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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원 Mar 19. 2022

반대말 프레임

2030 성장 에세이


  “여러분,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아나요?” 대학교 1학년 때, 교수님께서 수업 첫 시간에 던진 질문이다. “사회주의요!”, “공산주의요!” 나를 비롯한 몇몇의 학우들이 대답했다.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아니에요. ‘독재’에요.”


  나는 민주주의의 반대말을 사회주의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반대말이 될 순 있어도,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될 수 없었다. 왜 내 머리속에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사회주의’라는 개념이 정착해 있었을까.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렇게 암묵적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대말 프레임은 체제운영을 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정당화한다. “너는 빨갱이야”라는 문장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되므로.




  반대말 프레임은 이런 거창한 이데올로기 말고도, 내 삶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삶의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남녀를 반대개념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여자친구와 마찰이 있을 때면, ‘쟤는 여자라서 그래’, ‘쟤는 여자니까 그러면 안 돼’ 라고 결론 짓곤 했다. 그게 편했다. 규정짓고 난 후에는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됐다. 예를 들면,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자리를 즐길 때, 나는 남자라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여자친구가 그럴 때면, 여자는 밤에 위험하다는 핑계로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주 주의를 줬다. 친한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고 싶은 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같은 마음이다. 그런데 나는 여자친구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이해하려 한 것이 아니라, ‘여자라서 위험하니 안 되’라는 프레임으로 속박했다. 그게 편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남자라서 늦게까지 술 마셔도 된다고, 반대로 날 정당화할 수 있었으니까.


  반대말 프레임으로 친구에게 상처를 준 적도 있다. 내가 취업이 안 되어 한창 힘든 시기였다. 친구는 집안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하루는, 술에 취해 그 친구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너는 솔직히 아버지가 사업하게 다 도와주잖아.” 친구가 창업을 위해 들였던 시간과 노력, 그의 열정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 오로지 ‘쟤네 집은 부유해서 그래’, ‘금수저라서 그런거야’라고 생각하며, 수저론으로 그를 규정해버렸다. 그게 편했으니까. 내가 그 친구의 노력과 열정을 진실로 대면한다면, 나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낄 것 같았다. 나의 실패를 ‘집안의 자본이 부족해서 그런거야’라고 정당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날 다독이면, 허우적대는 자존감을 조금이라도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여성과 남성, 빈자와 부자처럼 반대말 프레임으로 세상을 규정짓는 것은 편리하다. 구분 짓고 나면 더 이상 머리와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기성의 시스템을,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끝은 늘 좋지 못하다.


  ‘민주주의-사회주의’ 프레임은 군부독재를 정당화했다. ‘반공’이라는 깃발 아래 양심 있는 지식인들을 옥에 가두고, 사회의 모든 지성을 파괴했다. ‘여성-남성’ 프레임에 갇혀 있던 나의 사랑은 늘 크고 작은 다툼을 불러왔다. 여자친구를 약자로 분류하여 자유를 제한했고, 나의 방종은 이기적으로 정당화했다. 연인 사이의 신뢰는 무너져버렸고, 종착지는 이별뿐이었다. 친구의 성공을 ‘유전(有錢)-무전(無錢)’으로 규정했던 나의 비겁함은 당사자에게 상처를 주었다. 소인배처럼 친구의 출세를 평가절하했고, 10년 우정에 생채기를 냈다. 나의 실패를 정당화했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환경만 탓하는 루저가 되어가고 있었다.



 

  상대방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했다. 군사정권은 이념 프레임으로 노동자와 지식인을 재단하는게 아니라, 평등, 자유, 권리에 대해 토론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나는 여성이나 금수저처럼 어떤 부가적인 반대개념으로 상대를 규정짓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 고민해야 했다. 여자친구는 사교적이고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술자리를 즐겼던 것이고, 내 친구는 포부와 열정이 있으니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너는 빨갱이야”, “너는 여자야”, “너는 금수저야”와 같은 편리한 반대말 프레임이 아니라, 불편하지만 가슴을 기울여 ‘쟤도 나와 같은 인간이야’라는 이해의 작업을 해야만 했다. 사랑을 쌓아가는 것,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것,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모두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싹트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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