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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러스씨 Mar 06. 2021

[6] 취향을 가진다는 것은 배제한다는 것

⏤ SNS광고 시대에서 취향의 중요성에 대해서




   내가 꼬인 탓도 있지만,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뭐든 좋다고 하는 사람을 기피한다. 사실 그렇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성인(聖人)이거나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라고 본다. 그래서인지 '긍정적으로 생각해', '긍정적인 사람이 좋아' 하는 말을 입버릇처럼 올리는 사람 역시 별로 안 좋아한다. 그걸 내 번역기로 돌리면 "난 취향 없는 예스맨이 좋아!" 하는 얘기로 들린다. 정말, 취향이 없는 사람들만이 모든 사람을 좋아하고 매사에 긍정적이다. (지금은 지체장애를 희화화한다는 의도로 점점 없어지는 추세이지만, 과거에 바보들이 '머리에 꽃 꽂고 다니는 사람'으로 재현되었던 것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관용적인 표현으로 "머릿속이 죄 꽃밭이네"라고도 한다.) 유튜브의 AI 추천 알고리즘이 앞으로 우리가 무얼 해야 하는지 더 쉽게 알려주는 시대에서는 자기 취향을 가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취향을 가진 인간은 좋든 싫든 예스맨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닭장 속에 갇혀서 뒤룩뒤룩 살이 쪄서 잡아먹히는 디지털 치킨이 되거나, 취향을 가진 삐딱이가 되어야 한다. 취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한데 다른 사람이 내게 함부로 자기 영향력을 드리우려고 할 때(예컨대 가스라이팅 따위), 자신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패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전문가가 되어서 자기 스피커를 키우기 위함도 아니고 뭣도 모르는 사람에게 아는 척 뻐기며 어쭙잖게 먹물 행세하기 위함도 아니고 무슨 개똥 같은 '뇌섹' 흉내를 내기 위함도 아니다. 타인이 전문가의 의견을 가장한 채, 또는 대세를 위시하며 함부로 내게 불합리한 동조압력을 행사하려고 할 때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주장을 개진하기 위함이다. 그걸 분별력이라고도 한다. 자기 분야에 대한 취향과 조예로 무장한 사람은 내적으로 심지가 굳게 서고, 이때 자신에게 향하는 말들의 옥석을 판별할 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취향이야말로 페이크 뉴스가 모든 것을 발가벗기는 시대에서 우리가 입어야 할 의상이다.


   김영하 작가는 ‘왜 책을 읽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으로 "타인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갖기 위해서"라고 말한 적 있다. 비슷한 맥락이다. 취향이 없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혹은 누군가가 짠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목록에만 의지한다. '인플루언서'라는 요상한 직함 단 사람들이 출처 분명의 광고비 받고 전파하는 추천 목록에 기대는 것이다. 누가 손쉽게 정리해서 주는 지식을 병든 닭처럼 까딱까딱 받아먹으며 비대한 자의식의 몸뚱이만 부풀린다. 그게 오래되면 별 의식 없이 '누가 리뷰한 책' '누가 쓴 화장품' '누가 신었던 신발' '누가 입었던 옷'을 따라 입고 욕망하면서도 그게 자기가 진짜 바라마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과장해서 말하면, 그건 자신을 타인의 취향이 모인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사유하는 것은 배제하는 것"이라고 한 철학자도 말했듯이, 사유하는 사람은 취향을 가지게 되고 취향을 가진 사람은 분별하고 배제할 줄 안다. 이 말은 터무니없이 간단하고 명료해서 헛웃음이 나오는 말인데, '포지티브 마인드!'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라고 습관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한사코 부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예를 들자. 멜론차트 100위는 여차저차한 이유는 차치하고서라도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음악 백 곡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어떤 취향과 사람이 읽힌다고 보시는지. 베스트셀러 책 순위의 목록에서 어떤 연결고리가 읽힐까? 어떤 시대적인 코드는 읽힐지 몰라도 취향을 가진, 피와 뼈와 살을 가진 한 사람은 거기 없다. 취향이 없는 사람은 멜론 차트 100위의 목록을 보는 것처럼 공허하다. 추천 목록에 쓰인 물품으로 자신을 휘감은 사람은 완벽히 보편을 끌어안았다는 점에서 역 앞의 쓰레기통이 될 뿐이다. 알다시피, 모든 사람에게 좋은 배우자는 같이 사는 배우자의 결혼 생활을 생지옥으로 만든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함으로써 가장 가까이 있고 먼저 사랑을 주어야 할 배우자를 악마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건 사실 착한 것도 아니다. 걍 이기적인 것이다. 예스맨들은 모든 것을 긍정(YES)함으로써 자기 인생을 전면 부정(NO)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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