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두 Feb 08. 2023

'친구 끊기'를 눌렀다

나는 A를 답답해했다. 어려운 시험에는 잘도 통과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기본적인 일머리나 센스가 많이 부족했다. 물론 가끔 똑똑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A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곤 했다. 예를 들면, "전 애들한테 절대 라면 안 먹여요." 해놓고선 마트에서 스파게티 소스를 잔뜩 샀다며 자신의 준비성을 과시한다.

한 번은 초콜릿 음료를 여러 개 가져와서 나눠주기에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많아?" 했더니 중학생 아들이 앉은자리에서 세 팩씩 마시기 때문에 자긴 이걸 집에 쟁여두고 있다고 했다. 내가 "아니, 이걸 한 번에 세 팩씩?" 하며 놀라자 A는 "설탕물 덩어리인 과일주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죠."라며 항변하듯 말했다.

고등어는 기름을 두르고 구워야 하고 갈치는 기름 없이 구워야 한다며 다소 의아한 자신만의 살림  노하우를 전수해주려고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인정했고 조금은 연민했기 때문에 그럭저럭 잘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A의 말과 행동에 감탄하며 칭찬하기보다 '엥? 뭐야?' 하는 빈도가 높아졌고 그럴수록 A의 나를 향한 무례도 점점 선을 넘었다.

"난 O가 내 포스트에 댓글을 달면 참 뭐라 답을 달아야 할지 난감하더라."하고 내가 말하면 A가 "걔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하며 나를 공격하고 내가 "난 걔한테 댓글 안 달잖아?" 하면 그제서야 입을 다무는 식이었다.


작년 11월 초에 동생이 죽었다. 나는 그 사실을 A와 20년지기인 Y, 그리고 나를 포함한 네 명이 있는 단톡방에만 알렸다. A는 '마음 잘 추스르시길'이라고 썼을 뿐이다. A가 평소 "애사는 챙겨야죠." 야무지게 말하곤 했고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지방 장례식에도 조문을 가는 걸 알았던 터라 서운함이 몹시 컸다.


동생의 장례를 치른 2주 후, 우리 둘 다 아는 사람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다른 일이 있어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 전화로 위로와 양해를, 카카오페이로 부의를 전했다. 그런데 A는 내가 도리를 다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됐는지 굳이 카톡으로 '부의 전달해 드릴까요?'하고 물었다.


1월 내 생일에 A로부터 아무런 메시지를 받지 못했다. 바로 얼마 후 A의 생일에 나도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우리 둘 다 축하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 않은 것이다. 그뿐이다.

나는 페이스북에서 A를 검색해서 '친구 끊기'를 눌렀다. 이제 A가 내 행적의 기록을 보는 걸 원하지 않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A의 근황을 더이상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 수영대회에 심판으로 갔더니 A도 와 있었다. 심판 대기실로 사용된 장소는 원래 에어로빅실이라 심판들은 마룻바닥에 요가 매트를 깔고 앉았는데 A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게로 와서는 "잘 지내셨어요?" 했다. 사실 A와 나는 한 살 차이다. A는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머리는 왜 이렇게 했냐던가 언제 이렇게 했냐던가 뭐 그런 얘길 했지만 내 머리 모양은 작년 여름에 단발로 자른 뒤로 큰 변화가 없는 상태고 지난 11월에 우리가 만났을 때에도 이 상태였다. 나는 최대한 성의껏 대답을 했지만 말의 온도가 달라진 건 A도 느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2, 3년 전이었다면 나는 A의 태도에 금세 마음이 눅진하게 풀어져 나의 옹졸함을 자책하고 반성했을 거다. 원래 남의 업적이나 재능에 크게 감동하는 편이라 그간 A가 이뤄낸 것들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답답한 마음도 숨기지 못했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만 나는 감정을 지워내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둔다. 고마운 마음도 착착 쌓이지만 특히 분노와 짜증 같은 감정은 복리로 쌓여서 통장처럼 더 이상 기입할 공간이 없어지면 폐기를 해야 한다. 다만 폐기를 한다고 해서 지운 듯이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뒤끝이 길다고 해도 하는 수 없다. 내 의지가 아닌 것이다.


나이가 오십이 넘고 보니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인간관계는 이제 피곤하다. 매번 변명해야 하고 설명하게 만드는 사람은 피하게 된다. 반대로 내가 자꾸만 지적하게 되고 설명을 요구하게 되는 사람도 싫다. 좋은 관계를 깨지 않으려고, 미움받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나를 조금 더 예뻐해주고 힘을 쏟지 않아도 마음 편한 사람과 걱정 없는 시간을 보내며 나이 들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눈사람을 만드는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