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주머니를 여러 번 더듬어 땀에 절여 눅눅해진 담뱃갑을 찾아 몇 안 남은 궐련들이 무사한지 확인한 후, 그중 제일 위태로워 보이는 하나를 꺼내 물었다. 어제 먹은 알코올로 말라버린 입 안의 수분과 한여름의 후덥지근하고 무거운 공기 때문에 담배보다도 물 한 모금이 더 절실했지만, 근무 시작 전 흡연은 J의 습관적인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자 건조할 대로 건조한 J의 목구멍은 매운 연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일순간 목젖을 껄떡거리더니 곧 발작적으로 기침과 연기를 볼썽사납게 뱉어냈다. 뼛조각이 목에 걸린 늙은 코요테처럼 목을 쭉 내밀고 켁켁 거리며 눈물을 흘리다가, 별안간 꺽 하고 발작을 마무리라도 하듯 나온 간결한 트림에서는 어제 마신 레드 와인의 농축된 포도 내음이 났다.
'혹시라도 기관지에 문제가 생겨 손바닥에 피가 묻어 나온다면 그것을 빌미로 오늘 하루 병가를 내리라. 그리고 어제 먹다 남은 싸구려 레드 와인을 게걸스레 마시며 고단한 근로의 늪에서 발버둥 치는 미래의 나로부터 멀어져 가는 희열을 느낄 수 있을 테다.' J는 갑작스레 떠오른 착안에 퍽 거창한 기대를 하며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를 애써 손바닥으로 집중시켜 보았다. 그러나 그의 손바닥에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침이 뒤범벅되어 있었고 황토색 애벌레 같은 흐물흐물한 가래 몇 점이 그를 조롱하듯 꿈틀대는 것 같았다.
'기대란 야바위 꾼의 얄팍한 속임수와도 같아서 열어보면 결국 말라비틀어진 허탈감뿐이더군.' 황토색 애벌레가 꿈틀거리며 말했다. J는 언젠가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물담배를 피우던 조악한 애벌레를 떠올렸다.
'아아, 나도 물론 잘 알지.' 자신을 질책하며 바지에 손바닥을 문질러 애벌레를 으깨 버렸다.
몽상의 피조물이 남긴 번민은 갈증과 좌절을 더 심화시켰지만 J는 의식을 마무리 짓기 위해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담배를 꼬나물었다. 담배 연기는 순풍조차 없는 숨 막히는 무더운 날씨에 폐병 환자가 된다는 자조적인 기대처럼 눈앞에서 금방 옅어졌다.
J는 반 정도 남은 궐련의 심지를 길고 두꺼운 손톱으로 잘라내고 삐져나오려는 연초를 꾹꾹 밀어 넣어 조심스럽게 담뱃갑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분수처럼 쏟아지는 땀의 불가침 영역을 찾아 자신의 몸을 둔한 눈동자로 탐색해 보았지만 어디에도 담뱃갑이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그의 온몸은 질척한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할 수 없이 볕에 노출되어있는 왼쪽 가슴팍의 조끼 주머니에 담뱃갑을 넣고 통풍이 될 수 있게 지퍼는 잠그지 않고 열어두었다. J는 진심으로 담뱃갑의 궐련들이(반토막의 궐련 역시)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