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 풀잎 위로 하얗게 꽃봉오리를 피웠어요
부드러운 거품 위로 꽃잎 향이 나네요
아직 취하긴 이른데
꽃을 마셨나 봐요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면 반드시 빼먹지 않는 절차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마그네틱 기념품, 두 번째는 그 나라의 맥주 마시기이다. 일본의 ‘삿포로’, 라오스의 ‘라오비어’. 유럽에서는 스페인의 ‘에스트렐라’가 기억나는 맥주 리스트이다. 반대로 체코의 필스너우르켈이나 벨기에의 레페 등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무래도 라거를 좋아하는 개인적 성향상 에일맥주나 도수가 높은 맥주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친구에게 에스트렐라가 마셔본 맥주 중에 제일이라고 말할 때면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에스트렐라는 스페인의 정형화된 상업 맥주 중 하나이기 때문인데 다양한 맥주 회사가 있는 스페인에서 에스트렐라는 너무 평범하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안동에 가서 수많은 전통주들을 두고 초록색 소주가 세계 제일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는 되지만 무지한 한국인에게는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마시는 에스트렐라가 제일 시원하고 맛있다.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아일랜드의 킬케니 등 말하자면 셀 수 없을 정도로 특색 있고 매력 있는 맥주들이 있었지만 가장 예쁜 맥주를 말하자면 독일에서 마신 에딩거이다. 레스토랑에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간단하게 주문한 맥주 한 잔에 예상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얹어있었다. 노란 맥주 위에 예쁘게 말아 올라간 거품은 식탁 위 꽃병에 꽂혀있는 꽃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한 모금 마시기가 아쉬울 정도였지만 탄산이 빠지기 전 서둘러 목을 축였다. 부드러운 거품이 입을 감싼다. 풍부한 향은 꽃을 마신 듯 후각을 비빈다. 안주로 소시지를 곁들이니 맥주의 맛은 한층 더 깊어진다. 남은 맥주를 비우자 취기가 올라오는 듯하다. 맥주 한 잔으로 취하는 법은 없었으나 꽃향기 때문인지 부드러운 거품에 빠진 것인지 혹은 분위기에 취한 것인지 모르게 몽롱해진다. 에딩거의 밤은 아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