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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두 Apr 21. 2023

나는 송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2)

퇴근 후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여는데 송이가 낑낑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방을 내던지고 부리나케 뛰어 들어가 보니 송이가 창가에 기대어 둔 자전거 앞바큇살에 허리가 낀 채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똥을 한 무더기 눠서 배 아래로 온통 똥범벅이었다. 뒷걸음질 치면 빠져나올 수 있었겠지만 인지기능이 없어진 뒤로 송이는 오로지 앞으로만, 오른쪽으로만 움직였다. 잘 타지도 않고 부피도 큰 자전거를 중고로 팔든지 해서 치우라고 아들에게 몇 번 얘기했었다.     


따뜻한 물을 받아서 송이를 씻기는 동안 송이는 몸을 맡긴 채 잠이 들었다. 온몸을 구석구석 닦고 헤어드라이어로 말리는 중에도 얕게 코를 골며 잠에 빠져 있는 송이를 보며 얼마나 오래 버둥거렸을까 생각하니 안쓰럽고 슬펐다. 그러면서도 요 며칠 똥을 못 누더니 다 쏟아내서 시원하겠다고도 생각했다. 미련스럽게도.


물과 사료를 코앞에 대주니 송이는 물만 조금 마시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계속 자고 싶은 것 같았으므로 책을 읽으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송이가 불에 덴 듯이 “꺄앙”하고 비명을 질렀다. 담요 위에 깔아 둔 배변패드에 핏물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사실 2주 전에도 송이 변에 핏기가 있는 것 같다고 아들이 병원에 데려갔었다. 혈액검사를 하고 약을 처방받았다. 5일간 약을 먹였고 다 나았다고 생각했다. 또 장염인가? 게다가 이번엔 송이 항문 주위가 쓸린 듯이 빨갛게 되어 있었다. 씻길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송이는 움찔거리며 비명을 질러댔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상처 부위를 시원하게 해 주면 통증이 덜하지 않을까 해서 찬물로 송이의 똥 묻은 항문을 헹궜다. 그리고 헤어드라이어의 약한 바람으로 말려주고 최대한 아무것에도 닿지 않도록 자세를 바로잡았다. 송이가 계속 맥을 못 추는 걸 보고 ‘이게 마지막인가?’하고 생각했다. 강아지는 장염 때문에 죽기도 한다던데.

아들에게 송이가 죽을 것 같다고 카톡을 보냈더니 아들이 전화를 했다. 내가 송이 상태를 얘기하는 동안 아들은 “아이고, 아이고.”를 반복했다. 말을 뱉고 보니 나도 겁이 덜컥 났다.     


당장 내일 송이를 혼자 두고 출근해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자다 깨다 하며 송이를 지켜봤다. 그러다가 근처에 24시간 동물병원이 생겼다고 들은 게 떠올랐다. 휴대폰으로 검색해 보니 병원은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래도 정말 24시간 내내 진료를 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새벽 3시, 전화를 걸었다. 바로 받지 않으면 끊을 생각이었는데 금세 통화연결이 됐다. 6시쯤 가도 되겠냐고 하니 가능하단다. 다만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가 정규 진료시간이고 그 외의 시간은 야간진료에 해당되어 특진비 4만 4천 원이 추가된다고 했다. 그거야 별수 없지.      

조금 안심이 되어 눈을 붙였다. 송이가 가끔 소리를 질러서 깊이 잠들 수는 없었다.


5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출근준비를 했다. 송이에게 기저귀를 채워서 담요로 감싸 안았다. 송이는 그제야 편안한 자세를 찾은 듯이 잠에 빠졌다. 사방이 어둑어둑한 게 꼭 내 마음 같았다. 6시가 되지 않은 시간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이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지하철역을 지나자 한 건물의 좁은 계단으로 남자들이 담배를 물고 내려왔다. 올려다보니 ‘인력’, ‘파출’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병원에 도착해서 카운터에 있는 벨을 누르니 간호사가 나왔다.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이름을 말하고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고 하니 간호사가 말했다.

