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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요정 Dec 22. 2021

상 받았다

올해 난 무언가 했구나!

매년 무언가 도전하고 나름대로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붙이지만, 나 혼자 뿌듯하고 신랑이랑 기뻐하는 것이 전부였다. 올해도 그런듯 했다. 유튜브에 100일 동안 책 읽는 영상을 올리는 '30분 독서 챌린지' 100일 챌린지를 했고, 독서는 130여 권을 넘겼다. 그밖에도 몇 가지가 더 있겠지만 주관적인 평가가 많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왔다. 지난번 참여했던 독서마라톤 우수자로 뽑혔으니 시상을 받으러 오라는 전화였다. 시립도서관과 작은도서관 전체에서 진행되는 독서마라톤이었는데, 나는 하프코스를 신청했고 완주했다. 2만 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써서 제출하는데, 내가 기록한 책은 총 78권이었다. (올해 읽은 책이 130여 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대부분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책을 읽는 건 참 잘하는데 정리해서 기록하거나 리뷰를 남기는 일에는 서툴다. 올해는 블로그나 유튜브에 아주 조금의 책리뷰를 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독서마라톤은 나의 게으름을 깨버렸다. 무조건 완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신청만 해놓고 흐지부지하게 끝나고 완주자를 부러워하고 싶지 않았다.

손가락 인대가 뭉개져서 손글씨는 포기하고 타이핑을 치고 인쇄를 해서 자르고 붙였다. 그렇게 78권의 독서기록이 담긴 독서일지가 완성되었다. 굉장히 뿌듯했다. 완주했다는 기쁨이 생각보다도 훨씬 컸다.

독서마라톤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완주만 생각하고 달렸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근데 막상 완주를 하고 보니 이왕이면 우수자가 되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겼다. 처음부터 완주자에게는 기념품이 있고, 우수자로 뽑히면 시장 훈격의 상을 받게 된다고 공지가 되어있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기간의 거의 한 달 정도였다. 아주 조금의 기대를 했다가도 실망할까봐 나를 다독였다. 그러다가 전화를 받았다. "독서마라톤 완주하셨죠? 우수자로 뽑히셔서 시상 받으러 오실 수 있는지 여쭤보려고 전화했어요."라는 멘트를 듣는 순간 '해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독으로는 책의 내용을 정리하기 어려워 최소 재독 이상을 하며 일지를 적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의 노력과 고생(?)의 시간들을 보상 받는 기분이었다.


바로 신랑한테 전화해서 "나 자랑하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지금 전화 가능해?"라고 묻고는 자랑을 늘어놨다. 두번째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또 자랑을 했다. 평소 좋아하던 일로 상을 받는다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나이에 직업도 없고 무늬만 주부인 내가 어딘가에서 상을 받으리라고는 더 생각지 못했다.


지난주에 소규모로 시상식이 진행됐다. 시장님이 상패를 주면서 "내년에는 완주하이소."라고 하셨다. 대답은 했지만 난 풀코스 완주는 힘들 것 같다.. 상 받는 모습과 시장님과 사진찍는 모습을 신랑이 찍어줬다.

아빠한테 사진이랑 동영상을 보내고 나서 전화를 했더니 폰 너머로 아빠가 기뻐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옛날에는 도지사상 받더니 이제는 시장상을 받았네."라며 웃는 모습이 '나는 아빠의 자랑이었구나'라는 걸 다시 느끼게 했다. 기분이 많이 좋았는지 맛있는 거 사먹으라며 돈을 보내줬다. 지금도 아빠의 자랑이 되었다는 생각에 뭉클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신랑이랑 조돌탕(조개+전복+문어)을 시켜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항상 비공식적인 기록만 있어서 다른 사람들한테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다행히 공식적인 기록이 하나 생겼다고. 난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티나지 않아도 계속 하다보면 이번에 상을 받은 것처럼 공식적인 결과물들이 하나씩 늘어날 것이다.


올해 나름 여러 가지 도전을 하면서 잘 살았다. 지금도 도전 중이고 앞으로도 도전할 내 모습이 기대된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잘했다,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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