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in soleil/ Delitto in pieno sole 1960
헛된 항해의 끝을 보여주는 영화, <태양은 가득히>
알랭드롱, 이라는 이름의 배우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다. 지금껏 이름만 알고 있었고, 그 사람이 엄청난 미남이라는 한 가지 정보만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 라는 2000년대의 리메이크작을 먼저 본 나는 이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리플리> 원작이 이 영화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연히 원작을 만나는 순간의 짜릿함이라니.
60년대 작품이 주는 긴장감은 클래식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거울'이라는 소재로 주는 긴장을 바탕으로 선망하는 대상을 모사하고 모방하지만 모조품밖에 되지 못하는 한 인간의 병든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 속의 등장하는 거울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 이런 이해를 불러왔다.
영화 초반에 톰 리플리가 필립을 재연할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그의 신발 신은 모습을 비추는 거울.
보트의 천창으로 엿보이는 두 사람의 애정행위를 엿보는 리플리의 모습. 열린 환기창의 틈으로 조각난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카메라의 앵글이자 관객의 시선이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수직적 관점이라서 섬뜩한 상황의 긴장감을 완성한다. 게다가 바다 한가운데의 선상이라니.
모두가 잠든 시간, 리플리가 귀걸이를 몰래 외투 주머니에 넣은 씬을 보여주는 거울.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범인을 좇는 경찰이 리플리가 머무는 호텔에 와서 취조 겸 대화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우연히 열렸다가 형사의 손에 의해 닫히는 옷장 거울 속의 그의 모습. 무심하게 비스듬하게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리플리가 억누르고 있는 긴장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이입되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 거울 역시 세로형인데, 옷장이 열린 각도가 비스듬해서 (보트 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바다 위의 한 장면인 것처럼) 거울 속에 반사된 균형을 잃은 리플리의 모습이 불안정한 감정을 배가시킨다.
리플리증후군이라는 병명이 말해주듯이 정상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낯선 이방인의 범죄행각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 The Housemaid (1960)> 혹은 2010년에 임상수 감독이 리메이크한 동명의 작품 <하녀>의 욕망, 그리고 <태양은 가득히>와 마찬가지로 바다와 선상이라는 배경에서 전개되는 로만 폴란스티의 작품, <Knife in the Water(Nóż w wodzie) 물속의 칼 (1962>. 이 영화 속의 안드레이의 욕망을 떠오르게 한다. 흥미롭게도 그 원작품들이 모두 6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필립의 여자친구의 이름을 딴 Marge라는 이름의 배가 실려오고 수면에 울려 퍼지는 Marge의 비명소리.
시각화한 연기로 보여주지 않아도 청각적 효과를 통해 추측 속에서 선명해지는 고통과 분노의 표현이 이 원작의 가치를 보여준다. 멧 데이먼, 주드 로, 기넬스 펠트로가 출연한 리메이크작,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에는 미망인의 고통이 여배우의 표정 연기 속에서 도드라지게 보였다면 그 영화는 리플리와 Marge가 욕망에 못 이겨 사랑을 나누고 결말이자 절정인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시작이나 끝이고 이 영화의 배경인 바다에 머물면서 인물의 표정이 감추어져 오히려 관객의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킨다.
보는 내내 베네치아의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이 걸작은 모네의 작품을 영상에서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감독의 의도가 읽히기도 했다. 60년대 영화 부흥기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프랑스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은 이 영화는
바다와 태양,
부와 가난
욕망과 의심, 질투와 소유욕. 정신병과 대담함. 방종과 익명성.
이런 것들이 뒤섞여 탐하는 자의 욕망을 깨어진 거울 속의 조각들 사이에 흩어놓는다.
르네 클레망(René Clément) 감독은 1960년대 이탈리아의 여름, 타는 듯한 태양의 열기와 눈부신 태양 빛의 산란 그리고 곳곳에 장치시킨 '거울'이라는 중요한 소재를 매개로 리플리의 병든 욕망을 이렇게 완성해 냈다.
사진 출처:
https://www.ischia.it/it/delitto-in-pieno-sole
https://www.imdb.com/title/tt0054189/?ref_=mv_close
https://www.criterionchannel.com/ripley-films/season:1/videos/purple-n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