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사랑 Jul 21. 2021

내일 놀아줄게

가족 사이 적정 선 긋기

안전, 행복, 자유, 권리. 귀한 가치이다. 개인이 이 가치들을 누려야 할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타인과 나의 권리가 충돌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거절하는 법을 배워왔다.

"내일 놀아줄게."

지금 놀고 싶지 않은 친구에게 다음에 놀자며 우아하게 함께 놀기를 거절하는, 세상살이 6년 차 관록이 묻어나는 문장이다. 친구가 자기 더러 '내일 놀아줄게' 했다며 울먹이는 걸 보면 아이들은 그 안에 담긴 의미 '지금 너랑은 안 놀 거야'를 잘 아는 것 같다.


문제는 그 문장이 첫째에게는 안 통한다는 것이다. 둘째의 거절은 즉시 거절당한다. 첫째는 둘째의 놀잇감을 말없이 들고 가고, 미술작품을 찢고, 지나갈 때마다 둘째를 툭 건드린다. 첫째에게는 아직 물리적인 선긋기가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둘째에게 자기만의 놀이방을 만들어주었다. 놀이방의 입구엔 첫째가 절대 열지 못하는 대형 유아 안전문이 달렸다.


첫째가 넘지 못하는 '선'이 생기자 둘째는 안심하고 쾌적하게 놀이할 수 있는 행복을 되찾았다. 아이들의 다툼(주로 둘째의 첫째 고발)이 줄었다. 유레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신랑과 나는 새싹이 나면 무조건 뜯어버리는 첫째 덕에 죽어가고 있는 화분에게도 생명권을 확보해 주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내주었던 베란다 3분의 1이 아빠와 엄마의 공간으로 재 편성되었다. 마침내 막대를 타고 나팔꽃 여린 줄기가 올라간다.  알로카시아의 넓은 잎이 활짝 펼쳐진다. 이럴 수가! 우리는 감격했다.

신나서 안전문을 추가 결제했다. 안방은 엄마 아빠의 공간이야. 이제 너희는 들어오면 안 된다. 특히 침대에서 위험하게 뛰어노는 첫째 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곳곳마다 대형 안전문이 설치되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안방과 베란다 3분의 1이, 둘째에게 개인 놀이방이 생겼는데 첫째에게 남은 놀이공간은 거실뿐이다. 아이들이 자는 방에 안전문은 없지만 첫째가 혼자 들어가 있지 않도록 평소에 문을 닫아두고, 물기가 있어 미끄러질 위험이 있다고 베란다 창문마저 잠가뒀다.


네가 더 크면 놀아줄게.

네가 더 배우면 열어줄게.

네가 더 얌전하게 굴면 없애줄게.

이제 보니 첫째에게만 계속 거절을 날리고 있었다.

거부당하는 이유조차 모르고 안전문 앞에서 뒤돌아서야 했던 첫째에게 너무나 미안해졌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기 쉬운 한 명이 우리 가족 중에 있다는 사실을 잊었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연일 폭염이다. 거실에 트램펄린을 깔고 미끄럼틀을 놓았다. 첫째가 뒹굴기 좋아하는 아이들 방문을 활짝 열었다. 베란다에는 우리집 베란다 수영장 개시를 위해 작은 풀장을 놓았다.  

첫째가 할 수 있고 좋아하는 활동은 많지 않다. 그 소소한 몇 가지라도 첫째의 집이기도 한 우리집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하여 무엇이든 적정하게 선을 긋도록 더 많이 고민해야겠다. 어느 누구의 권리도 침해받지 않도록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다정한 우리의 뒷 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