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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사랑 Sep 24. 2020

우리를 위한 미니멀 여정

오래 가기 위해 가볍게 걷는다

'가장 소중한 것만 소유한다.', '최소의 물건으로 최대의 가치를 누린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3년이 넘게 미니멀리즘을 짝사랑하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가치에 공감하고 미니멀 선배들의 지혜를 배우고 실천하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우리 집에는 물건이 없지 않다. 우리 집 미니멀은 진행형, 아니 심플과 맥시멀이 공존하는 믹스형, 여기는 비웠고 저기는 꽉 채운 효율형... 아니 애들이 없을 때만 대충 정리된 상태로 사는 보통 가정집이라 하겠다.

 

처음 미니멀을 접하고 신나게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다.

살림을 갓 시작해서 잘 모르고 들인 부엌살림. 출산 후 체형이 변해서 입지 못하는 옷. 오래되어 색이 바래고 손잡이가 뜯어진 가방. 더 이상 쓰지 않는 화장품. 꾸미는 것과 살림하는 것에 취미가 없어 이런 것들은 비우기가 쉬웠다.

잡동사니를 담고 있는 수납장. 딱히 쓰임이 없는 빈 가구. 이 것들도 비우기가 어렵지 않았다. 채우고 있는 잡동사니를 꺼내고 분류하여 필요 유무에 따라 버리거나 자리를 정해 보관했다. 이렇게 둥지를 파괴하고 온라인 동네마켓에 그릇과 수납장이나 가구를 무료 나눔으로 올리면 다들 기쁘게 가져가셨다.


버리기 어려운 대상 중 하나는 책이다. 나는 책을 사랑하고 진열하는 것을 좋아한다. 결혼 전엔 퇴근하고 매주 서점에 들러 베스트셀러란을 살피고 마음에 드는 책을 몇 권씩 사 왔다. 신혼집 거실 한 면에 붙박이 책장을 설치해서 모은 책들을 빼곡히 채웠다.   

책을 사고 읽는 것 그리고 진열하는 것은 나의 유일한 사치이자 오래된 취미였다. 하지만 책장이 꽉 차기 시작해서 새 책을 놓을 곳이 더 이상 없자 방법이 없었다. 책장을 추가로 들이는 대신 더는 보지 않는 책을 덜어내기 시작했다. 필요할 법한 다른 이들에게 책을 나누다가 가속이 붙어 과시용 책들까지 중고서점에 팔기 시작했다.

 

책장이 놓인 거실은 낮시간에 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가족 모두가 거실에서 활동을 했다. 아이는 놀고 낮잠 자고 어른은 TV를 보고 식사를 하고 휴식했다. 자연히 책장의 빈칸에 아이의 물건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이 기저귀와 가제수건이었는데 곧 장난감을 영역 별로 나누고 수납 바구니에 넣어 책장에 놓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장난감이 늘기 시작하면서 책은 더 빠르게 줄어들었다.

지금 남아있는 책은 스무 권이다. 몇 번에 거쳐 비우고 비우다 보니 결국 남은 책들이다. 남은 스무 권의 책 중에서도 내가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곧 아끼는 책만 남기고 나머지를 비워낼 수 있을 것 같다.


화분 키우기는 출산 후 생긴 취미이다. 모유수유가 잘 안 되어 우울한 날, 베란다에 나와 화분에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하며 흙을 만지면 행복해졌다. 베란다에 옹기종기 놓인 화분을 보면 마음이 절로 흐뭇해졌다.

그런데 우리 집 첫째가 베란다에 나가기 시작했다. 화분의 흙을 긁어모아 바닥에 뿌려 흙장난하고 곱게 핀 꽃과 싱싱한 줄기는 머리채 잡듯 쥐어잡아 뽑아냈다. 제법 큰 화분 몇 개가 아이의 거친 손길에 떨어져 깨졌다. 연둣빛 잎사귀가 나오기만 하면 큰 해피트리 화분 위로 올라가 줄기를 죄다 부러뜨렸다. 이제 화분을 덜어낼 때인 것이다.

주변에 나눔을 하고 남아있는 화분은 다섯 개다. 작은 꽃 화분 네 개와 큰 해피트리 화분 한 개. 작은 꽃 화분은 베란다 걸이용 화분 받침대를 사서 창문 밖으로 피신시켰고 해피트리는 흙을 파내지 못하게 덮개를 씌웠다. 줄기를 잡고 아이가 오르지 못하게 디딤대가 될 만한 곳이 없는 자리에 배치했다. 취미생활은 남은 다섯개의 화분으로도 충분하다.


