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걷는다 (10)
왜 이렇게 연재가 늦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다행히 없지만 연재가 늦은 이유는 이러하다.
하마터면 백수 시리즈가 끝날 뻔했다. 면접을 봤는데 처음부터 날 마음에 들어 한 그 회사. 자랑? 절대 아니다. 서류에 비해 면접은 형편없다며 직설적으로 지적당했다. 학교 비하도 당했다. 동생에게 얘길 들려줬더니 최근에 입시하신 분이냐고 물었다.
"내 말이!"
면접이 끝나고 어벙벙한 상태로 근처 카페를 찾았다. 유자차로 나의 마음을 달랬다. 잠시였지만 일종의 가스라이팅이었기에 마음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던 것. 잡플래닛을 살펴보니 전부 다 대표 욕이다. 아, 쎄함은 과학이구나.
정동진에서 동해로 넘어온 이유는 딱 하나. 숙소 부재였다. 정동진에는 혼자서 머물 만한 숙소가 별로 없었다. 동해에서 발견한 숙소 '오늘하루'는 아담하지만 쾌적한 곳으로 아주 꿀잠을 잤다. 새로운 곳에서 잠을 잘 때면 악몽을 꾸는 편인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다음날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숙소에서 나섰다. 물론 짐은 다 둔 채. 다시 돌아와서 잘 거니까. 요즘 운동을 하지 않아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더니 헥헥거렸다. 백수에게 운동은 은근히 귀찮은, 하나의 일이 된다.
잘 오지 않는 버스를 타고 무작정 동해역으로 갔다. 동해역 주변엔 역시나.. 할 게 없었다. 동네를 한 바퀴 걸어보기로 했다. 취미가 사진 찍기인 게 참 다행스럽다.
최근 관심 있게 본 요시고 사진전. 요시고 작가처럼 사진을 담아보기로 했다. 아래는 그 결과물들이다.
사물 하나하나 허투루 보지 않는 요시고의 눈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한 만큼 사진이 재미있게 나온 것 같다.
걷다 보니 같은 홍 씨인 조상님을 뵈고 인사를 드렸다. 좋은 에너지를 얻고 발걸음이 더 가벼워진 것 같았다.
7천 원의 훌륭한 식사도 가졌다. 호랑이 잔치에 초대받은 것만 같았다. 토끼는 기쁜 마음으로 물도 마시고 이것저것 다 먹고 가지요.
차 한 잔 마실까 해서 들른 동해역 앞 러시아 음식점에서는 홍차 한 잔도 얻어 마셨다. 쌉싸름함과 따스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여행 중엔 뚜벅이여서 힘들다며 투덜대기만 한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좋았던 것 투성이다. 여행은 이렇게 끝나고 보면 참 좋았다로 갈무리된다.
그래서 또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