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조각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도도 Nov 12. 2023

최선을 다했다

이 말에 숨지 않길

지난 사랑을 끝낸 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문득 최선을 다했다는 말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유독 나도 그도 만나는 동안

갈등의 상황에서 가장 많이 썼던 말.


그 말을 썼던 때에는

말 그대로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이제와 보니 그 말을 쓰던 모습들이

왠지 모르게 비겁하게 느껴진다.



나 정말 최선을 다했어.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어.

너만 최선을 다 한 게 아니야.

우린 서로 최선을 다했지만.

나도 정말 최선을 다해보려고 노력했어.



우리가 서로에게 주고받았던 최선이라는 말들.

하지만 그 최선이

서로에게 정말 필요한 최선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상대에게 필요하지 않았던

혹은 내가 하고 싶었던 최선을 다해놓고

상대와의 갈등상황에서

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무기로 혹시

이 말을 사용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 말을 듣는 순간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완벽히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말.


최선을 다했다는 사람에게

과연 누가 쉽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약속한 뒤로

최선을 다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두 자기 나름대로는

다들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던 의도와 다르게

상처를 주고받곤 했으니.


최선을 다했다는 건 어쩌면

상처받은 피해자가 있는상황에선

중요하지 않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최선이 과연 누구를 위한 최선이었는지

누구에게 필요했던 최선이었는지.

그 최선의 방향을 서로 논의해 본 적이 있었는지.


적어도 다음 사랑에선 이 말의 뒤에 숨지 않길.


매거진의 이전글 비 내린 밤 공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