“몇 년 키우셨는데요?”

“데려온 지 14년 됐어요.”

“그럼 열네 살로 적을게요.”

“아뇨, 처음 데려왔을 때 이미 다섯, 여섯, 일곱 살이라고 했거든요.”

“네? 그렇게 나이가 많을 것 같지 않은데요?”

앙상하고 등도 굽었지만 얼굴만 보면 송이가 제 나이로는 안 보이는 건가 싶어 주책맞게도 조금 기뻤다.


접수를 마치고 잠시 대기하니 간호사가 진료실로 안내했다. 의사는 젊은 여자였는데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았다.

“송이가 똥을 눴어요, 보호자님?”

“항문 주변이 빨갛게 됐어요, 보호자님?”     

 2주 전에 받은 혈액 검사지를 보여주니 염증 수치가 많이 높은 편은 아니라고 했다. 혈액검사를 또 하는 건 내키지 않는다고 했더니 분변검사만이라도 하겠다고 했다.

대기실에 앉아 있으려니 송이의 ‘까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불안해서 대기실을 서성였다. 한참 만에 의사가 축 늘어진 송이를 안고 나왔다. 세균성 장염이고 그것 때문에 항문 주변도 2차 감염이 된 거라고. 나이가 많아서 다른 검사를 더 하기엔 조심스럽지만 심장병도 의심된다고 했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장염이 그리 심하지는 않다는 거였다. 약을 먹이면 곧 나아질 거고 항문도 소독액을 뿌리고 연고를 바르면 금세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이렇게 다 죽어가는데 심하지 않다고?’

의심이 되면서도 한편 마음이 놓였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루만 송이를 입원시키겠다고 하니 의사가 조금 놀라며 말했다.

“아니, 그 정도로 상태가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아픈 송이를 혼자 눕혀두고 출근할 수는 없었다. 오늘 집에 사람이 없고 송이가 아파하니 하루만 돌봐달라고 하니 의사는 알겠다고, 그럼 시간 맞춰 사료와 약을 먹이고 돌봐주겠다고 했다.      


퇴근 후 병원에 갔더니 송이는 여전히 축 늘어진 채 잠들어 있었다.

“송이는 계속 잠만 잤어요. 저희가 아까 건사료를 물에 개서 먹였고요. 약도 한 번 먹였습니다.”

습식사료를 먹이는 게 좋겠다고 해서 일주일 치 네 캔을 구입했다. 집에 돌아오니 기진맥진했다. 송이는 이불 위에 내려놓으니 잠에서 깼다. 습식사료를 덜어 물에 개어서 앞에 놓아주니 그릇에 얼굴을 박고 정신없이 먹었다. 뒷다리는 길게 늘어뜨린 채였다. 사료 냄새가 좀 역했지만 송이가 잘 먹으니 또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것도 같았다. 사료를 다 먹는 데 30분쯤 걸린 것 같았다. 수건을 적셔서 얼굴을 닦아주었다. 30분을 기다렸다가 약을 먹였다. 송이는 계속 잠을 잤다.


송이는 알에서 막 나온 새끼 새처럼 보였다. 뼈가 툭툭 튀어나온 등은 털이 빠져서 허옇게 살이 드러났고 배는 한 손으로 잡힐 듯이 홀쭉했다.

‘우리 애기가 왜 이렇게 쪼그라들었지?’

착잡해졌다.      

사료를 먹이기 30분 전에 지사제를 먹이고 사료를 다 먹고 나면 30분을 기다렸다가 장염 약을 먹였다. 항문 주위는 소독액을 뿌려 말리고 연고를 발라주니 빠르게 나았다.

5일쯤 지났을 때, 퇴근해서 문을 여니 송이가 방문 앞까지 걸어 나와 있었다. 질질 끌던 뒷다리로 바닥을 짚고 서 있었다.      

‘이제 됐다!’

송이가 다시 건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이때는 그저 기뻤다.

곧 닥쳐올 일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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