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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원 Sep 08. 2022

이미 예술이야

2030 성장 에세이

  

  어릴 적부터 평범한 것이 싫었다. 어떻게든 남들과는 달라 보이고 싶었다. 요즘 말로 하면 관종이었다. 남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 기계가 된 것 같아 언짢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었고, 나라는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옷차림도 남들과는 늘 다르게 입었다. 무채색 보다는 알록달록한 컬러를 선호했고, 덕분에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설령 옷을 못 입는다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특이한 옷을 선호했었다. 고등학교 때 한창 힙합에 빠졌을 때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농구 저지를 입었고, 블링블링한 목걸이와 체인을 온몸에 휘감고 다녔다. 왜 그렇게 관심을 끌고 싶어 했을까? 남들에게 주목받으면,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의 존재를 사람들이 특별히 여겨준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어른들이 커서 무슨 일을 하고 싶냐 물어오면, 따분한 사무직은 하기 싫다고 답했다. 평범한 샐러리맨의 삶은 생각만 해도 지루했다. 30여 년 동안 빳빳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던 공무원 아버지. 건방지게도 그런 아버지의 직업이 참 재미없어 보였다. 그렇게 평범한 삶을 거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난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었다. 프로무대도 서 봤다.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정체성을 가진 것 같았다. 세상이 날 바라봐준다는 듯한 느낌은, 관종 특유의 욕구를 해소해줬다. 어쩌면 예술을 내 업으로 확신했다기 보다는, 평범함을 거부하고 자칭 예술하고 있는 내 모습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인정해주는 집단 안에서, 독특한 친구들과 함께 청춘을 즐겼다.




  10년이 지났다. 여느 날처럼 오전 팀 회의가 끝나고 담배를 피우러 빌딩 밖으로 나갔다. 거친 니코틴을 원하는 말초 신경을 살살 달래며 흡연장으로 가고 있었다. 회사원 여럿이서 담배를 피우며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그날따라 기이하게 느껴졌다. 똑같은 흰색 와이셔츠, 똑같은 까만 양복바지, 한 손은 주머니 속에, 다른 한 손에는 담배 한 가치. 그들 옆에 자리 잡아 담뱃불을 붙이고 한숨 크게 들이마셨는데, 흡연장의 차가운 알루미늄 벽에 비친 내 모습. 흰색 와이셔츠, 까만 양복바지, 한 손은 주머니 속에, 다른 한 손에는 담배 한 가치.


  나는 까만 양복바지에 빳빳한 와이셔츠를 입고, 똑같은 옷차림의 사람들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저 나의 일상일 뿐인데, 그날따라 마음이 뒤숭숭했다. ‘힙’한 옷차림이 아니라, 평범한 월급쟁이 복장이라서? 더 이상 세상이 날 바라봐주지 않는 것 같아서? 다음 날은 토요일이 아니라 화요일이라서?




  뒤숭숭한 마음을 달래고자 퇴근하고 친구를 불러, 노량진 횟집에서 소주잔을 부딪쳤다. 두 병째 시킨 소주병 밑바닥이 드러날 즈음, 내가 이야기했다.


  “지금 내 일이 너무 재미없어. 그저 기계처럼 정해진 업무를 반복할 뿐이야. 맞아, 예전에 예술 한답시고 나대고 다닐 때, 그땐 뭔가를 창조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말이야…”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맞으아, 예술은 창조야.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능 것! 그런 일을 하고 싶어. 자 마시자, 사랑과 례술을 위하여!”


  친구가 넘칠 것 같은 소주잔을 한 방에 쫙 꺾고 나서, 호탕하게 말했다. “형! 형은 이미 그런 일을 하고 있지 않아? 회사에서 지원은 아무것도 없는데, 쌩 영업으로 몇억 원짜리 계약을 만들어 내잖아. 그게 창조 아니야?”


  생각해보면, 난 늘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몸으로 부딪쳐 영업 건을 따왔다. 시작은 구글에서 찾은 연락처로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수많은 이메일과 메신저, 전화 통화. 그리고 무역업 특성상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 각고의 노력은 10억 원짜리 계약서를 창조해낸다. 내 근무복은 넥타이까지 맨 칼 정장인데, 요즘은 비즈니스 캐주얼룩이 대세라, 이런 포멀한 정장은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어져 눈에 띈다.




  흰색 와이셔츠, 까만 양복바지, 한 손은 주머니 속에, 다른 한 손에는 담배 한 가치. 내 모습을 다시 보니, 느와르 영화의 멋진 주인공 같기도 하다. 이익을 창출하는 영업사원, 에세이 쓰는 아마추어 작가, 직장인밴드 보컬. 나는 이미 매일매일을 창조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 예술이 별건가. 삶이 바로 예술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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