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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an 07. 2024

잡담

두서없는 글을 쓰며

 아직 살아있다. 살아서 악다구니를 치고 이를 갈며 비애를 쓴다. 내가 아는 단어들로 내 비애를 언어화해보려 하지만 늘 실패하고 만다. 그래도 이 무의미한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리고 글들은 나에게 날아오는 화살이 된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시위를 당긴다. 전통(箭筒) 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화살이 담겨있다.


애초에 완성될 수 없는 글이고 난 그럴 능력도 없다. 쓰다만 글, 쓰지도 않고 포기해 버린 글, 써지지 않는 글, 왜 썼는지도 모르겠는 글, 다듬어지지 않고 성나고 모난 글들 뿐이다. 모든 설움은 나로 비롯해 생겨났는데 나는 그 글감을 글로 적어 내릴 재간이 없다. 그나마 불 꺼놓은 방에서 소리 없는 절규를 하며 나뒹구는 것이 내 최고의 졸작이다. 관객들만 있다면 내 슬픔을 구현하는 행위예술이 되는 셈이다. 폭풍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 객쩍은 상을 했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날을 기억한다. 왜 글이 갑자기 써졌는지 모르겠다. 공황발작처럼 갑자기 벌어진 일이다. 생각을 하얀 모니터에 일필휘지로 토해냈다. 생각과 가장 부합하는 어휘들을 찾아 조합했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연구했다. 5분이면 읽을 수 있는 짧은 글이었지만 3일 내내 여러 번의 퇴고를 거듭하여 썼다. 중언부언하고 서툰 글이었지만 더 이상의 완벽을 바라기는 힘들었다. 처음으로 나의 글을 탄생시켰다는 행복함에 그 글을 며칠 동안 읽고 또 읽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의 증세는 더 악화되었다. 많은 시도들과 실패만 남았다. 그래도 독서와 집필은 더디지만 계속하고 있다. '계속하게 된다'가 맞는 말인 것 같다. 그것들은 내 생사과 맞닿아있다. 피를 많이 흘린 환자에게 수혈을 하고 뇌종양 환자의 뇌에서 고름을 빼내는 일과 같다.

읽으며 나를 잊는 몰아의 일이다.

나를 쓰면서 나를 지우는 일이다.

읽어서 넣고 써서 빼내는 것이다.


 후로도 많은 글을 썼다. 대부분이 공개되지 않은 글이고 그것들은 책상에 앉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 난 계속 대책 없이 글을 쓸 것이고 글들은 무참한 시간 속에서 계속 쌓일 것이며 낡은 책꽂이에 아무도 모르게 꽂힐 것이다. 그 글들은 무슨 소용이며 무엇을 위해 남겨지는가.  글들은 무용하다. 


대개 글들은 괴로움 속에서 쓴 태어났고 따라서 어둡고 읽기 거북하다. 열대지방의 늪처럼 눅눅하고 고약해서 주변에는 악념(惡念)의 초파리들이 들끓는다. 점점 죄어오는 고통과 다시 살아보자는 의지가 계속 반복해서 쓰였다. 그 글들을 다시 읽어보자니 애처롭고 기막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가 낳은 글들인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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