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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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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두 May 13. 2023

송이야, 안녕

11시 30분까지 도착한다던 차는 35분이 되도록 오지 않았다. 전화를 다시 해봐야 하나 생각하는 참에 휴대폰이 진동했다.

“도착했습니다.”

“네? 안 보이는데요?”

“지금 여기가… 초등학교 후문인데요.”

“정문 앞에 있어요.”

내가 후문 쪽으로 이동해야 하나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초등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했으면 정문 앞으로 오는 게 당연한 거다. 3분쯤 지나서야 검은색 승용차가 도착했다. 운전석 창문이 조금 열리고 젊은 남자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나는 덩달아 ‘안녕하세요’ 답하고는 뒷좌석에 올라탔다. 안녕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건 서로 알고 있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차 안에는 진한 방향제 냄새가 떠다녔다. 나는 담요로 감싼 송이를 안고 어르듯이 다독였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우리 애기 아플 텐데’ 생각했지만, 송이는 이미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

“얼마나 걸리나요?”

내가 묻자 남자는 40분쯤 걸린다고 대답했다. 방향제 냄새 때문에 골치가 지끈거렸다. 남자는 앞만 보고 운전을 했다. 애기 이름이 뭔지, 얼마나 예뻤는지, 건강했는지, 지금 몇 살인지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표정을 하고선 우리 송이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 남자에게 화가 났다. 나는 송이의 감지도 못한 눈을 들여다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가끔 숨을 쉬기가 힘들어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들어 송이는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다. 한 방향으로 빙빙 돌며 아크로바틱 한 자세로 방바닥에 몸을 패대기치는가 하면 좁은 틈새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자전거 바퀴에 몸이 끼여있거나 책꽂이와 서랍장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은 채 앉지도 서지도 못한 자세로 낑낑대고 있기도 했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주방의 통나무 선반장 뒤쪽에 갇힌 채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걸 퇴근해서 발견하기도 했다. 뒷다리가 거의 마비가 된 것처럼 보여 그렇게 이동할 거라고 경계하지 못한 탓이었다. 책과 이불뿐만 아니라 멀티탭에도 오줌을 눠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결국 방 안에 볼풀(ball pool)을 설치했다. 출근하기 전에 방안에 가득 차는 볼풀을 조심조심 내려놓았다. 방수패드와 요를 깔아놓고 이불을 접어 푹신하게 만든 다음 배변패드를 깔고 송이를 눕혔다. 처음엔 배변패드가 젖으면 송이가 몸을 움직여 이불 밖으로 내려와 있었는데 갈수록 아침에 눕혀둔 그대로 자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따뜻한 물에 씻겨서 안고 벽에 기대어 있으면 송이는 내 쇄골 아래 머리를 대고 잠이 들었다. 가끔은 코도 골았다. 송이는 점점 쪼그라들었다. 툭툭 불거진 등뼈 주위는 어느새 털이 다 빠져서 허옇게 살이 드러났다. 자주 목이 뒤로 꺾였고 그때마다 송이는 비명을 질렀다. ‘사경 증상’이라고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동물병원에 데려가도 진통제를 처방받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송이가 목이 꺾였어요, 보호자님?”

“송이가 다쳤어요, 보호자님?”

내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버릇이 있는 젊은 의사는 말했다.

“송이가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보호자님?”

나는 송이가 들을까 봐 꼭 껴안았다.     


하필 부활절이었다. 주말 동안 송이 옆에 있고 싶었지만, 서울시 소년체전 수영대회에서 아나운서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큰 대회니까’라며 아나운서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어쩐지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쁘게 수락을 한 것이다.

일요일 아침, 송이는 며칠째 눈도 감지 못한 채로 누워만 있었다. 작은 몸이 조금씩 경련을 했다. 어쩌면 송이가 더 버티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새 이불을 깔아주고 주사기로 잇새에 물을 넣어 주었다. 힘겹게 물을 삼키는 송이에게 말했다.

“송이야, 많이 힘들면 떠나도 돼.”

그러다가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떠나는 건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송이야, 엄마가 금방 올게. 기다려줄래?”     

교육감배수영대회, 소년체전 수영대회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장학사님이 같이 사는 고양이 사진을 보여줬다. 나는 우리 강아지가 곧 떠날 것 같다며 울음을 삼켰다.

“오늘이 부활절이라는데. 오늘 우리 애기 죽으면 안 되는데….”

12시가 조금 넘어서 대회가 끝났다. 나는 지급된 도시락도 두고 집으로 왔다.    

 

몇 개월 전부터 집에 돌아올 때마다 문 앞에서 잔뜩 긴장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떠올랐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갈 때면 어쩐지 살금살금 걷게 되었다.

송이는 얼핏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덮어준 담요를 들춰보니 배가 작게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 기다려줬어? 고마워.”

안고 나가서 햇볕을 쬐게 해주고 싶었지만, 안아 올리니 송이가 비명을 질렀다.

얼른 도로 내려놓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담요는 얇았지만, 들출 때마다 송이가 움찔거렸다.

