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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곰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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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Jun 14. 2021

바나나 이야기

호주 유치원의 아이들 런치박스에는 바나나가 꼭 하나씩 들어있다. 통으로 아님 반을 잘라서 어떤 모양으로든 도시락에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애들은 바나나를 밥처럼 자주 먹는다. 게다가 처음 배우는 과일 이름도 애플이나 오렌지가 아닌 바나나다. 자주 보니 말이 먼저 트이는 모양이다. 어린아이들은 바나나라고 발음하기 힘들어하며 ‘나나’라고 하며 엄마 아빠 다음으로 인생 첫 과일 말을 배운다. ‘나나’ 참 귀여운 말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달콤하고 보드랍고 게다가 생긴 것도 귀여운 노란 바나나를 유독 좋아했다. 더군다나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엄마를 조르고 졸라도 한두 개를 얻어먹을까 말까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고깃값만큼 비싼 바나나를 쉽게 사주지 못한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하며 철없던 그때를 떠올려보곤 한다. 귀한 손님이 오거나 특별한 날에는 바나나를 먹었다. 아끼고 아껴서...


그 바나나가 이제는 흐드러진다. 마트를 가면 심드렁하게 과일 코너 어느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만만한 가격에 집에 사다놔도 손이 그다지 가지 않아 가끔 냉동실로 직행해서 스무디로 바로 갈려지는 그런 서글픈 과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바나나를 잊고 살다가 여기 와서 다시 만난 바나나는 모든 사람들의 애정을 변함없이 꾸준히 받고 있는 과일, 호주의 넘버원 과일인 것이다.


어린이들조차 바나나 캐릭터에 신나 한다. 호주 아이들의 인기 노래 중에 하나는 tv시리즈의 ‘Bananas in pajamas 있다. 파란색 파자마를 입은 바나나 형제 B1, B2  동물친구들과 익살스럽게 하루하루를 지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1992년에 만들어져 거의 30년이  되어가지만, 어느  불러도 우는 애들조차  그치게 하는 신통방통한 게다가  전통적인 호주 동요로 자리 잡고 있는 중이다.  손가락(B1/B2) 치켜올려 Bananas in pajamas  소절을 시작하면 아이들 모두가 씨익 웃어버리는, 나에겐 백번은 부르고  불렀던 애증의 동요이기도 하다.

Bananas in Pajamas 노래 가사

Bananas in Pyjamas 잠옷 입은 바나나들
Are coming down the stairs 계단을 내려오네
Bananas in Pyjamas 잠옷 입은 바나나들
Are coming down in pairs 둘이서 함께 오네
Bananas in Pyjamas 잠옷 입은 바나나들
Are chasing Teddy Bears 곰돌이를 쫒고 있네
'Cause on Tuesdays they all try to catch them unawares 왜냐면 화요일에 몰래 잡아야 하니깐

여기는 바나나 데이도 있다. 유치원 전체에 노란 바나나를 하나씩 싸오고 또 아이들과 재미있는 바나나 놀이를 하며 지낸다. 이래저래 모인 바나나 중 많이 익어서 거믓거믓한 것들은 모아서 우리는 바나나 구제작전을 한다. 바로 바나나브레드이다. 아이들과 도란도란 모여 바나나를 으깨고 우유, 달걀, 그리고 설탕을 넣고 오븐에 구워 먹는 작은 케이크이다. 꾸덕한 느낌의 빵이면서 바나나향이 가득해서 아이들의 아프터눈 티로 제격이다. 어른들도 커피나 우유 한잔에 바나나 케이크 한 조각이면 든든한 간식이 된다.

하물며, 지난번 베트남 식당에 갔는데 디저트로 튀긴 바나나를 먹고 너무 감동을 받았다. 바싹 튀긴 바나나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어 주는데 어울리지 않는 조화로움은 이국적인 느낌을 너머 고소하고 달콤함이 입안 가득히 퍼지며 긴가민가했던 나의 의심은 한순간에 사라지게 하였다. 과일은 튀길 수 없다는 나의 선입견을 과감히 깨버린 상상 이상의 디저트였다.

어린 시절 기억하는 바나나는 달콤한 향기, 노랗고 통통한 귀여운 모습, 게다가 보드라운 맛, 그러나 실컷 먹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과일이다. 서서히 내 기억에서 흐려질 때쯤, 이곳에서 다시 만난 바나나는 참 재미있고 신선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마치 한참 잊고 지냈던 오래적 친구를 우연히 만난 느낌이랄까? 그 친구와의 새로운 추억을 다시 쌓아감에 설레듯, 이번 바나나의 추억엔 서글픈 냉동실 자리를 많이 내어주지 않으려 한다.  여기저기 흐드러진 바나나지만, 이야기 가득한 재미난 추억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흐뭇해진다. 우리는 무슨 과일로 우리들의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사진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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