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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곰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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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May 22. 2021

토끼와 거북이

금요일이라 밥도 하기 싫고 게으름 좀 피울까 해서 남편을 쇼핑센터에서 만났다. 저녁을 맛있게  함께 먹고 나서각자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지하 1층에 주차를 했고 남편은 지하 2층에 차를 두었다. 쇼핑센터 주차장은 훤히 꿰고 있어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차를 휘리릭 몰고 나왔다. 퇴근시간이  훌쩍 지난지라, 도로는  한산했다. 70킬로인 도로의 속도를 맞춰 가는데 바로 앞의 차가 느리게 가고 있었다. 가끔 나이가  드신 노인분들이 거의 30-40킬로 정도의 거북이 전을 하기도 하고 또는 운전면허를   초보자들도  러너 L을 커다랗게 붙이고선 조심조심가기도 한다. 오늘  심기를 꽤나 건드리는 차는 이런 경우도 아니니 순간 배려대상에 넣어 주고 싶은 생각이 나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냥 도로를 점령한  여유를 부리는 듯했다. 갑자기 모가  마음이 들면서 쌩하니 앞차를 추월을 했다. 답답한 꼴은  봐주겠다는 무언의 액셀을 밟으며  차선을 지키고 가고 있는데 한참 안보이던 남편의 차가 뒤에 있었다. ? 언제 여기까지 왔지?


남편의 운전은 나와 조금은 다르다. 양보는 항상 기본에 안전위주라 기본 속도보다 조금은 천천히 차를 몬다. 성격 급한 나와는 아주 다른 운전성향이라 옆에 타고  때는 답답한 속내를 보이며 잔소리를 하지만 남편은 묵묵히 자기 페이스대로 간다. 그런 남편을 알기에 나도 천천히 속도를 유지하며 여유 있게 가고 있는데 다시 답답한 차가 앞에 나타났다.  인내심을 시험하는   차는 깜빡이를 왼쪽으로 켰다 오른쪽으로 컸다  마음을 불안하게 하면서 우왕좌왕했다. 초보운전인 듯했다. 참을 인을 마음에   새기다    차선을 바꿔서 80킬로 도로에 들어서서 달리고 있었다. 정신없게  마음만 쫒다가 문득 남편이 생각났다. 어디쯤 오고 있겠거니 당연히 나보다는 늦을 거라 생각하며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쇼핑센터에서 집까지는  20, 운전하는 내내 나의 감정은 속이 터졌다가 말았다, 이럴까 저럴까 하며 오르락내리락 요동을 치는 듯했다. 어느새 집에 도착해 차고로 들어오는데 남편 차가 떡하니 있는  아닌가? 순간 너무 놀랐다. 앞만 보고 요리조리 달려온 나는 당연히 남편보다 훨씬 먼저 도착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심조심 한길로만 다니는 남편이 나보다 먼저  있었다.


 운전하는 짧은 시간 동안 감정의 소용돌이를 하며 소모적으로 보낸 나와는 아주 다르게 편안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언제 왔어?” 나는 혹시나 나를 봤나 싶어 먼저 물었다. “ , 조금 전에.  하나도  막히더라.” 남편은 분명히 나를 보았을 것이다. 참을성 없이 추월을 하고 쌩하고 달려가는 것을. 그렇지만 그는 아무 말하지 않고 도로가 한가했다는 말만 했다.  


우리네 인생도 더 앞서가려고 얼마나 빨리 달려가고 있을까? 나보다 답답하고 느리면 앞장설 생각만으로 쉽게 피곤해지는 모습을 우리는 알기는 한 걸까? 운전도 그런 삶의 모습을 닮지 않을까 문득 생각해 보았다.


게다가 오늘 남편이  느긋함은 느리지만 자기 길을 묵묵히 가는 거북이,  촐랑거리고 교만한 토끼. 어쩌면 주차장에서부터 집까지 남편과의 경주 한판을 펼친 동화  토끼와 거북이의 모습이 상상되면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분명한 , 도로 위의 나는  조금은 부끄러운 토끼였던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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