌이 울린다. 이어지는 방송에서는 영어와 독일어로 안내가 나왔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일어섰다.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이 생각보다 극적이다. “공항에 테러 위협이 있다. 공항을 탈출해야 한다.“


얼마 전 뉴스에서 봤던 테러 뉴스가 떠올랐다. 생각보다는 우선 행동하자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서둘러 짐을 들고 일어났다.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했지만 목적지는 딱히 없어 보였다. 긴급하게 울리는 사이렌 박자와 달리 사람들의 걸음은 평온해 보였다. 안전불감증인지 이들도 당황하여 멍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천천히 따라가던 중 사이렌이 멈추고 방송이 다시 나온다. 대피 명령이 내려진 이유는 폭탄이나 테러 위협이 아닌 누군가 금지구역의 문을 열어 들어가는 바람에 사이렌이 울렸다는 방송이었다. 침입자는 평범한 승객이었고 결과적으로 별 것 아닌 사건이었다. 짐작하건대 첫 방송이 나왔을 때도 누군가가 금지구역에 침입했다는 내용으로 대피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여유로웠고 테러와 독어에 익숙하지 않은 나만 마음속으로 오만가지의 수를 생각했던 것이다.


일본에 있을 때 북한이 미사일을 쏘았다는 뉴스를 보며 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냐고 물어봤던 스페인 친구가 생각난다. 나도 당시에 그리 대답했었다.

“싼티, 전쟁 때문에 내가 한국 가게 되면 너도 우리나라로 파병 와줄 거지?”


말도 안 된다며 웃는 싼티의 눈빛은 분명 흔들렸고 좌우로 스텝을 밟는 눈동자를 보며 즐거웠다. 조금 전 공항을 탈출해야 한다고 말하던 심각한 표정의 젊은 친구도 나의 흔들리는 동공을 즐겼을 테지.


전쟁도, 테러도 발생하지 않았으니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거친 사이렌 소리로 인해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많은 이들에게 잠깐이나마 감사하는 하루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꽃맥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