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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원 Oct 02. 2022

방귀와 행복

2030 성장 에세이


  때는 고등학교 3학년. 돌아서면 허기가 지고 한창 먹을 시기였다. 그날도 유난히 배가 고팠다. 점심 급식으로 제육볶음과 청국장을 아주 맛있게 먹었는데도 배가 차지 않았다. 친구들과 학교 매점으로 달려가 인스턴트 햄버거와 크림빵을 우적우적 먹었다.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며,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소리에 맞추어 아슬아슬하게 교실로 돌아왔다.


  5교시는 마의 시간이었다. 나긋나긋한 역사 선생님의 자장가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잠에서 깬 것은, 뒷자리에 앉아있던 학우가 내 의자를 발로 투툭 건드려서였다. 조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방귀를 뀌어 버린 것이다. 뒷자리 친구는 코를 쥐어 잡고 웃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웃으면서 잠에서 깼다. 정신을 차리고 수업을 듣는데, 배에 자꾸만 가스가 찼다. 역시나 매점에서 후식으로 먹은 것들이 문제였다. 몰래 방귀를 다시 한번 뀌었다. 그가 덤덤한 표정으로 내 의자를 발로 투투툭 쳤다. 그리고 세 번째 방귀를 뀌었을 때, 그가 내 의자를 쾅 걷어찼다. 뒤를 돌아보니, 험악한 인상을 쓰며 복화술로 나를 개자식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시는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내가 뀐 게 아니라고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는 가스가 계속해서 차는데도 배출하지 못했다. 뒷자리 친구는 체육부였고, 화가 나면 아주 무섭게 돌변했기 때문이다. 가스를 계속 참던 중, 갑자기 배가 찢어질 듯이 아파져 왔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양호실이었다. 그렇다. 나는 방귀를 참다가 기절한 것이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배꼽이 빠지라 웃으며 행복해했다. 나는 실신했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 사건으로 장에 탈이 났는지, 아니면 트라우마가 된 건지, 방귀를 참는 게 무척이나 힘들어졌다.




  그 이후로 방귀를 종종 뀌었지만,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거짓말로 상황을 잘 모면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대학 시절 선배들에게 기합을 받을 때였다. 10여 년 전만 해도 예체능 쪽은 집합과 얼차려가 잦았다. 1학년 동기들이 연습실에 전부 집합해, 3학년 선배들에게 혼나고 있었다. 팔 벌려 뛰기, 팔 굽혀 펴기, 윗몸 일으키기 등 각종 기합을 받았다. 여기가 군대인가 불만이 일어나다가도, 한편으로는 눈 부릅뜨고 더 빡세게 해보자는 마음이 교차하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날따라 선배들이 화가 많이 났는지 고난도의 동작을 이어서 시켰다. 다리와 등을 모두 바닥에서 떼고 30초 동안 지탱하는 동작! 선배들이 복근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자위하며, 다 같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열, 열하나, 열둘…


  이렇게 매일매일 한다면 몸짱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근육세포들이 아프다고 소리 질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나의 소중한 장 세포들도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준비할 새도 없이 외쳐버렸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날의 집합은 거기서 끝났다. 기합을 주던 선배들이 배꼽 잡고 웃느라 더 이상 지속하기 힘들었다. 동기들은 덕분에 남은 고난도의 동작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별명은 조방(조형원+방귀)이 되었다. (그들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조방이라 부른다)




  친구들은 나의 방귀 사건을 회자하며 지금도 깔깔 웃어 댄다. 무던한 성격 덕분일까, 나의 방귀사가 그렇게 창피하진 않다. 그저 그들이 웃으면 나도 웃게 되고, 웃음과 함께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행복한 분위기가 좋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주위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했다. 웃음이란 전염성이 강해서 한 명이 웃으면 집단이 함께 웃게 되는데, 이때 심장이 두근대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껴왔다. 거기에서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 받는 듯했다. ‘나라는 존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으며, 타인들과 함께 부대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미소 지을 때, 나도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유쾌하게 웃을 때는, 삶의 마지막이 되어도 좋을 만큼 행복하다. 방귀 좀 뀌면 뭐 어때. 웃겼으면 그만이지. 행복해졌으면 그만이지.


Yue Min Jun 作 (물론 이 작가의 작품에는 웃음 뒤편에 아이러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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