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씨는 왜 글을 쓰고 싶어요?”
“좋아서요.”
“글쓰기가 왜 좋아요?”
M 작가가 물었다. 사실 M 작가는 이 질문을 그전에도 했었다.
3년 전에 글쓰기 강좌에서 M 작가를 만났다. 그가 쓴 책을 읽고 ‘와, 뭐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다 있지?’하고 생각했다. 몇 개월 뒤, M 작가가 이끄는 글쓰기 강좌가 있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고 망설임 없이 등록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가끔 만나서 맛있는 걸 먹고 걷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나는 그가 왜 글을 쓰려고 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대답했다. 처음엔 아마도 ‘치유’를 이유로 댔던 것 같다. 내가 쓴 진솔한 글이 내 오랜 우울을 위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두 번째엔 글쓰기를 통해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나 자신을 조금은 좋아할 수 있을 것도 같다고.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하다가 갑자기 약속을 잡고 망원동에서 만났다. 망원시장 안 ‘장모님 멸치국수’에서 비빔국수를 한 그릇씩 야무지게 먹고 '망원동 티라미수 본점'에서 티라미수 케이크와 커피도 해치웠다. 모처럼 햇살이 따스해서 한강까지 걷고는 지하철을 타려고 다시 망원시장을 통과하던 중이었다.
M 작가는 대학 졸업 후 10년 넘게 일간지 기자로 살다가 작가가 되었다. 그는 자주 ‘왜?’하고 물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글쓰기 강좌에서 다른 수강생의 글을 읽고 내가 울었을 때 M 작가가 말했다.
“자두 씨, 왜 울어요?”
내가 인사동에서 아톰 인형을 샀을 때는 “자두 씨는 아톰이 왜 좋아요?”하고 물었다. 내가 대답하면 그는 “아, 그렇구나.”하고 말했다. 진심으로 수긍하고 이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M 작가가 멋대로 넘겨짚거나 경험을 통해 판단하지 않고 당사자에게 확인하는 태도가 좋았다. 어쩌면 오랜 기자 생활로 인해 몸에 밴 습관인지도 몰랐다.
이날 망원시장에서 나는 “글을 쓰면 내 인생이 구체적으로 정리되는 것 같아요.”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며칠 전에 본 눈사람이 떠올랐다.
한파가 며칠째 계속되더니 눈이 한바탕 쏟아진 날이었다. 학교 급식소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산책을 하다 보니 우리 학교 옆 고등학교 학생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눈사람은 거의 완성단계라 눈코입만 붙이면 되었다. 배드민턴 라켓으로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어서 단단해 보였다. 생수병뚜껑과 나뭇가지를 가져다 붙이고 얼굴까지 완성한 눈사람은 썩 근사했다.
눈사람을 만들지 않았다면 눈은 그저 흩어지거나 녹아버렸을 테지. 녹아서 물이 되어 사라졌겠지.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흩어지거나 녹아 사라질 내 이야기를 단단하고 실체를 갖춘 것으로 바꿔 놓기 위해서 나에게는 글쓰기가 필요하다.
두고두고 읽히지 않아도 된다.
그저 눈이 녹는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