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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an 29. 2024

악해진 인간은 선해질 수 있을까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악해진 인간은 선해질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선과 악은 운명과 재능처럼 이미 선택된 것이 아닐까. 나 자신을 보며 오랜 시간 물었고 늘 절망적인 회한만이 남았다. 나를 얽매고 있는 죄는 다시금 날 심판대로 다시 올려놓았고 날 갈가리 찢고 도륙했다. 그 짓을 수 없이 반복한 어느 날 나는 내 영혼에 금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올드한 영화 광고 카피에나 나올 법한 '영혼에 금이 가는 느낌'은 전설이나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다. 구태여 그 느낌을 표현해 보자면, 영혼이 변질되고 잠식당하는 것이다.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존재가 나의 몸을 차지하고 나를 조종하는데 원래의 나는 나의 몸 안의 어두운 구석에서 끝없는 절규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절규를 들어줄 사람은 없고 난 내 스스로 죽을 수도 없다. 내 겉모습은 그대로지만 내 속은 뒤틀리고 썩어 문드러지는 것이다. 마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사악하고 역겹고 추하게 변한 것처럼.


 도리언 그레이는 끝없고 은밀한 쾌락을 탐미하고 수집하면서도, 끔찍한 죄를 짓고도, 방탕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신은 언제든지 그때는 일시적인 것이고 반성과 속죄를 하면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기회가 있을 것이고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환멸이 시작되면 자신이 짊어진 짐이 얼마나 불길하고 무거운 것인지 알게 된다. 그것은 진득하게 달라붙어 우리의 영혼을 좀먹는다.


우리의 죄는 고집스럽고, 뉘우침은 느슨하며,

우리는 자백으로 두둑이 챙기고,

우리의 모든 얼룩이 비루한 눈물로 씻겼다고 믿으며,

우리는 즐거워하며 다시 진창길로 들어선다네.


보들레르는 비웃으며 말한다.


 우리 인간의 의지와 선(善)은 너무나 나약하고 신용할 것이 못된다. 반대로 쾌락과 죄는 너무 달콤하고 매혹적이다. 쾌락과 죄는 충족될 수 없고 먹으면 먹을수록 허기진다. 뇌는 비틀린 행복에 절여져서 사소한 것에 감사할 수 없고 범사에 충실할 수 없다. 불확실하고 자극적인 것을 갈망하고 충동적이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철학과 과거를 비웃고 자본과 미래를 숭배한다. 타락에 익숙해지고 회환이 여러 번 반복되면 어느 날 우린 알게 된다. 여태껏 쫓아온 것은 허영이었고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병들어가고 있었으며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음을.


 나의 초상이 있다면 얼마나 추악한 모습일까. 이미 나는 나의 초상을 머릿속으로 한번 그려 보았을지도 모른다. 불 꺼진 어두운 화장실의 거울 속에서 이미 본 것 같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도 같이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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