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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두 May 03. 2023

송이가 사라졌다

퇴근 후에 저녁 약속이 있었다. 2개월 만이었다. 송이가 혼자 있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매번 내 사정 때문에 미뤄왔던 터라 큰맘 먹고 식사 약속을 잡았다. 인사동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덕분에 평소보다 3시간 정도 늦게 집에 도착했다.


언젠가부터 문을 열 때마다 조마조마한 심정이 된다. 집에 막 들어섰을 때 송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방에서 잠이 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송이가 보이지 않았다.

“송이야, 송이야.”

송이가 듣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큰소리로 송이를 불렀다.   

   

예전에도 송이가 사라진 적이 있다.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족발을 사서 집에 왔는데 송이가 없었다. 곧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30분이 지나도록 송이를 찾지 못했다. 두렵고 어안이 벙벙한 채로 노트북을 켰다. 중요한 라이브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송이는 분명히 집 안에 있을 거였다. 냄새가 나면 반응하겠지 싶어서 족발 포장을 열어두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강의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10분쯤 지났을까? ‘끼잉’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행거 아래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까도 뒤져봤지만 송이를 발견하지 못했었다. 소리가 나는 곳은 벤치코트였다. 송이는 바닥까지 닿아있는 벤치코트 안쪽에서 잠이 들었던가 보다. 자다 깨서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자 소리를 냈을 거다. 맛있는 냄새가 나서 잠이 깼는지도 모르겠다.      


행거 아래부터 뒤졌다. 송이는 없었다. 욕실, 방문 뒤, 화장대 아래, 싱크대 아래까지 들여다봤지만 송이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문은 잠겨있었다. 송이는 눈도 보이지 않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5kg도 되지 않는 송이가 숨기에도 우리집은 좁아터졌다.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게 아니라면 이렇게 찾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러면 송이는 집안에 없는 건가? 누군가 송이를 납치한 건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이 몰려왔다.

대학 기숙사에 있는 아들은 다음날 오기로 되어 있었다. 걱정시키고 싶진 않았지만 결국 아들에게 연락했다.

‘너 집에 온 거 아니지?’

‘응. 내일 가지. 왜?’

‘송이가 없어졌어. 아휴, 더 찾아봐야지. 찾으면 연락할게. 쉬어라.’     


자정이 지났다. 송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집안은 일부러 소리를 지운 것처럼 고요했다. 울고 싶었다.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서 공연히 옷장을 뒤집어 옷 정리를 했다.

1시가 가까워졌을 때 희미하게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게 들렸다. 작지만 분명 집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어디야? 송이야! 어디야?”

송이가 대답이라도 할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잘못 들은 건가, 생각할 즈음 다시 한번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다. 송이를 찾아낸 곳은 주방 구석에 있는 선반장 뒤였다. 전자레인지, 오븐을 수납한 3단 선반장은 통나무를 두껍게 잘라 고가구처럼 만든 것이다. 그 뒤로는 또 다른 선반장이 벽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선반장과 선반장 사이, 두툼한 통나무로 가려진 좁디좁은 틈에 송이가 꼼짝 못 하고 갇혀 있었다. 틈을 벌려서야 겨우 구출한 송이는 배 아래로 온통 오줌에 젖어 있었다.      

따뜻한 물로 씻기고 드라이어로 몸을 말렸다. 잠들지 못한 아들이 연락을 했다.

‘아직 못 찾았어?’

‘방금 찾았어.’

‘다행이네.’     

사료를 주니 허겁지겁 먹는 송이의 등에는 내 검지보다 크게 움푹 패인 자국이 생겨 있었다.

‘아휴, 거길 어떻게 들어간 거야?’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눈물이 났다.

     

송이를 보호할 장치가 필요했다. 반려견 펜스를 찾아봤지만 날로 쪼그라드는 송이는 그 틈새에 몸이 끼일 것 같았다. 틈이 없고 딱딱하지 않아야 했다. 궁리 끝에 찾아낸 것이 볼풀이었다. 아기들의 촉감놀이를 위해 볼을 채워 이용하는 볼풀은 마침 높이도 소재도 적당했다.

아침마다 출근 준비가 끝나면 볼풀을 세팅했다. 바닥에 방수 패드를 깔고 그 위에 담요를 깔았다. 푹신한 이불을 네 겹으로 접어 송이 침대를 만들고 배변 패드를 깔고 송이를 눕혔다.     

 

근무 중에 불안이 엄습할 때, 송이는 볼풀 안에 있으니 괜찮다고 위안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볼풀이 필요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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