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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사랑 Sep 16. 2020

그래도 괜찮다

이미 특별한 나의 아이에 대하여

작년에 내 기준에는 성공적인 이직을 했던 남편이 퇴사하고 커피를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아실현은 20대에 하고 오던가. 마흔을 앞둔 지금 이래야 할까. 퇴사하고 애 둘 엄마로 사는 나는 뭐 꿈이 없나. 이틀을 홀로 마음 상해하다가 뜻대로 하라고 했다. 하지 않으면 여든이 될 때까지 아쉽다 이야기할 테니. 망하더라도 젊어서 망해야지 싶어 하라고 했다. 남편은 나의 구박을 틈틈이 받으며 커피 공부를 하다가 지인 소개로 청라에 있는 근사한 커피숍에 취업했다.

공대 다닌 사람인데 어릴 때부터 식품 조리를 하고 싶었단다. 취미로 커피를 10년 했고 내 꿈은 커피숍 알바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꿈을 이뤘다. 옆 집 아저씨 일처럼 축하해 주어야 하나?

일곱 살 된 첫째는 복지카드를 발급받았다. 복지카드에는 자폐와 지적장애 두 가지 장애 유형이 적혀있다.

두 돌 후반부터 조짐이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손을 흔들며 방 안을 빙빙 도는 아이를 보며 불안했지만 무서워서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물었다가 자폐가 맞다 하면 어쩌지 싶었다.


첫째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다. 백일이 넘어서부터 지금까지 병원과 치료실을 다니며 아이를 키웠다. 결코 쉽지 않았다. 아이가 나이를 먹으면 '이런 증상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중복장애가 맞다면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다운증후군이라서 그래. 한참 클 시기에 크게 앓았어서 그래. 동생이 태어나서 그래. 아이는 해마다 퇴행을 거듭하는데 나는 필사적으로 현실을 회피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자 감각통합, ABA, 긍정적 행동지원 등 '다른 장애가 있는 건 아닐 거라고 여전히 믿고 싶은'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교육을 찾아다녔다. 내가 공부해서 아이를 도우면 아이의 '낯설고 이상한' 행동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육을 들을수록 불안해졌다. 결국 사회성 발달검사를 받아보기로 어렵게 마음을 먹었다. 여러 번의 상담과 진단을 거쳐 마침내 피하고 싶었던 아이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는 임신 중에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되었다. 목 투명대 검사와 양수검사를 거쳐 아이의 염색체 이상을 발견했고 그럼에도 낳기로 결심했다. 당시 태아의 장애를 이유로 임신을 중단하는 것은 불법이기도 했다.

'나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 '우리는 장애인 가족이지만 행복할 수 있다.' 나는 오만하게도 이런 생각을 하며 아이를 낳았다. 반면 남편은 아이의 장애 수용에 시간이 걸렸다. 남편은 '아이의 상황이 최악일 수도 있지만, 우리 가족이 이혼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질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까지 감당하겠다'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두 번째 장애진단이었지만 새로운 장애를 수용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잘 키우고 싶어도 아이가 더디 자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나는 고생을 했다. 고맙게도 남편은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가진 것을 알았을 때와는 달리 단단한 모습으로 나와 우리 가족을 지켜주었다.


힘든 시간을 정신없이 지나가고 나니 아이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잘 키워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예쁘다 보듬어야 할 내 아이로 보였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보이는 수줍은 미소가, 활짝 웃으면 입가에 매달리는 귀여운 보조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장애가 있지만 순조롭게 성장하는 아이,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지만 밝고 행복한 가정. 내가 그려온 목표만 쳐다보느라 나는 내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아이가 자신의 건강, 지능, 재능, 장애여부를 원하는 대로 골라 태어날 수 있을까. 뱃속 아기가 건강하길, 영특하길, 엄마를 닮아 키가 크길, 아빠를 닮아 온유하길 기대하지만 모두 부모의 바람일 뿐이다. 주어진 대로 가지고 태어나는 자녀이다. 부모의 바람과 다른 아이일지라도 아이는 책임이 없다.

아이가 어떻게 살게 될지 그려보는 부모의 기대와 자식의 인생 역시 상관이 없다. 설령 부모가 강한 의지로 자식의 인생을 끌고 가려 하더라도 분명 한계가 있다. 인생은 결국 그 삶의 주체그려나갈 몫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그럴듯한 급여와 대우를 받는 직장생활을 이어가지 않아도 우리 가족은 괜찮다. 어디서든 꾸준하게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니 잘해 나갈 것이다. 남편의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것 또한 기쁜 일이다.

우리 아이가 유달리 느긋하게 자란다 해도, 그래도 괜찮다. 아이는 매일 제 힘껏 크고 있을 것이다. 아이가 자란 것을 발견하는 반가운 순간은 우리에게 늘 아름다울 것이다.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우리에게 찾아온 순간부터 이미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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