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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vus Dec 25. 2020

35. 무지에 대한 공포

 내가 학교를 그만둘 때, 부모님께서 가장 걱정하셨던 것은 아마 '사람들 사이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내가 배우지 못한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주변의 어른들도 내가 학교에 다니지 않아 배움을 게을리할까, 혹은 일탈할까 걱정하기보다 다만 학교에서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시고는 했다. 이런 말들은 정말이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약 4달간 상담을 받고,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모임에 나가보려 노력했지만, 입학 이후 4달간 얻은 사회적인 능력에 비하면 혼자 노력해 얻은 능력은 매우 적었다. 학문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 학교였지만, 내면적으로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운 점 중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을 꼽자면 무지에 대한 공포이다.




무지에 대한 감정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 왜 중요한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각자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이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에는 아마 다들 동의할 것이다. 최고의 현인으로 꼽히는 소크라테스조차 무지자임을 자처했으며,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비교적 잘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러한 인식은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덕분에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세상엔 뛰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었다.



 놀라움 대학교에 다니기 전 간혹 만나던 사람들에게서 '모두가 내가 아는 것을 안다'라는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사람은 소수이고, 나는 알지만 남들이 모르는 것은 일부 전문 분야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학교에 다니며 다시 한번 깨지게 되었다. 내가 다니는 학과는 생물학과이니, 다들 나만큼은 알고 있으리라, 내가 합격한 학교이니 다들 나 정도의 이해력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거만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그때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학생들의 무지함이 놀라웠다.


 어떤 사실을 모르는 것은 그 분야를 이전에 공부하지 않았다면 당연하지만, '나는 생물학을 공부했다'고 자부하던 아이들이 사실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정말 놀라웠다. 내가 안다는,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도 너무나 놀라웠다. 학기 초의 나에겐 이런 놀라움이 일상이었고, 굉장히 충격이었다. 비꼬는 것이 아니다! 그런 자신감을 어떻게 가지는 것인지, 왜 이해를 못 하는 것인지 순수히 놀랍고 궁금했다.



 거부감 대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런 놀라움의 연속은 거부감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교수님들은 고의로 수업의 수준을 낮추고 있었다. 처음 부임했을 때는 다양한 지식을 열정적으로 가르쳤지만, 그런 지식을 받아들이기 버거워하는 학생들을 보며 점차 수준을 낮추었다. 그 결과는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수많은 강의였다. 흥미로운 토론을 기대하며 들어갔던 학술 동아리는 기대했던 수준을 크게 밑돌았다. 이전에는 그저 놀라웠던 모습이 반복되자 짜증이 나기도 했다.


 가장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자신이 '안다'고 착각하는, 즉 자신의 무지함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었다. 한 학번 위의 선배들은 대부분 얕은 지식으로, 그리고 그 지식으로부터 추론한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후배를 가르쳤다. 자신이 안다고 착각하는 모습, 그리고 남은 모른다고 가정하는 모습이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던 공부량에 무관히 변함없는 성적이 주는 자괴감도 무지에 대한 거부감이 드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공포 무지에 대해 아직도 가지고 있는 감정은 공포다. 고학년 강의를 들으며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조사하고 발표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많은 학생이 발표와 질의응답에서 자신이 모른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생각을 주장했다. 교수님이나 내가 하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동문서답만을 반복하는 학생이 태반이었다. 정답이나 논리적인 주장을 펴는 학생은 없었고, 질문을 이해하고 '모른다'고 답할 수 있는 학생이 오히려 소수였다. 이런 모습은 충격과 거부감을 넘어 공포스러웠다. 내가 저런 모습을 보일까, 스스로 모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두려웠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 절망스럽고 화가 난 적은 있지만, 내가 모를 수 있다는 것이 무섭게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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