집 앞에서 사 온 김밥 한 줄을 먹고 송이 옆에 누웠다. 며칠 잠을 설쳐서인지 금세 잠이 들었다. 꿈에서 숲이며 폐공장이며 계곡을 헤매고 다니다가 깨어나니 송이는 여전히 잠에 빠져있었는데 누군가 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귀가 머리 위로 쫑긋 세워져 있었다.

‘귀가 왜 이러지?’

송이는 이제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어디선가 저녁밥 준비를 하는지 김치찌개 끓이는 냄새가 풍겼다. 송이가 ‘트트트’하는 소리를 냈다. 혀가 경련하는 것 같았다. 눈에서는 노란 고름 같은 게 배어 나왔다. 눈가를 닦아주고 눈을 들여다보았다. 눈 한가운데가 동그랗게 나무껍질 색깔로 변해 있었다. 목이 뒤로 꺾여서 목 뒤와 몸을 주물렀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송이 배가 크게 부풀었다. 입이 조금 벌어지는가 싶더니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한숨 소리 같기도 한 것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송이야! 송이야!”

급하게 송이 가슴을 눌렀다. 아직 떠난 게 아니라고 나를 속여봤자 송이의 몸은 빠르게 식었다.     


차창 밖으로 ‘광명 KTX’가 적힌 이정표가 보였다.

‘곧 도착하겠군.’

하고 생각했지만 차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아까 통화한 남자는 장례식장이 광명 KTX 근처라고 했다. 불빛도 없는 울퉁불퉁한 길을 얼마쯤 더 달린 후 속도가 늦춰졌을 때 간판에서 ‘안산동’이라는 글씨를 발견했다.     

“다 왔어요.”

남자가 차를 세우고 말했다.

“여기가 어디예요? 행정구역상으로요.”

내가 물었다.

“안산이요.”


차에서 내리니 창고 같은 컨테이너 건물에 ‘그리움’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검정 옷을 입고 검은 테 안경을 쓴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통화한 팀장이라는 사람 같았다.

그는 수레를 끌고 상담실로 들어왔다. 쇠로 된 수레 위 나무판에는 여러 색깔의 털이 붙어 있었다.

“여기 내려놓으시고요. 이거 작성해 주세요.”

송이를 담요째로 수레 위에 내려놓고 팀장이 내민 종이를 받았다. 내 이름, 주소, 전화번호, 반려동물 이름, 무게, 나이를 적는 난이 있었다. 이런 건 어떤 용도일까?

다 적고 나니 그가 파일 하나를 가져와서 열었다. 얼핏 메뉴판 같아 보이는 종이에 가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관, 수의, 유골함을 선택하라고 했다. 고급형으로 할 건지, 보급형으로 할 건지.

동물병원에 화장을 맡기면 사체들을 모아서 집단으로 화장한다고 해서 장례식장을 찾아온 건데. 사람들의 슬픔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뾰족해졌다. 그러면서도 그 와중에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는 내가 초라해서 슬펐다.

그는 나를 추모실로 안내했다. 아까 전송한 송이 사진이 국화꽃으로 장식된 벽 한가운데 걸려 있었다. 잠시 후 8만 원짜리 보급형 수의를 입은 송이가 나무관에 담겨 옮겨져 왔다. 팀장이 소독을 했다고 말했지만, 송이의 모습은 아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감지 못한 눈, 벌어진 입, 윤기 없이 듬성듬성한 털. 마지막으로 입힌 초라한 수의가 지금껏 송이에게 사준 옷 중에서 제일 비싼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송이가 재로 변하는 동안, 메모지가 빼곡히 붙은 대기실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입구 쪽이 소란스럽더니 가족처럼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팀장이 끌고 가는 수레에는 화장지인지 솜인지를 입에 문 채 숨이 끊어진 강아지가 누워있었고 나이 든 여자가 한 명, 10대로 보이는 남자애 둘에 여자애 한 명. 그들은 마실이라도 나온 듯이 얘기를 나누며 간혹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래도 17년을 살았으니 오래 산 거지.”

남자애의 말이 들렸다.

대학 기숙사에 있으면서 주말마다 집에 오는 아들에게, 차비 아까우니 이번 주는 오지 말라고 한 덕분에 나는 혼자였다. 하지만 아들이 같이 있다고 한들, 막막함과 괴로움이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수고 많이 했어요.”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질문인지 인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말투로 남자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차에서 내려 시계를 봤다. 2시를 막 지난 시간이었다.

송이의 유골함을 안고 문을 열었다. 집을 나서기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송이가 존재하던 어제, 존재하지 않는 오늘.

씻고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송이가 이 방에 잠들어 있었다. 바로 옆에.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인지 모르겠고 어쩌면 일곱 살일 수도 있다는 송이를 데려온 지 14년이 지났다. 송이는 이 집에서 긴 시간 나를 기다렸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까무룩 잠이 드는가 싶다가도 멱살 잡힌 듯 잠에서 끌려 나왔다. 가슴이 뻐근하게 아팠다. 뒤척이다 보니 창문이 희뿌옇게 밝아왔다.

송이가 없는 하루가 속절없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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