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아있다. 살아서 악다구니를 치고 이를 갈며 내 비애를 쓴다. 내가 아는 단어들로 내 비애를 언어화해보려 하지만 늘 실패하고 만다. 그래도 이 무의미한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리고 글들은 나에게 날아오는 화살이 된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시위를 당긴다. 전통(箭筒) 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화살이 담겨있다.
애초에 완성될 수 없는 글이고 난 그럴 능력도 없다. 쓰다만 글, 쓰지도 않고 포기해 버린 글, 써지지 않는 글, 왜 썼는지도 모르겠는 글, 다듬어지지 않고 성나고 모난 글들 뿐이다. 모든 설움은 나로 비롯해 생겨났는데 나는 그 글감을 글로 적어 내릴 재간이 없다. 그나마 불 꺼놓은 방에서 소리 없는 절규를 하며 나뒹구는 것이 내 최고의 졸작이다. 관객들만 있다면 내 슬픔을 구현하는 행위예술이 되는 셈이다. 폭풍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 객쩍은 공상을 했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날을 기억한다. 왜 글이 갑자기 써졌는지 모르겠다. 내 공황발작처럼 갑자기 벌어진 일이다. 생각을 하얀 모니터에 일필휘지로 토해냈다. 생각과 가장 부합하는 어휘들을 찾아 조합했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연구했다. 5분이면 읽을 수 있는 짧은 글이었지만 3일 내내 여러 번의 퇴고를 거듭하여 썼다. 중언부언하고 서툰 글이었지만 더 이상의 완벽을 바라기는 힘들었다. 처음으로 나의 글을 탄생시켰다는 행복함에 그 글을 며칠 동안 읽고 또 읽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의 증세는 더 악화되었다. 많은 시도들과 실패만 남았다. 그래도 독서와 집필은 더디지만 계속하고 있다. '계속하게 된다'가 맞는 말인 것 같다. 그것들은 내 생사과 맞닿아있다. 피를 많이 흘린 환자에게 수혈을 하고 뇌종양 환자의 뇌에서 고름을 빼내는 일과 같다.
읽으며 나를 잊는 몰아의 일이다.
나를 쓰면서 나를 지우는 일이다.
읽어서 넣고 써서 빼내는 것이다.
그 후로도 많은 글을 썼다. 대부분이 공개되지 않은 글이고 그것들은 책상에 앉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 난 계속 대책 없이 글을 쓸 것이고 글들은 무참한 시간 속에서 계속 쌓일 것이며 낡은 책꽂이에 아무도 모르게 꽂힐 것이다. 그 글들은 무슨 소용이며 무엇을 위해 남겨지는가. 내 글들은 무용하다.
대개 글들은 괴로움 속에서 쓴 태어났고 따라서 어둡고 읽기 거북하다. 열대지방의 늪처럼 눅눅하고 고약해서 주변에는 악념(惡念)의 초파리들이 들끓는다. 점점 죄어오는 고통과 다시 살아보자는 의지가 계속 반복해서 쓰였다. 그 글들을 다시 읽어보자니 애처롭고 기막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가 낳은 글들인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