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맥주 따르기 3번째 이야기
미국 유학 경험 1년 + 유럽 교환학생 6개월의 경험을 지녔지만, 해외 면접은 난생처음이다. 한국에 있었을 때, 대외활동이나 회사에서나 영어 면접을 많이 보긴 했지만 '진짜' 해외인 데다 '진짜' 해외 사람과의 인터뷰는 처음이라 떨렸다.
오후 2시 펍 면접을 앞두고 런던 브릿지를 건넜다. 한 40~50분 정도 더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여유로웠지만 마음속에서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펍에서 일한 워홀러들의 정보는 현저히 적어도 인터넷에서 커피나 옷 브랜드 면접 썰들은 많았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수월하게 면접 예상 질문들을 뽑아 갔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 아부다비 공항에서 환승을 기다리며 졸면서 답변을 준비했다. 당연히 반도 못함. 결국 펍 근처의 카페에 앉아, 다시 한번 답변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플랫 화이트를 반쯤 남기고, 호흡을 몇 번이나 고른 후 10분 정도 일찍 펍을 찾았다. 분명 오후 2시인데 사람이 많았다. 밖에 앉을 수 있는 테이블 수는 30개 정도인데 그중 10개 정도가 차있었고, 실내도 꽤 차있었다. 그래, 이때 도망쳤어야 했어. 농담이다. 겁이 났지만, 약간은 들떴다. 영국에서 보는 첫 면접이라 떨렸다. 왠지 설레서 떨린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약간 들떠있기도 했다. 펍에서 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려 했지만, 해외 일터에서 일해본 경험도 없고 펍조차 생애 처음이니 상상조차 쉽지 않았다.
"면접 보러 왔는데요.."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그러더니 실내 자리에 우선 앉기를 권했다. 그리고 물 두 잔을 가져와주고 화장실 위치도 알려줬다. 마침 목이 조금 말랐던 터라 너무 고마웠다. 면접 시간이 되자, 유쾌해 보이는 젊은 여성의 헤드 매니저(아래부터 초록색)가 자리로 왔다.
"Hello! 왔네요. 정신없었어서 미안해요."
"Hello! 저는 00입니다. 면접 보러 왔어요."
펍 업무로 정신없을 헤드 매니저를 위해 이름을 먼저 말하고, 노트북으로 지원서를 찾아보는 것 같아 미리 뽑아온 이력서를 보여줬다. 수많은 회사에서 짧게 짧게 몸을 담갔지만, 모두 글 쓰는 일이라 펍 근무와는 맞지 않았다. 짧은 빵집 알바 경험과 맥주 페스티벌에서 일한 경험을 써놓은 이력서였다.
"그래요! 어떤 걸 배우셨나요?"
"사람들을 만나고 상황을 대처하는 법이 즐거웠어요."
"그렇죠. 즐겁긴 하죠."
사람을 상대하고 환대하는 서비스직이 마냥 즐겁지만은 아닐 거다. 더 훌륭한 답변을 못 내놓았던 이유는 영어 실력의 한계 때문이 아니었다. 관련 경험이 현저히 적어서였다. 경험에 대한 어필을 부족하기에 얼른 다른 걸 내놓아야 했다.
"맥주와 펍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매우 많습니다. 1년 반 전부터 제 개인 소셜 미디어 계정에는 제 취미를 공유해오고 있어요. 맥주는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 같아요. 저는 그 공간에서 맥주를 추천해주기도 하고, 사람들이 그 맥주를 마시고 좋아해 하면 대화의 장이 자연스레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러한 맥주와 문화를 사랑합니다."
"오! 안 그래도 소셜 미디어 봤어요! 인상적이었어요!"
통했다! 하지만, 서론에 불과했다. 한국에서의 여러 면접도 그렇지만, 무언가 통하는 게 꽂히는 게 있어야 한다. 그걸 만들어야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을 보자고 생각했지만 자그마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나를 어필할 수 있을까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해보기로 했다. 펍 지원 동기가 무엇인가요? 여기서 일한 다음에는 어떤 계획이 있나요? 영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나요? 등 이어지는 질문들에 답변을 하면서 말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관련 경험이 적었기 때문에 헤드 매니저조차도 인터뷰가 다소 어려웠을 것으로 예상된다.
답변에 진심이 필요했다. 답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추가로 덧붙여 보았다. 이렇게 말이다.
"제가 브랜드 B를 정말 좋아해요. 오늘 이 면접을 위해 한국에서 날아왔어요. 방금 런던에 도착했어요."
"오늘이요? 말도 안 돼. 잠시만요."
헤드 매니저는 갑자기 다른 매니저를 부르더니, 이 매니저도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소개해줬다. 와, 이게 무슨 운명인가. 이탈리아에서 온 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했다. 내가 덧붙인 말의 반은 진심이었지만, 마침 이탈리아에서 온 매니저가 있어 더 진실되게 통했다.
"이 친구가 오늘 한국에서 왔대! 대박이지!"
그리고 헤드 매니저는 나를 데리고 펍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맥주가 양조되고 있는 공간으로 데려갔다.
"여기서 일부 맥주를 만들어요. 맥주를 만드는 기회도 있어요."
"진짜요? 해보고 싶네요."
"그래요? 많이들 해볼 마음이 있지 않던데 말이죠."
자리로 돌아간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헤드 매니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마음에 들어요! 우리 같이 일해 봐요."
꿈이야 생시야. 볼을 꼬집어 보았다.
"네? 진짜요?"
"네. 잘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아요. You make my day(오늘 하루가 덕분에 좋아졌어요)."
"No, You make my day. 정말 감사합니다!!"
면접 합격 목걸이를 안게 되었다. 나 일할 곳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