비우기 가장 힘든 것은 아이들 물건 특히 장난감이다. 필요에 따라 주변에서 물려받거나 사고 있다. 첫째는 18개월 이전의 장난감이 필요하고 둘째는 역할놀이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그래서 0세에서 5세까지의 완구와 교구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첫째가 내일 당장 3세용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는 못할 텐데 그림책과 장난감에 대해서만은 곧 필요할 거란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결국 책이 떠난 거실 책장은 아이들 책과 교구로 빈 곳 하나 없이 채워졌다.


이러하여 우리 집은 보는 순간 띵할 정도로 비운 집이 아니다. 미니멀리즘 서적에서 보듯 아무것도 없는 집은 앞으로도 불가능할 듯하다. 비우는 것 못지않게 가족을 위해 물건을 채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비운 공간에는 언제든지 가족의 필요가 채워지고 있다. 채워졌다가 쓰임을 다하면 다시 비워진다. 비우는데도 채우는 데도 어려울 것이 없다.


베란다엔 여름마다 워터파크가 열린다. 햇빛이 뜨거워졌다 싶으면 풀장이 나왔다가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수납장으로 돌아간다. 화분과 풀장이 빠진 베란다에는 에어 소파가 놓인다. 소파 하나로 베란다는 우리에게 쉼을 제공하는 공간이 된다.

물건이 몇 개 안 되는 부엌의 수납공간은 아이들과 공유한다. 둘째는 부엌의 살림살이를 가지고 놀며 자랐다. 작은 냄비와 스테인리스 그릇은 아이 손에서 모자가 되었다가 악기가 되었다가 소꿉놀이 그릇이 되었다가 내 손으로 돌아오면 음식을 담는 다용도 도구가 되었다.

책장과 TV, 에어컨 외에 바닥에 물건이 없는 거실에는 유아용 책상, 대형 미끄럼틀과 트램펄린, 천으로 된 터널이 수시로 설치되고 사라진다. 모든 것이 다 나와 있을 때도 있다. 널려있던 놀잇감이 제 자리로 돌아가면 아이가 승용완구를 타고 거실을 최고 속도로 가로지를 수 있다. 아이에게 거실은 제법 괜찮은 운동장일 것이다.

평소 올라와 있는 것이 없는 나무 식탁은 때에 따라 아이들의 도서관이 되고 나의 일터가 된다. 식구들이 식사를 하고 간식을 먹던 식탁은 유치원 원격수업을 할 때면 아이들의 책상이 되고, 노트북을 열고 책을 펼치면 엄마의 서재가 된다.

 

이렇듯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상당 수의 물건이 우리 집에서 나갔다. 공간마다 필요한 것만 남아 집안일의 동선이 줄었다. 물건을 닦고 쓸고 수리하고 관리하는데 쓰이는 에너지도 줄었다. 적어도 집안일로 내 마음이 바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생긴 마음의 빈 공간은 가족에게 돌려줄 수 있다.


첫째와 마주 앉아 눈 맞춤 시간을 가질 땐 너그러워진다. 둘째의 끊이지 않는 부름에도 웃음으로 답한다. 빈 벽에 아이들의 작품을 걸고 네가 자랑스럽다 칭찬을 한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고마워요.' 애쓰는 남편에게도 감사를 잊지 않는다. 물건을 쓰고 제 자리에 두는 걸 못 하는 남편이 이리저리 널어둔 흔적에도 너그러워진다.

아이들과 재미있는 일이 있었던 저녁이면 잊지 않고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린다. 우리 집에 손님이 오시는  언제든지 반갑다.


나는 오늘도 가족 모두에게 쾌적한 집을 목표로 느긋하지만 가볍게 가고 있다. 쉽고 단순한 일상을 찾아가는 미니멀 여정 중에 나를 포함하여 가족 중 누구도 괴롭지 않기를 바란다. 가족을 위해 시작하였고 가족을 위해 지속하고 있으므로.

가족 모두가 흡족한 우리 집이 되는 그 날까지, 오늘도 가벼운 마음으로 미니멀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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