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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도 Oct 30. 2023

다리를 건넌다

관계에서 집중해야 할 것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다리나 육교를 건널 때 약간의 패닉이 오는 편인데, 멘탈이 많이 약해져 있으면 그 정도가 정말 심해지고 멘탈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그래도 난간에서 좀 떨어진 한가운데는 문제없이 건널 수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나의 멘탈 수준을 파악하는데 다리를 건너는 행위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번엔 한동안 문제없이 잘 건넜던 샛강다리를 정말 오랜만에, 거의 약 반년만에 건너러 온 것이었는데. 고개를 돌리거나 걸음 속도가 약간만 느려지기만 해도 마치 다리가 심하게 흔들리는 듯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멘탈이 다시 약해진 것이다.


  사실 샛강다리 쪽으로 오게 된 이유는 그저 노을 때문이었다. 하늘이 맑고 예쁘고 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 가려던 버스 정류장의 반대편으로 건너 가 그대로 이곳으로 왔다. 한 여름의 샛강 다리는 8차선 도로를 매섭게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무색하게 엄청난 크기의 매미 소리로 나를 압도했다. 서울 한복판에 아마존의 늪지대를 옮겨놓은 듯 무성한 녹음과 코를 아찔하게 할 정도의 풀 내음은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의 다리도 순간 넋을 잃고 멈춰 서게 한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면 다리가 심하게 요동치는 듯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그래도 이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 부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실수로 누군가 밀어 넘어트린데도 난간에 닿지 않을 곳에 겨우 서서 사진을 몇 장 찍어 본다. 뛰는 심장을 애써 괜찮다 아무 일도 없다 달래며 샛강다리가 선물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잠시 바라본다. 매미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본다. 


  그 순간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수많은 케이블들이 흔들거리는 게 보인다. 당연히 흔들리게 설계해 두었을 것을 알았음에도 나는 가만히 흔들리는 지탱줄들을 바라보다 지레 겁을 먹고 말았다. 순간 정신이 아찔하고 다리가 좌우로 흔들리듯 보이고 한걸음 한걸음 내가 내딛는 진동에 다리가 요동치는 듯 발끝이 울렁인다. 나는 걸음을 재촉해 이 다리를 빠져나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어느새 이 샛강다리가 주는 아름다운 풍경과 매미소리도 잊은 채였다. 


  그러던 다리 중간쯤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랑도 관계도 이런 다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어떤 충격에도 갑자기 끊어지거나 부서지는 일 없도록 일부러 흔들릴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 사람 간의 관계의 특성이 아닐까. 흔들리는 것이 당연한 관계 위에서, 그 흔들림이 건강한 것임을 받아들이고 걸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멈춰 서서 흔들리는 부위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당연히 누구라도 겁에 질리지 않을까.


  오늘 내가 다리를 지켜보며 서있는 동안 이 다리가 무너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연히 흔들리는 다리의 일부분만을 바라보다 아름다운 경치도 다리가 주는 선물 같은 순간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잊은 채 서둘러 그 다리를 빠져나왔다. 


  적당히 흔들림 있는 관계가 끊어지거나 부서지지 않는다. 흔들린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흔들리는 부분을 너무 유심히 바라볼 필요도 없다. 그것은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생각만을 불러올 뿐. 불안한 생각이 든다 할지라도 나는 내가 걸어갈 수 있는, 다리의 난간과 가깝지 않은, 관계의 그 한가운데만을 내 걸음속도에 맞춰 그대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이런 생각에 도달하니 내가 지레 겁먹고 달아난 수많은 관계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가 그 관계 위에서 바라본 것은 무엇이었으며 내가 가졌던 생각 중 실제 사실이었던 것은 얼만큼이었을지 생각하게 한다. 다음에 다시 이 다리를 건너러 왔을 땐 그땐 당연한 흔들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이 다리가 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한없이 즐길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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