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운 너 Oct 11. 2022

뒤돌아 보지말고 걸어가리

영화 <Ida>에 부쳐


뒤돌아 보지말고 걸어가리.



누구나 이런 상황을 마주칠 수 있다. 오로지 앞만 보고 걸어가야만 하는 순간.


(아비정전에서 아비가 어머니를 찾아가지만, 만나지 못하고 걸어 나오던 장면을 나는 기억한다.  

그는 평범한 뒷모습으로 걸어 나가고 있지만, 그런 애달픔도 없을 것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야 하는 고독감이라니.)


영화 <Ida>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다Ida는 뒤를 보지 않고 걸어간다.

그녀의 얼굴 위로 흩어지는 뒤섞인 감정들. 이모의 죽음과 홀로 남겨진 자신과 동행을 말하는 리스 Lis와 그와의 지난밤.


Ida가 겪어내야 하는 것은 길고 지루한 겨울만큼이나 그 겨우내 내리는 눈발만큼이나 도처에 있다.

그래서인지 Ida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있지만, 그녀의 쓸쓸한 뒷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야 하는 고독감은 홀로 걷는 Ida를 감싸고 있다.



역사에 대해 말하는 것이 마치 거대한 담론을 논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개개인의 삶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를 어루만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대인이라는 Ida의 존재틀은 ‘나치의 학살’을 인종청소라는 이름 아래서 역사적 만행이라고 부르기 이전에 그의 가족사를 관통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것에 관련된 모든 것은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에 (그리고 아직까지도) 익숙해지기에는 너무 선명하다.



만난 지 이틀, 사흘 된 이모인 완다 Wanda가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Ida가 보이는 행동들. 이모의 원피스를 입는다거나 그녀의 구두를 신고, 마치 이모처럼 담배를 피우는 것은 어떤 외로움이면서, 외로움을 다스리는 존재의 방식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Ida가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이 마치 완다의 모습과 겹쳐 보일 때 나는 심장이 두근댔다. 원하지 않아도 닮아가는 모습. 결국 Ida도 어느 순간 완다가 걸어간 길을 따라 창밖으로 뛰어내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두 사람의 닮은 모습에서 겹쳐졌기 때문이다.



영화의 말미에 리스 Lis가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Ida의 눈.

해결할 수 없는 과거의 불행과 해결할 수 없는 과거를 안고 자살한 이모가 있는 현재, 그 어느 곳에서도 설 자리가 없는 Ida는 감히 생각하지 않는다, 고 말한다.



Ida는 단지 걸어 나간다.


삶의 관성대로 살아가듯이 Ida가 다시 수도원으로 향하는 장면은 완다가 애써 버터를 긁어내어 빵에 바르거나 더운 물을 받아 욕조 안에 앉아 있는 장면처럼, 죽음을 앞두었던 그 모습처럼 맹렬하다.


결국 이모인 완다가 Ida와의 만남을 보류했던 이유는 지극히 극명해지고, 어쩌면 그들의 만남이 결국 완다의 죽음으로 맺어진다는 죄책감이 그녀를 걷도록 만드는 건 아닐까.


습하고 차가운 공기와 황량한 겨울 들판과 시골길의 롱테이크샷은 동유럽 영화의 상징처럼 익숙하지만, 여전히 그윽하고 충분히 쓸쓸하다.  




사진 출처:

https://jff.org.il/en/movie/17849

https://onset.shotonwhat.com/gallery/ida-2013/

작가의 이전글 부재하는 아빠에게 쓰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