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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사랑 Sep 19. 2021

사랑밖에 난 몰라

그 부부가 사는 법

내가 보기에 아빠는 엄마에게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하려 했지 엄마에게 맞춰준다거나 엄마를 따듯하게 대하는 모습을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긴 시간 고되게 사업을 같이 꾸려왔으면서 본인만 경제권을 쥐고 엄마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나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집안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장을 보느라 엄마가 2만원, 3만원씩 타갈 때마다 엄마를 눈치 보게 만들었다. 아빠가 술을 많이 드신 날에는 더 최악이었다. 그래서 나는 술담배 하는 남자를 질색했다.


감사하게도 신랑은 술 담배 안 하고 착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다. 가끔 엄마에게 남편 자랑을 하며 "엄마는 이런 남편 없지~ 얼굴이 잘 생기면 무얼 하나~ 키가 크면 무얼 하나~" 엄마를 놀린다. 놀랍게도 엄마는 칠십 중반인 아빠를 아직도 매우 훤칠하고 잘생겼다고 믿고 있고(키 크고 미남이시긴 하다) 심지어 아빠를 좋아한다. 아니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아직도 좋다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엄마를 닮았다. 남편이 그렇게 좋다. 내 눈엔 멋있고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난다. 신랑의 땀냄새도 근사하게 느껴진다. 앞머리도 많이 빠지고 배도 나오는데 그래도 예뻐 보인다. 남들에게 남편 자랑도 좀 많이 하는 편이다(죄송합니다). 내가 남편을 좋아하는 티를 내면 남편은 본인이 잘해주기 때문에 그렇다며 자기 자랑을 한다. 내 생각엔 그냥 내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 것 같은데! 그런 남편에게 불만이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한다는 점? 그 정도 되겠다.


슬프게도 나는 끊임없이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나를 아직 원하는지 확인하고 싶다. "여보. 나 사랑해?" 그러면 이 남자는 자꾸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본다. "아니, 날 사랑하냐고~" 더 열심히 아이들과 놀아준다. 남편 말로는 이게 아내를 사랑한다는 자신의 표현이란다. 아니! 그냥 말로 하는 게 더 쉽잖아?


자주 싸우지 않는 우리가 어쩌다 싸우는 원인은 바로 이 문제이다. 나를 사랑해? 사랑하는 거야? 그렇게 말(또는 행동)하다니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날 사랑하는 게 확실해? 남편은 나더러 의심이 많다지만 글쎄 연애기간, 결혼기간 동안 그~렇~게~ 표현 좀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걸 아직도 못 들어주는 남편 너도 웃긴다. 나도 나지만 너도 너란 말이다. 이 사람아!


언젠가는 남편이 이렇게도 말했다. "그냥 포기해. 나는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야." 그 말을 들었을 때 '띠딕! 남편의 사랑은 이미 종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우리의 사랑에 종료 선고를 받은 것만 같았다. 남편은 평생 이해 못 할 마음이겠지만.

우리는 그래도 즐겁게 산다(고 믿고 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을 보면 깨물고 내장이 튀어나도록 꽉 안고 싶고 꼬집고 못 살게 굴고 싶다. "몰라 몰라~. 니가 너무 좋아서 그래." 남편은 그게 폭력이지 무슨 애정표현이냐며 정색한다.


이 글을 충동적으로 쓰게 된 계기는 오늘이 남편이 미운 바로 그날이기 때문이다. 남편 말을 듣자면 우리 집에서 제일 게으른 인간은 나이고(체력이 약한 건 사실이다) 남편만 가족을 위해 사는 것 같다. 나도 내 몫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남편 눈에는 안 그런가 보다. 그래도 노력하고 있는데 오늘 나 좀 봐주면 안 되니. 내일 시부모님께서 오시는데. 누나 누나~ 쫓아다니며 자기랑 연애해 달라던 그 시절처럼 내 삐쭉한 성미를 좀 받아주면 안 되나.


우리가 함께 낳은 두 여자들이 남편의 어깨에 매달려 있으니 파트너인 내가 엄마로서 부부로써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잘 알지만 서운하다. 갈 데도 없으면서 사춘기 청소년 마냥 집 나가고 싶다. 나의 소중함을 알아달란 말이에욧! 어디 가서 나만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아욧!

어디서 연애하던 그 시절 그 남자를 찾아야 할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달큰시큰했던 그 시절 속 그 남자 말이다. 이래서 드라마를 보나보다. 존재했지만 이제는 없는 우리의 그 로맨스를 다시 기억하려고.


엄마는 아빠를 사랑한다. 그리고 아빠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엄마는 자기 뜻대로 안 휘둘려주는 아빠 때문에 화도 내고 상처 받아가면서 오늘도 내일도 동일할, 영원히 변하지 않을 아빠와 함께 산다. 내 눈엔 이상해 보이는 관계이지만 이게 그 부부가 사는 법이겠지. 우리 부부라고 다르지 않다. 뚝뚝한 남편에게 서운하지만 내일이면 또 마음이 사르르 녹을 것이다. 사랑밖에 모르는 그 엄마의 그 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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