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만 사랑할 순 없어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지난해 5월 종영한 SBS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극 중 이태오(박해준)가 지선우(김희애)에게 한 대사, 다들 기억하고 계시죠? 당시 이 대사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화를 불러오는 대사였기에 많은 화제와 패러디를 낳았죠. <부부의 세계> 명대사를 꼽으라면 단연 '사. 빠. 죄. 아(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가 1위일 겁니다.
'불륜'이란 주제의 작품은 늘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기존 드라마와 영화가 갖고 있던 특성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로맨틱과 액션을 주제로 시청자들의 환상을 채워왔다면, '불륜'이란 자극적인 소재는 시청자들의 환상을 깨부수고 '현실'로 데려왔죠. 그래서 시청자들이 극에 이입하는 것 같습니다. 함께 분개하며 스트레스를 푸니까요! 친구의 남편을 빼앗은 <내 남자의 여자>(2007), 제자와의 사랑 <밀회> 등 국내를 비롯한 해외에서도 불륜 드라마는 언제나 화제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김희애 배우님이 출연하셨네요.
클래식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부의 세계> 속 이태오는 순한 양일 정도죠. 알려진 것과 달리 방탕한 삶을 보낸 음악가는 상당히 많습니다. 가령 리스트나 파가니니처럼요. 애처가인 슈만도 예외는 아니었죠. 오늘은 특별히 '불륜'에 초점을 맞춰 한 명의 음악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P가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음악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2)입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왕벌의 비행>을 작곡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제자였습니다. 이 둘의 첫 만남은 매우 특별했는데요. 스트라빈스키가 코르사코프의 막내아들과 사귀게 된 것이 인연이었죠. 법대생이었던 스트라빈스키는 창창한 앞날을 포기하고 코르사코프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도 천부적인 재능이 존재했던 걸까요? 그는 발레음악 <불새 L’oiseau de feu>(1910)를 시작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또한 <불새> 이후, 발레곡 <페트루슈카 Pétrouchka>(1911), <봄의 제전>(1913)까지 3연속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었죠. 그의 명성은 훗날 고국인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됩니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 그의 사촌이었던 예카테리나 노센코(Yekaterina Gavrilovna Nosenko)와 결혼하게 됩니다. 사촌과 결혼이라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그 당시 그에게는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와 예카테리나 사이에 네 명의 아이가 생겼고, 행복했던 부부 생활은 그가 명성을 얻은 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둘의 사이는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그녀는 네 아이 엄마인 동시에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적 동반자였죠. 스트라빈스키가 편곡한 피아노 연탄곡을 같이 연주하고, 악보 필사를 돕는 등 그의 작품 활동을 위해 헌신적으로 내조했습니다. 당시 러시아 정교회의 교리에 따르면 사촌지간의 결혼은 금지였습니다. 독실한 신자였던 스트라빈스키가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사촌이라는 것을 숨기기까지 했는데요. 종교관도 이기는 사랑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스트라빈스키는 트러블 메이커였습니다. 정확히는 그가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후부터죠.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많은 여성과 열애를 했습니다.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대놓고 연애를 했다고 하니 고작 유명세 하나가 사람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죠. 아내 예카트리나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가 작곡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아내의 내조가 분명 있었을 텐데도 그는 아이들까지 잊은 채 방탕한 삶을 즐겼습니다. 그는 술까지 거하게 즐겨 '스트라위스키'라는 별명을 스스로 짓기까지 했죠.
그러던 중 그에게 운명 같은 한 여성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베라 드 보세(Vera de Bosset)입니다.
베라 또한 가정이 있는 유부녀였습니다. 유부녀와 유부남의 만남이라니, 이 정도면 <부부의 세계>를 능가하는 불륜 드라마가 아닐까요? 베라는 당시 무대 미술감독이었던 세르게이 수데이킨(Sergey Yurievich Sudeikin)의 부인이었는데요. 부부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그녀가 스트라빈스키와 사랑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었죠. 16년간 아내와의 금슬을 자랑했던 스트라빈스키도 베라 앞에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내와 아이가 있던 남프랑스 앙레(Anglet)와 베라가 있던 파리(Paris)를 오가며 두 집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베라는 러시아의 유명 무용수였습니다. 예카테리나와 성격도 정반대였죠. 그녀는 활발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는데요. 진지하고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예카테리나와는 다른 매력이었죠.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스트라빈스키의 까다로운 성격을 베라는 다룰 줄 알았습니다. '스트라빈스키! 당신의 친구들 중에 누가 가장 웃겼는지, 누가 가장 멍청했는지 말해줘요!'라며 재밌는 소식을 전해 달라고도 했죠.
더 놀라운 것은 베라와 예카테리나의 관계였습니다. 스트라빈스키가 유명해진 후 여러 여인들과의 염문에 이미 지쳤던 걸까요? 예카테리나는 베라와 스트라빈스키의 공개 연애에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베라와 친구처럼 지냈죠. 물론 겉으로는 그래 보였습니다. 속은 어땠을지 누가 알겠어요? 어쩌면 아이를 위해 그녀가 화를 참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스트라빈스키는 베라와의 만남 이후로 가정에 더욱 소홀해집니다. 심지어 양육비를 제때 주지 않았고, 오히려 양육비에 대해 말을 꺼낼 때면 '나한테 얘기하지 말고 베라에게 가서 얘기하시오!'라고 말합니다. 내 아이의 양육비를 불륜녀에게 가서 요청하라니! 분명한 건 그는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아니었단 사실이네요.
아! 이혼은 왜 안했냐고요? 스트라빈스키가 러시아 정교회의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몸에 성호를 그을 정도로 하나님의 존재를 굳게 믿었습니다. 동시에 사탄의 존재 또한 믿었죠. 당시 교리에 이혼은 금지된 일이었습니다. 교리를 어기고 예카테리나와 결혼했지만, 또다시 교리를 어기고 이혼을 하기엔 사탄이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이혼을 하면 죽어서 지옥에 갈 것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죠.
이혼을 하지 않았지만 이혼을 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는 연주활동 내내 예카테리나가 아닌 베라와 함께였거든요. 회의를 갈 때도, 여행을 갈 때도 그의 옆엔 항상 베라가 있었습니다. 예카테리나는 베라에게 양육비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쓰며 애원하였고, 오매불망 남편만 기다리던 그녀는 결국 병에 걸려 요양병원에 머물게 됩니다. 몇 년 후 예카테리나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베라와 결혼하게 되죠.
아이들도 함께 미국으로 왔지만, 아내를 버린 아버지를 어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스트라빈스키와 아이들의 관계 또한 나빠집니다. 성공한 음악가로서, 베라의 남편으로서 100점이었을진 몰라도 조강지처와 자식을 버린 그는 0점 남편이자 아버지임에 틀림없는 것 같네요!
미국 정부가 백악관에 스트라빈스키 내외를 초대했습니다.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술을 너무 사랑한 스트라빈스키는 어김없이 그날도 술에 취해 백악관으로 향했습니다. 차에 내릴 때부터 그는 베라의 부축을 받았죠. 식사 자리에서도 술을 마시던 그는 결국 케네디 대통령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로 향했고, 일찍이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베라는 그날 '당신이 대통령께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을 묻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네요!'라고 화를 냈답니다.
글쓴이 P의 포트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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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최신명곡해설 & 클래식명곡해설 - 작곡가편> 삼호ETM 편집부.
<클래식 음악의 괴짜들> 스티븐 이설리그 글. 고정아 옮김.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정은주.
자료 | Youtube,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