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없이 훌륭한 남편을 만나고 첫째를 낳으면서 내 안에 이야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훌륭한 작가까지는 아니라도 내 이야기를 의미 있고 즐겁게 풀어내고 싶었다.
둘째를 낳고 첫째의 퇴행이 심상치 않아지면서 가볍고 예쁜 이야기 위로 무거운 이야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남편은 야근을 하고 자정 가까운 시간에 들어오곤 했다. 욕실에 들어가는 남편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나랑 말 좀 하자고 했다. 남편이 잠들까 가슴을 누르고 있던 이야기를 샅샅이 찾아내 빠르게 쏟아내었다. 가끔은 지친 남편에게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며 울거나 화를 내기도 했다.
나중에는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아이 등 하원 할 때 짧게 만나는 유치원 선생님, 치료사 선생님, 처음 뵙는 돌봄 선생님께도 내가 힘들다고 내가 고생한다고 노력한다고 알아달라고 하소연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버스를 타고 오를 때도 아이들과 손을 잡고 길을 걸을 때도 혼잣말로 하소연을 흘렸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하소연은 아무리 해도 시원해지지 않는다. 되려 마음속 고통과 갈증이 깊어진다. 길고 지루한 하소연을 쏟아낸 후 정신이 들면 원치 않는 상대에게 빈 몸을 보여준 것 같아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듣는 이도 곤욕일 터다. 하소연이 길어지며 정제되지 않는 말들이 튀어나온다. 어제는 이랬는데 오늘은 저렇다. 목이 쉬도록 이야기하는데 요점이 없다. 해결도 없다. 나의 말을 견뎌주는 상대에게 실수한 것 같아 마음속 불편함이 또 얹어진다.
나는 하소연을 그만 하기로 했다. 마음속 이야기를 지고 갈 수는 없고 그나마 다듬어서 꺼낼 수 있는 글로 대신하기로 했다. 재치와 여유가 있던 그 시절처럼 물 흐르듯 글을 써 내려가지는 못한다. 다만 일주일에 한 편은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무엇을 써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아 일주일 중 6일을 그냥 보내기도 했고 예전 글들을 참고하려 뒤적여 보기도 한다. 글을 쓰다가 덜어내고 다시 얹고 또 덜어내기를 하며 시간을 들여 다듬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완성된 글들이 재미가 없다. 내 하소연도 그랬을 테지.
그래도 글쓰기를 시작하니 어두운 이야기에 잠겨있던 마음이 떠올라 중심을 잡으려 한다. 곧 희망을 써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써 내려가는 글에 웃음소리도 살짝 머금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켜켜이 쌓여있는 하소연을 글로 찬찬히 적어나가다 보면 어느 날은 꿈꿔온 대로 의미 있고 반짝거리는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날을 기대하며 내 나름의 시작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